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부모님의 하나 둘 늘어나는 주름에 변화를 실감합니다.
하지만 공간 속의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넓게는 지금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 아시아라는 대륙,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좁게는 집 앞의 거리를 거닐며, 출퇴근 길의 도로를 이용하고, 집 안의 작은 서재와 침실에 이르기까지,
1초, 2초 시간이 끊임없이 지나가듯, 우리도 끊임없이 어떤 공간 속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 속의 삶에 익숙한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10년 후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하루를 24칸으로 나눈 다이어리에 일정을 체크하고, 일을 하면서도 업무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합니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삶을 사는 우리는 공간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할까요?
별다른 생각없이 지나던 길을 다니고, 타던 버스를 타고, 익숙한 풍경을 지나서 집과 회사를 오갑니다.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는 별 다른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주 동안에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정착할 공간을 찾으려고 이곳 저곳을 알아보았지요.
저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수많은 네모진 박스의 한 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합니다.
주변에 쇼핑몰이 가깝고, 공원이 있으며, 학군이 좋고,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통도 편리하다고 추천하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반면에 중심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주거용으로 지어진 곳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시설을 이용하려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곳입니다.
그 접근성이라는 요소가 네모난 콘크리트 아파트의 작은 한 칸을,
평범한 직장인이 20~30년에 걸쳐서도 사기 힘든 공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와 도시와 동네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참여시 '어디에 사는 누구'라는 자기 소개가 그걸 말해준다. 이방인은 자리만 바꾸지 않고 자신의 특성까지 바꾼다. 공간은 인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인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공간과 분리된 채 자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본질을 획득" 한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144)
사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간은 공평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가지만, 공간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사람들마다 지금 현재도 각기 다른 공간에 있지요.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에서 인상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화가 나혜석에 대한 부분입니다.
제가 사는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 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 거리의 중심에는 나혜석의 동상이 있지요.
하지만 그녀가 화가였다는 사실 말고는 알고 있는 사실이 없었습니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로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공(空)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사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의해 희생된 자 이었더니라" - 나혜석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171)
화가인 나혜석은 일제강점기의 신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프랑스 파리에도 다녀옵니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를 경험하고, 그 공간에 매료되었나 봅니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는 프랑스의 문화예술인 뿐 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 제럴드 등이 머물렀던 공간입니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 나혜석이 있었네요.
이런 그녀가 프랑스 파리라는 공간 속에서 계속 살아갔다면 분명 다른 삶을 살았겠지요.
공간은 이렇게 사람들을 다르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공간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공간을 받아들여야겠지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똑같이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 공간 속에서 얼마나 자기가 느끼고, 그 공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느냐가 중요하지요.
보잘 것 없는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함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위대함 속에서 보잘 것 없음을 찾아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화려한 것들 속에 숨어 있는 허풍과 허세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스쳐지나가는 작고 무가치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눈도 가지고 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43)
저도 무언가 새로운 시야를 얻고 싶습니다.
낭만의 도시 프랑스도 가보고,
드높은 마천루를 자랑하는 뉴욕 거리도 걸어보고 싶습니다.
원시림이 살아 있는 아마존 유역도 가보고 싶고,
고대 도시의 흔적을 찾아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를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들 비슷할 겁니다. 시간이 없죠.
시간이 많으시다구요, 그럼 그 때는 돈이라는 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사는 이곳에서라도 새로운 시야를 얻어보는 수 밖에요.
저는 예전에 그냥 지나가면서 간판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메모장에 다 적어 보았습니다.
가로수가 어떤 나무인지도 알아보려고 했는데,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은 나무가 대부분이어서 알지 못했지요.
그러던 중에 일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집 근처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 거리다가 발견한 거 같습니다.
그 책은 앞서도 몇 번 언급했던 정수복 작가의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라는 책입니다.
우연히 만난 작가이고, 스쳐 지나가면서 고른 책이었는데,
알고 보니 제 서가에도 이 분의 책이 한 권 꽂혀 있네요.
바로 책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적은 『책인시공』이라는 책입니다.
이 분의 책들을 보니 '공간' 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라는 책의 뒤에 보면 아주 소중한 정보가 있습니다.
저는 이걸 노트에도 적어두고, 별도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도시를 걷는 16가지 방법> 이라는 글입니다.
