장길산 9편은 지금까지 읽어왔던 그 앞편의 내용과는 다르게 좀 더 빠른 호흡으로 내용이 진행되었다.
8편까지 각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평범하게 살지 못하고 화적이 되었는지 묘사하는 것과 그들이 행하는 활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8편 후반부터 최형기를 주요등장인물로 하여 본격적인 토포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9편의 마지막에는 토포를 시행하는 최형기와 구월산 두령 마감동 간의 대결이 이루어진다. 정말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실제로 눈으로 책을 읽지만 그 눈밭의 두 사람이 서있는 모습이 머리 속에 너무나 뚜렷하게 그려졌다. 사실 8편까지 오면서 살짝 지친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바로 마감동을 주요무대로 올린 후 전개하는 9권에서 그간의 지친감을 싹 해소하여 주었다. 마치 삼국지에서 영웅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형기와 마감동의 검 대결을 묘사하는 부분은 너무나 생생한 묘사를 보여주어서 읽는 내내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토포를 시작하면서 탑고개, 구월산등의 유민들과 백성들이 처참하게 살해되는 모습이 보여진다. 그들은 결코 그렇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본보기로 처해지는 희생양들이었다.
항상 희생양은 이렇듯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에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힘에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그러한 방법들은 바로 불법이 되어버리고 역적이 되어버린다.
갑자기 쌍용차해고노동자에 대한 생각이 난다. 쌍용차노동자 해고 이후 약 2년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 혹은 기타 이유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고공 농성, 시위, 그리고 자살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희생함으로써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 토포되는 활빈당의 모습이 단지 과거 역사,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인가,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마감동이 최형기에게 한 말을 적으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그러면 내 말을 듣겠느냐. 이미 이 나라는 근본부터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사민이 있다 하나 글 읽고 벼슬하거나 전장이 많고 권력 있는 자들만이 나라의 주인이요, 나머지 백성들은 낳고 살고 죽기가 금수보다도 못하다. 임진난리 때에도 병자난리 때에도 약한 백성들에게는 야차와 같이 굴던 것들이 바깥 도적들에게는 기도 못 펴고 꿈쩍도 못하면서 온 나라를 내주고 말았다. 그러고도 이제껏 조정의 귀하고 높은 자리는 저희끼리 다투어 들어앉고 내려오고 하면서, 입으로만 백성이요 실상은 대롱을 꽂아 고혈을 빠는 먹이로 여길 뿐이다. 어찌 하늘이라 편안하게 머리를 쳐들어 살아갈 수 있으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그대가 몇품 벼슬을 지내는가? 고작해야 병수사자리라도 기다리고 있는가? 그 칼을 뽑아 너를 보낸자들에게로 돌려라. 네 등뒤에는 팔도의 촌촌마다 피눈물로 포한 맺힌 황민의 믿음이 있다. 이 땅에서 살다 죽어진 수도 없는 백성들의 원혼이 있다. 자, 나와 함께 먼저 해서감영을 들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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