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공상과학 소설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상을 철저하게 풍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약 80여 전에 쓰인 작품이라기 하기엔 너무나 현실성이 있어보이는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과 지금의 현실에도 반영시킬 수 있는 공상과학소설이자 풍자소설이라는 점이다.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던 소설과 영화가 있다. 소설은 얼마 전에 읽은 조지 오웰의 <1984>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이다. 두 소설과 영화는 맥락을 같이 한다. 하나의 체제, 사회가 있고, 이것은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철저한 규칙과 통제하에 운영되어 진다. 처음에 그런 사회와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힘이 들고 많은 갈등이 있었겠지만 어느덧 정착이 되고 세대가 거듭될 수록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집에서 채집용 큰 통에 달팽이를 키운다. 큰 달팽이들은 다른 곳에 있다가 왔으니 변화에 대해 감지를 했을 것이다. 얼마 후 달팽이들의 알에서 새끼 달팽이가 태어났다. 아마도 그 새끼 달팽이에게는 그 좁은 공간이 하나의 세계로 인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나타는 어떤 물체(사람의 손)은 하나의 신이 되어 먹이를 주고 물을 뿌려주는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누군가에 의해 사람들의 삶은 통제되어 진다. 어쩌면 태어날때부터...
<멋진 신세계>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계급이 정해집니다. 마치 음식을 만들 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듯이 각 계급에 따라 투여되는 것이 다르고 이에 따라 몸집의 크기에서 부터 지적역량에 이르기까지 다르게 태어납니다. 엡실론 계급, 감마 계급, 델타 계급, 알파 계급이 이렇게 다른 계급들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철저하게 조건반사적 교육이 진행되어 집니다. 뜨거운 곳에서 일하게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는 뜨거움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이는 나치 시대의 우생학과 어린 아이에게 세뇌교육을 시키는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다.
<1984>에서는 곳곳에 붙어 있는 텔레스크린과 곳곳에 숨겨지 있는 사상경찰관에 의해 사람들이 철저하게 감시 당한다. <설국열차>에서도 열차의 뒷칸으로 갈수록 계급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바퀴벌레로 만든 묵을 식량으로 삼고 있다.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철저하게 나뉘어진 모습, 그들만의 규칙과 통제로 나뉘어진 계급대로 영원히 그 사회가 돌아가기를 바라는 강자, 지배자들의 논리가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베어난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이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를 통제하고 개인의 주체성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얼마 전에 읽은 <커피는 원래 쓰다>에서 아랍에서 처음 유행한 커피하우스는 술탄 왕조에 의해 금지되었었다고 한다. 이유는 사람들이 그곳에 보여서 사회, 정치이야기를 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정치개혁에 대한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커피가 사람들을 생각하게 각성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강자와 지배자들에게 가장 큰 적은 약자와 피지배자들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그것을 바꾸어보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처음 들어온 계기 중에 하나가 전두환 시절에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정치계에서 큰 이슈를 덮기 위해서 연예인 관련 대형 스캔들을 터뜨린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려고 할 때, 자극적이고 생각하지 않고 관심을 확 끌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대로 그곳에 매몰되어 버리는 법이다. TV같은 경우도 어쩔 때는 멍하니 보고 있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아무런 개인의 노력없이 시선을 고정해서 생각을 없게 만들기에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광고는 나도 모르게 세뇌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지만, 절대로 획일성에 빠져버려서는 안된다. 한 예로 명품 가방을 만드는 나라가 아닌 소비하는 나라인 우리나라는 수십, 수백만원에 이르는 가방이 국민 가방이라는 말이 돌기도 한다. 예전에 배낭 여행할 때 프랑스의 루이비통 매장을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공사를 한다는 안내가 한국말로 씌어져있고 직원 중 상당 수가 한국인이거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명품 가방 소비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이들이 걸어 놓은 덫에 생각하지도 않고 빠지지를 않기를 바란다. 여러 이유를 고려해서 선택은 할 수 있지만, 항상 '생각'이라는 필터는 항상 한 번쯤은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멋진 신세계>로 돌아가 본다. 작품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시험관에서 태어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이들의 세계로 온 야만인이 '멋진 신세계'의 총통이 나눈 대화가 등장한다.
p305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추슬렀다.
"마음대로 하게"하고 그가 말했다.
작중 야만인은 불편함을 원한다. 유토피아를 가장하는 이들이 사는 디스토피아에서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경우에는 '소마'라는 알 약을 먹는다. 어렸을 때 드래곤볼 만화를 보면 선두콩 한 알만 먹어도 일주일이 배고프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정말 이런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음식이라는 것은 힘든 노동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해줄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사랑과 정성을 담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약속을 잡을 때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한다. 여기서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저 허기를 달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유대를 확인해고 함께 살아가는 힘을 서로에게 불어넣어주는 것들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전원주택을 원하면서 불편함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전원주택의 경우 잠깐 밖에 나와 신발을 신고 걸을 수도 있는 법이고, 겨울에 따뜻하게 하고 반팔을 입는 것이 아니라 추우면 내복을 입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원 주택에 살면서 아파트의 혜택도 원한다.