각각의 방법을 소개하고, 조금 상세하게 방법을 기술해 놓았지요.
상세한 내용을 일상에서 꼭 한 번 활용해봤으면 좋겠네요. 책 한 번 꼭 읽어보세요.
여기서는 짧게 16가지 방법을 소개드립니다.
1. 도시 전체를 보여주는 큰 지도를 벽에 붙이고 매일 다닌 지역을 표시한다.
2. 편안한 보폭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천천히 걷는다.
3. 도로, 자동차와 사람들의 흐름, 가로수, 건물, 상점, 간판, 신호등, 진열창 등을 찬찬히 자세하게 바라본다.
4. 밖에서 보는 건물과 들어가 본 건물은 다르다.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모조리 다 들어가본다.
5.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먹고 마시고 무엇 하나라도 산다.
6. 안 가본 구역, 낯설고 잘 모르는 동네를 일부러 찾아다닌다.
7. 도시의 역사, 문화에 대한 책, 여행기, 안내 책자 등을 다양하게 읽는다.
8. 책에서 알게 된 장소를 방문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9. 때로 함께 걸을 친구를 만들어 방문한 동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걷는다. 같이 걷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것이 보인다.
10. 지름길, 정해진 길, 상투적인 행로가 아니라 자기만의 다양한 우회로를 만든다.
11. 박물관, 미술관, 식당, 영화관 등을 갈 때 그 장소만이 아니라 그 주변을 걸으며 동네 분위기를 파악하고 인접한 다른 지역과의 이음새에 주의를 기울인다.
12. 마음이 가는 장소나 재미있는 동네는 여러 번 방문한다.
13. 방문하여 걸어본 동네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사진을 찍어 노트에 메모를 남긴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본 것, 한 것, 느낀 것,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다.
14. 지금 살면서 걷고 있는 도시를 자신이 잘 아는 다른 도시와 비교해 본다.
15. 자신이 쓴 도시에 대한 기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
16. 걷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작은 일에 참여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습니다. 그런 여름도 비가 내리고 다음 날은 어김없이 사라집니다.
8월의 막바지가 되면서 끝나지 않을 듯한 더위도 꼬리를 살살 내립니다.
대신에 하늘은 점점 더 드높아지고 있고, 어스름한 저녁이 조금씩 빨리 찾아오네요.
걷기 좋은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어디 한 번 걸어보시죠.
이제는 새로운 것이 보이겠죠?
(p23)
신문 칼럼을 쓰는 사회학자 세 사람의 견해를 들어보자. 먼저 송호근은 "문장은 감성의 높이와 과다를 조절하는 비행체다. 가끔은 높게 날고, 가끔은 급강하해야 할 때도 있다. 호흡조절도, 리듬과 가락도, 정서의 표출도, 이미지의 창출도 모두 문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썼다. 김호기는 "일반 시민을 독자"로 상정하고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간결한 문체로 글을 쓰는" 대중적 글쓰기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고 김동춘은 "학자들도 때로는 언론인과 문인의 능력을 겸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24)
지적 교류와 감정적 교류가 함께 이루어지는 관계야말로 진정 깊이 있는 인간관계이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관계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것이든, 아니면 단순히 스치는 만남이든, 나는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지적 교류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하는 감정적 교류에도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p43)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그냥 흘려보내는 작은 풍경들을 찾아내고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미세한 풍경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발견의 나날이다. 그들의 일상에는 권태가 없다.
보잘것없는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함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위대함 속에서 보잘것없음을 찾아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화려한 것들 속에 숨어 있는 허풍과 허세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스쳐지나가는 작고 무가치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눈도 가지고 있다.
(p67)
파리의 연인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상대방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사랑이라는 것이 두 사람이 하나의 존재로 결합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잃지 않는다. 아니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물건은 자기가 챙긴다. 그러나 서울의 연인들은 두 사람이 완전한 하나가 되어 자아를 잃어버린 상태가 되기를 바라는 듯 서로의 물건을 상대방에게 믿고 맡겨 버린다.
