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악(惡)은 무엇일까?
온라인 서점에서 문자가 날라왔다. 예전에 예약했던 정유정 작가의 신작 『종의 기원』 이 도착한다고 한다.
보통 책이 출간되기 전에 사전 예약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정유정 작가이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영화로 치자면 누구나 기대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에 이어서 네 번째로 만나는 책이다.
하나같이 마지막 장까지 스스로 호흡을 관리하면서 읽어야 할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했다.
어찌 그녀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토요일 새벽 3시다. 방금 책의 마지막을 덮은 다음에 서둘러 이렇게 글을 남긴다.
아직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뒷목의 근육이 뻣뻣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소설은 읽고 나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한기가 올라와서 긴 옷으로 서둘러 갈아입었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책을 접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에필로그, 작가의 말을 순서대로 읽었다.
작가의 말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있다.
책을 편 독자들에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는 하나 이야기 자체로서, 혹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부디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 (P383)
아주 힘들게 읽었다. 책의 소재 자체부터 너무나 자극적이다.
작가 역시 이를 알았을 것이지만, 그렇게 깊숙히 밀고 가면서 진정으로 끄집어 내고 싶은 것이 있었나보다.
소재는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 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불편한 거는 그 살인에는 존속살인이 포함된다.
소설은 사이코패스인 유진의 시선과 아들이 사이코 패스인 걸 알고 살아왔던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서 전개된다.
정유정 작가의 특징이기도 한 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는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어쩌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해버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과감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의 입에는 오르기 조차 망설이는 주제이기에 어쩌면 많이 망설여졌을 테지만,
그러기에 더 과감한 표현이 이어졌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프로파일러 분에게 감사하다는 글을 보니.
유진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서 실제 일어난 사례도 많이 분석해본 듯 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예전에 있었던 존속살해 사회 기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과 몇 일 전에 강남역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살인이 벌어졌다.
뉴스에는 듣기에도 무서울 정도의 살인 사건이 연일 보도되어 진다.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너무나 잔인하고, 이유가 없고, 반성도 없다.
세상이 사는 게 점점 무서워지고 있다.
이 소설은 싸이코패스라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부터 인간의 근본적인 악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묻는다.
작가도 프로이트로부터 실마리를 악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P380)
나 역시 내면에는 일상 생활에서는 표출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욕망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상당히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위일 때가 있다.
입 밖으로 내밷기 힘들고 홀로 생각이 스쳐가기도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만이 알고 있기에 내뱉기 힘들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불편하지만 쏘아붙인다.
그래서 많이 불편하고 속이 메스껍기도 하다. 작가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즐겨달라고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했다. 하지만 역시 '정유정' 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유정의 새로운 스릴러를 읽는 내내 움크리고 있었고, 새벽이라 오롯이 들리는 내 숨소리에 긴장이 더했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후유증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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