(p70)
도시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의 형태와 색채는 일상의 미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아름다운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 가로수와 공원, 자동차와 광장 등 수많은 공간과 사물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색채의 조합을 통해 고유한 분위기를 만든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라는 노랫말을 현실로 만들려면 작은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p102)
북촌이 관광지화되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산책은 한가한 장소에서 여유롭게 이루어져야 사유를 동반한다. 요즈음 나는 둘째, 넷째 월요일 오후에 서촌으로 산책을 간다. 국립중앙도서관이 휴관하는 날이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삼아 궁궐 북쪽에 위치한 북촌이 양반들이 사는 지역이었다면 궁궐 서편의 서촌은 중인이나 예인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궁을 나온 나이든 상궁들도 살았다고 한다.
(p116)
파리에 비해 서울 시내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탄 사람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이다. 그는 1896년 미국 체류를 마치고 귀국할 때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와서 서울 거리에서 타고 다녔다. 그때 자전거는 첨단의 교통수단이었다. 함께 독립협회 운동을 하던 윤치호가 서재필에게 자전거 타기를 배운 다음 미국에 자전거를 주문해서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p132)
게오르크 짐멜은 이방인을 두고 전체를 조망하는 '조감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알프레드 슈츠는 이방인을 '또다른 잣대를 사용하는 자'들이라고 보았으며, 로버트 파크는 이방인을 '탁 트인 시야와 예리한 지성. 그리고 좀더 초연하고 합리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p137)
이방인은 '사회이론가'적 성향을 갖는다. 사회학이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상식적 이해를 넘어서 사회가 유지되고 변동하는 방식에 대한 객관적, 심층적, 체계적 이해라면 사회학자는 이방인의 시선을 가질 때 사회를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가까움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끼는 이방인의 존재 조건이야말로 사회이론가가 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p138)
사회학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계'를 낯설게 보는 능력을 개발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학자는 '직업적인 이방인'이다. 유대인 가운데 이론가, 특히 사회이론가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오랜 기간 동안 이방인의 관점을 지니고 살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뒤르켕, 짐멜, 비트겐슈타인,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조르주 귀르비치, 레몽 아롱, 루이스 코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어빙 고프먼, 지그문트 바우만,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은 모두 유대인 출신이다.
(p140)
걷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다.
그가 정말 걷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말싸움을 벌이지 않고,
자신의 불은을 한탄하지 않고,
자신의 세속적 가치를 올리기 위해
뒤돌아서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다면.
- 자크 레다
(p144)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와 도시와 동네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참여시 '어디에 사는 누구' 라는 자기소개가 그걸 말해준다. 이방인은 자리만 바꾸지 않고 자신의 특성까지 바꾼다. 공간은 인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인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공간과 분리된 채 자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본질을 획득" 한다.
(p145)
이방인이 이방의 도시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한몸이 되어야 한다. 도시공간 속을 구획하고 이어주는 대로와 골목길, 건축물과 상점 들, 수많은 자극과 소음, 색깔과 움직임, 특정한 분위기와 흔적들, 수많은 기억과 체취, 예기치 않은 타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도시공간 속을 걸으며 이방인은 자신의 몸에 공간의 기억을 아로새긴다. 도시를 걸으며 손과 발, 눈과 귀, 피부와 코로 도시의 풍경, 소리, 냄새, 질감, 굴곡, 요철, 리듬, 온도와 습기를 감지한다. 서리의 신호등과 횡단보도, 자동차의 흐름과 엔진 소리, 소음과 휘발유 냄새, 타인의 시선과 얼굴 표정, 몸동작, 옷차림, 건물의 외양과 진열창에 전시된 물건들에 대한 감각정보를 입력한다. 도시를 걷는 일은 지도라는 추상적 개념을 감각을 통해 구체적 실체로 변형시키는 작업이다.
(p152)
우리나라의 경우 1900년에 경인선이 개통되고 1905년에는 경부선과 경의선이 개통됨으로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미곡, 어류, 목재 등 주요 상품이 철도를 통해 운송되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물길을 이용해 상업활동을 하던 강상과 육로를 활용하던 보부상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몰락했다. 철도 개통 이후 영등포, 대전, 조치원, 천안, 김천, 이리, 송정리, 나주, 사리원, 신갈 등은 상업이 급속히 발달했다. 한반도 전역에 철도망이 깔리면서 1920년대는 일본인과 조선인 상류층을 위한 관광산업이 생겨났다. 철도의 개통이 일으킨 변화 또한 사회학의 공간적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보기가 아닐 수 없다.
(p158)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은 서울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서울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수백 개의 각기 다른 동네의 집합이고 연대다. 각기 다른 동네의 분화와 집합은 서울의 다채로운 지형과 함께 천문학적인 수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길을 만든다. 어느 누구도 다 걸어볼 수 없는 서울의 미로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서울을 만날 것이다."
(p159)
인사동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진 도시계획가 김진애는 전국을 일주하면서 22개의 동네에 대한 탐사기록을 남겼다. 서울에서는 인사동, 정동, 동대문시장, 청담동, 홍대 앞, 대학로, 미사리 카페촌, 성수동, 세운상가, 한강,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앞 광장을 답사했고 부산에서는 남포동, 민락동, 광복로, 구덕로, 영도다리, 용두산,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을 답사하며 그 공간들이 갖는 장소적 의미를 분석하며 살고 싶은 도시, 정붙일 동네 만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p161)
공간의 정치경제학자 조명래는 같은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공간 속에서 사람은 공간 형성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공간을 구성하는 객체이기도 하다. 공간은 사람의 의지와 행위로 형성된 것이지만 그 자체 안에 의미, 틀, 색상, 이미지, 시간의 요소를 갖춘 구성물로 기능하면서 그 틀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행동거지와 의식을 틀 지운다."
(p168)
프랑스가 좋아 프랑스 사람이 되어 프랑스에 살다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 묻힌 미국 출신 여성작가 거트루드 스타인도 파리 곳곳을 깊게 느끼며 걸었다. 뤽상부르 공원 가까이에 위치한 플뢰리스 거리에 있던 그녀의 집 살롱에는 피카소, 마티스, 헤밍웨이 등의 화가와 작가들이 모여 삶과 예술을 이야기했다. 파리를 걸으며 풍경을 음미할 줄 알았던 그녀는 『파리 프랑스』에서 "1910년에서 1930년 사이에 파리는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든 것에 천천히 적응한다. 그래서 결국 언젠가는 완전히 바뀌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다."라고 썼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파리가 사람을 "흥분시키면서도 평화로운"도시라고 썼다.
(p169)
1920년대에 들어서 식민지 도시 경성이나 식민지 본국의 도쿄를 거닐던 조선의 신여성들도 변장을 하고 궁성을 빠져나와 도시의 모든 것에 황홀해하는 왕자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작가, 화가, 무용가가 되었다. 그들은 근대 도시를 걸으며 자유를 느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고 영감을 받았으며 그것을 작품 속에 표현했다. 그들도 조르주 상드나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기분 나는 대로 도시를 걸으며 도시의 풍경에 매료되고 우연히 다가오는 볼거리들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자신을 바쳤을 것이다. 물고기가 바다를 헤매고 새가 하늘을 날듯이 도시를 걸었을 것이다. 무용가 최승희와 화가 나혜석은 식민지 시대에 경성과 도쿄는 물론 파리를 걸었던 신여성들이었다. 아직 여성의 삶을 옥죄는 관습의 굴레가 강하게 작동하던 조선의 여성들 가운데 식민지 치하에서 신식 교육을 받은 그들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p169)
완벽한 산보객은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엇이든 열광적으로 관찰한는 사람이다. 그는 길거리에서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군중 속에 묻혀 있는 익명의 개인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을 관찰하는 세상의 살아 있는 중심이다.
(p170)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로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공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사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의해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 나혜석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편안하다. 이런 저런 분야의 책을 읽다가 이따금 한 번씩 이렇게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 기분전환이 되고 내가 하는 책읽기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 볼 시간을 준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할 거 같은지 대략 짐작은 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다시 궁금해진다.
책을 읽고 나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고, 언제 어디서 책을 읽기를 즐기고 있을까?
잠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 어떤 분야를 읽고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관심이 생기는 분야가 생기고 그 관심의 폭이 점점 넓어짐을 접하게 된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쓰는 자기개발서 같은 책을 읽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책 읽기를 위해서는 재미가 중요하기에 재미있다는 소설책을 찾아서 읽었다. 어느 순간 소설에 빠져들었고,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소설들, 바로 세계문학전집을 한 권씩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이다. 특히 소설 중에서 사회를 반영하는 내가 없었던 공간과 시간에 대해 알려주는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는 한 때,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생각만 있었을 뿐, 별다른 관심을 갖거나 노력은 하지 않았었다.
지금도 역사는 항상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다. 올해 목표가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개괄하는 정도의 독서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구입하고 정리하려 하는데 몸이 안 따르고 다른데 자꾸 관심이 간다. 그래도 목표는 올해 조선시대 역사에 대해서 개괄해 보고자 하고, 항상 책이 나올 때마다 기다리는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의 책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려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고려시대도 한 번 도전해보아야 겠다. 일단 조선시대부터라도 제대로 읽어보자.
최근에 부쩍 관심이 가지고 있는 부분은 미술이다. 얼마 전에 동대문디자이플라자에서 진행중인 간송문화전에 다녀왔는데 고려청자의 신비한 색채와 신육복의 화첩과 추사 김정희의 서화 등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번이 직접 찾아서 간 두번째 전시작품관람이다. 앞으로 이런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보는 감동은 컴퓨터로 책으로 보는 그 이상의 아우라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책들과 다른 여러 책들을 찾아보고 읽는 중이다. 읽을 수록 재미있다. 아마도 이쪽은 더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
나중에는 고려청자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공부해보려 한다.
서양미술에는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계기로 고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갱과 흥미롭게 연관된 고흐를 알게되어 고갱, 고흐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이것을 기반으로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작품도 찾아보고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보려 한다. 나중에는 곰 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한 번 완독해야 겠다. 지금은 거의 사전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항상 기반이 되는 것은 인문/사회이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직접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다루게 되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자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위해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관심이 가는 분야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쉽지가 않다. 철학인데 그 진입장벽이 나에게 좀 높은 듯 하다. 최근에는 입문서 정도라고 하는 피노키오의 철학을 찾아 읽고 있는데 심오한 철학의 세계가 언제쯤 나를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걷기, 건축, 클래식, 글쓰기, 교육관련, 여행, 인테리어 등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고 한다.
이런 관심이 불과 2~3년 만에 생긴 것이니 아마 2~3년에는 조금의 발전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길 바란다.
◆ 책 읽는 시간
책을 읽으면서 좋은 점 한가지는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다는 점이다.
예전에 약속한 사람이 늦게 오면 전화를 몇 번 해보고, '어느까지 왔느냐?'고 확인하고 했는데, 이제는 덕분에 관대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방에는 적어도 2권 정도의 책과 볼펜 한자루는 항상 들어가 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나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게 불편하다. 눈의 피로도 심한거 같고 그게 오히려 나에게는 더 좋은 듯하다.
굳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을 꼽으라면 역시 세상이 조용한 새벽시간이다.
예전부터 나는 밤 늦게 자거나 시험기간에 밤을 지새우거나 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이들의 영향도 있지만 빨리 잠드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새벽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아무도 없는 듯이 조용한 새벽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점심시간의 20~30분 정도의 독서도 맥을 잘 이어주는 연결의 시간이 되어준다.
◆ 책 읽는 공간
어느 기사에선가 '남자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여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이 선호하는 공간에서 소진되었던 힘과 기운을 천천히 채워주워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일을 살게 해 준다.
아내는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내 방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그동안 방책을 세워야겠다.
쇼파에 앉아서 양 벽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을 바라보면 무언가 뿌듯하고, 여러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가 된다.
커피는 집에서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라 잔잔한 노래, 시원한 물 한 잔, 땅콩, 호두같은 것 한 접시, 볼펜 한 자루, 책 한 권이면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어린 두 아들을 위해서는 쉽게 즐길 수 없는 사치아닌 사치가 되긴 했으나 가끔 누려보기도 한다.
지하철과 버스도 훌륭한 장소다.
아침에 버스 속에서 밤 사이 달콤하고 황홀한 꿈을 잇기 위한 유혹을 벗어난다면 훌륭한 장소가 된다.
항상 짓눌려 출근하는 서울 지하철이나 출근길 만원버스에는 다소 힘들기는 하겠지만 이동 중 대중교통은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된다.
책을 읽을 때 주변 사람들의 대화나 전화통화는 방해가 되지만 지하철, 버스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엔진소리, 정차소리, 사람들의 숨소리와 발걸음은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내어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와 좋아하는 공간, 시간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는 언제 어디서든 상관이 없는 듯 하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점점 다양한 분야로의 관심 확장과 끊임없는 호기심의 유지와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책 속 구절을 소개한다
P67
루치우스 세네카는 “인간은 항상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듯 행동한다.” 고 지적했지만 바쁜 시간 중에도 한가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짬을 내고 틈을 내고 멍하니 흘려보내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책을 읽을 시간을 얻을 수 있다.
P77
책은 영원히 남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펴낼 수 엇ㅂ는 것이다. 말처럼 내뱉고 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아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읽힐 것이라는 생각은 책을 쓰는 사람에게 책임감을 갖게 한다.
P78
청년이라면 자기 자신과 가족과 사회와 세계와 자연과 우주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던지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이냐에 앞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P82
장년의 독서는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에 머무를 수 없다. 장년의 독서는 그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체험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깊게 심화시켜 그 문제들에 대한 자기 나름의 체계적 답변을 마련하는 독서가 되어야 한다.
P84
청춘의 독서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한 불타는 독서라면, 중년의 독서는 내면적 성숙을 위한 고요한 독서가 될 것이다.
P87
공자나 아인슈타인 같은 지적 업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고, 그만큼 유명하게 되는 것도 삶의 보람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업적을 남기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유명하게 되는 것보다, 그런 목적 이전에 오로지 앎 자체, 진리 자체에 정열을 갖고 자신의 지적 세계를 가능한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능력, 분수, 처지에 따라 자신의 지적 세계를 넓혀간다면 그만큼 그의 세계는 확대되고 그만큼 그의 삶은 깊고, 그만큼 그의 삶은 풍부하게 된다. 설사 내일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송장이 되더라도 그 순간까지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알아가는 기쁨, 그 보람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91
독서의 근본적 목표는 인간의 변화에 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나 자신의 내적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바에야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뒤나 아무런 변화가 없이 똑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 것인가?
P126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서관이나 친구들을 통해 책을 빌려 보기도 하지만 언젠가 돌려줄 생각에 부담이 되고 책에 마음대로 줄을 긋거나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다른 데 쓸 돈을 아껴서 필요한 책과 읽고 싶은 책 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호기심이 또 다른 호기심을 낳고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꾸 책을 사게 된다. 한계를 모르는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독서열은 계속 책을 사들이게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한권 두권 늘어나는 책은 점점 서재의 수용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P137
안동에 가면 퇴계 이황이 글을 읽고 가르치던 도산서원이 있고 퇴계가 앉아서 글을 읽던 돗자리가 원형 그대로 깔려 있고 퇴계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광수나 이상이나 김수영의 서재는 아예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얼마 전에는 최남선이 살던 집이 완전 철거되면서 우리나라 근대 지성사와 문학사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버렸다.
P176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도 있다.
P179
“신촌 기차역에서 일산으로 가는 기차는 왕복 1시간 20분이 걸렸다. 캔커피 하나, 책 두 권을 들고 매주 기차역으로 간 적이 있었다. 역 근처 서점에서 신간 한 권, 잡지 한 권 사는 기분을 늘 상쾌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리기 싫어진다.”
P192
파리 만이 아니라 서울 거리에도 길을 걸어가면서 책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걸어가면서 책을 읽어도 넘어지거나 어디에 부딪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책의 여신이 책에 빠진 사람을 보호하는 모양이다.
P196
영국에서는 서점을 bookshop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bookstore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서점(書店)과 더불어 서관(書館), 서림(書林)등의 한자어가 함께 쓰였다. 당시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은 박문서관과 한남서림이었다. 서점, 서관, 서림 가운데 ‘책의 숲’이라는 뜻을 담은 서림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데 ‘책 파는 상점’을 뜻하는 서점이 점점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대현 서점들이 서점 대신 ‘글의 창고’라는 뜻을 담은 문고(文庫)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가장 눈에 띄는 보기다. 1970년대 서울에서 가장 컸던 서점은 종로서적이었다. 그것에서 종로3가 쪽으로 조금 떨어져 양우당이라는 서점도 있었고, 신문로 쪽에는 범한서적이라는 서점도 있었다. 범한서적이나 종로서적은 서점이면서 출판사도 겸하도 있었다. 그래서 서점이라는 칭호 대신 서적이라는 간판을 달았던 모양이다.
P198
<근대의 책 읽기>의 저자인 국문학자 천정환은 이렇게 토로했다.
서점에 가는 일이 두렵다. 서점에서 수많은 책 사이에 서 있는 일은 고통 그 자체이다. 서점에 가지 않은 얼마 동안 책들이 쏟아져나와 있다. 그 책들을 들추고 있노라면 내 게으름과 무식함이 발가벗는 것 같다.
P206
오늘날에도 센 강변에는 약 80여 개의 부키니스트 중고책 서점이 오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부키니스들의 초록색 철제상자는 파리 시 소유로, 파리 시가 심사를 거쳐 서적상에게 영구 임대한다. 그 대신 서적상은 책 판매수익의 5퍼센트를 파리 시에 납부해야 한다. 서적상이 사망하면 자동 상속은 안 되지만 가족들이 승계를 신청할 수 있다. 서적상들은 개인 연결망을 통해 장서가들이 사망하고 난 뒤 인수하거나 고물상을 통해 사들인 책을, 먼지를 털고 바라믕ㄹ 쏘인 다음 작가별로 시대별로 분류하여 초록상자 속에 진열한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 각 서적상들의 전공 분야를 알 수 있다. 정치가나 연예인 들의 전기물을 모아놓은 상자가 있는가 하면, 1차대전과 2차대전을 중심으로 전쟁에 관한 책을 모아놓은 상자도 있다. 그 밖에도 중고서적상의 취향에 따라 20세기 문학, 예술사, 종교사, 왕실의 역사, 파리 여행기나 관광안내, 영화 등 고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의 책들이 상자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다. 책 전체를 셀로판지로 싸고 오른쪽 위에 매직펜으로 가겨을 써놓기도 하며 때로 강변의 둑 위에 책을 올려놓기도 한다.
P233
책 속의 문장에 눈길이 닿으면 냉동되어 있던 생각의 얼음들이 녹아 따뜻해지면서 생각의 아지랑이를 무럭무럭 피어나게 한다.
도서관에는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표명하는 책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책들은 들리지 않는 소리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P236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도서관에 소장된 책의 입장이 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무덤이 되느냐 보물이 되느냐,
내가 말을 하느냐 침묵을 지키느냐는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친구여, 욕구 없이는 부디 들어오지 마라.
도서관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원전 280년경에 북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였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거대한 도서관 이야기다. 당시 지중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주의적 이상을 지식의 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건립한 이 도서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재에 있던 장서를 그대로 가져와 소장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책을 모아서 무려 70만 권의 장서를 소장한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이었다.
아테네와 로마가 인문학의 중심이라면 알렉사드리아는 자연과학이 강했다. 아르키메데스와 유클리드가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들은 아마 이 도서관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런 유명한 학자들만이 아니라 클레오파트라도 그곳에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도서관은 여러 번에 걸친 전쟁으로 수난을 겪다가 기원전 48년 카이사르가 일으킨 전쟁의 와중에 불타 재가 되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2004년 그 자리에 다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1974년 유네스코가 인류문화의 상징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세계 최대의 도서관을 건립하자는 제아능ㄹ 한 지 30년이 지나, 드디어 그 도서관이 완공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도서관이 부활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에는 중동의 산유국들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도서관은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도서관의 서가에 처음 꽂힌 두 권의 책은 코란과 성서였다.
P241
도서관 서가의 수많은 책들은 19세기 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던 멜빌 듀이가 1876년에 창안한 십진분류법에 따라 총류, 철학사상, 사회과학, 자연과학, 어학, 문학, 예술, 역사 등으로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다.
P244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동과 서, 옛것과 새것을 두루 찾아 읽었으며 그것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 청년 시절을 보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립도서관의 참고 열람실에서 이루어진 책읽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목죄었지만 날마다 책을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뎌냈다. 훗날 시인이자 평론가가 된 장석주의 회고담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에게는 도서관이 대학이고 대학원이었다.
P263
모든 책은 의무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기로 되어 있어서 정식으로 출판된 책은 어떤 책이든 다 찾아볼 수 있다.
P267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저자들에게 수액을 전달하는 장소
P285
얼굴의 형태는 태어날 때 결정되지만 얼굴의 분위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따라 달라진다. 스무 살까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얼굴로 통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행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 조금씩 그 사람의 삶이 얼굴 표정 속에 반영된다. 인생을 피상적으로 함부로 막산 사람의 얼굴 표정과 진지하게 삶의 의미와 깊이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발자크의 말대로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 용모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