우리는 어쩌면 사회와 체제가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런 노력없이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매체가 아닌 자신이 직접 노력을 기울이는 창작활동과 독서활동 거기에 이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듯 하다. 어떤 갈등을 겪게 될 경우에는 불편하더라도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잘못됐다고 판단될때까지는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두 아들을 키운다. '뭐 하지 마라. 뭐 하지 마라'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한 번 말하고 나서 아이들이 정말 항상 다 고치고 내 말을 따른 다면 어쩌면 그게 더 나에게 걱정일지 모른다. 내 아이들이 후에 커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살기를 원하듯이 나 역시 이 사회에 매몰되어 있지 않으면서 나만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p12
"보카노프스키 법은 사회안전의 중요한 수단의 하나야!"
사회안정의 중요한 수단의 하나.
표준형 남녀, 균등한 집단, 보카노프스키 과정을 거친 한 개의 난자로부터 태어난 인간으로 충원된 작은 공장.
"아흔여섯 명의 일란성 쌍생아들이 아흔여섯 개의 동일한 기계를 조작하는 거다!"
p13
표준형의 감마 계급, 한결같은 델타 계급, 균등한 엡실론 계그의 경우는 이미 해결되었다. 수백만의 일란성 쌍생아를 생산할 수 있다. 대량생산의 원칙이 마침내 생물학에 응용된 것이다.
p20
"자연을 노예적으로 모방하던 영역에서 인간적 발명성이라는 보다 흥미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포스터 군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양손을 비볐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태아를 부화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야 암소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계급을 미리 정하고 조건반사적 습성을 훈련시킵니다. 우리는 사회화된 아기를 내놓습니다. 알파 계급 또는 엡실론 계급을 내놓아 장차 하수구 청소부로서 아니면 미래의 ..... " 그는 미래의 "세계총통"이라고 말할 예정이었지만 정정해서 미래의 "인공부화소장"이라고 말을 맺었다.
p21
"계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산소를 조금 공급하는 것입니다"하고 포스터 군이 말했다. 그렇게 되면 제일 먼저 침범당하는 기관은 두뇌였다. 다음은 골격이다.
p94
"그래요. 모든 인간은 지금 행복해요." 레니나가 맞장구쳤다. 그들은 그 말을 12년 동안 매일 밤 1백 50번씩 반복해서 들었던 것이다.
p98
모든 황금나팔에서 "포드 님"하고 육중한 저음의 찬가가 울려 나왔다. "포드, 포드, 포드 ......" 아홉 번씩이나 반복되었다. 버나드는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p111
"나는 그냥 나대로 있고 싶습니다. 울적한 나대로가 좋습니다.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타인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하고 그가 말했다.
p112
"나는 조용히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그런 추악한 잡음이 시끄럽게 울리면 바다를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멋진 음악 아녜요? 그리고 난 바다가 보고 싶지 않아요."
"난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 그는 머뭇거리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어휘를 찾고 있었다. "마치 나 자신 이상이 된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 훨씬 더 나다워진 것 같다는 말입니다. 다른 어떤 완전한 것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의 독립된 존재가 된 것 같다는 이야깁니다.
사회라는 조직체 속의 한 세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기분 말입니다. 레니나, 당신도 그런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레니나는 비명을 질렀다.
"무서워요. 무서워요"하고 그녀는 되풀이했다. "사회의 일부가 되기 싫다는 말을 어떻게 하실 수 있지요? 결국 모든 사람은 모든 타인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예요. 어느 한 사람도 없이는 살 수 없는 거예요. 엡실론 계급조차도......"
"그건 그래요." 버나드는 조소하듯 말했다. "엡실론 계급조차도 유용한 존재들입니다. 나도 그렇고요.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겁니다!"
레니나는 그의 신성 모독적인 말에 충격을 받았다.
"버나드!" 그녀는 놀란 나머지 당황한 음성으로 항의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요?"
버나드는 레니나의 어조와는 다른 어조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생각에 잠기면서 반복했다.
"아니, 진정한 문제는 내가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 - 내가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내가 혹시 그럴 수 있다면, 즉 내가 자유롭다면, 조건반사적 교육으로 노예화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버나드, 당신은 지금 가장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레니나, 당신은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으세요?"
"무슨 말을 하시는지 난 모르겠군요. 전 자유로워요. 자유롭게 가장 멋진 시간을 즐기고 있어요.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요."
버나드는 웃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행복합니다.' 우리는 다섯 살 때 그 문장을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레니나, 다른 방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당신 자신만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타인들과 같은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말입니다."
"난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반복해서 그 말을 하고 나서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버나드, 돌아가요. 난 이곳이 싫어요"하고 간곡히 부탁했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습니까?"
"알고 계시잖아요. 이 무서운 장소가 싫은 거예요."
"난 이곳이 - 바다와 달밖에 없는 이곳이면 우리가 더 친밀해질 줄 알았습니다. 군중 속이나 심지어 내 방 안에서보다도 말입니다. 내 말 이해하시겠습니까?"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의 몰이해를 원상 그대로 보존해겠다고 결심한 것 같았다.
"전혀 티끌만치도 이해할 수 없어요."하고 그녀는 어조를 바꾸어 계속했다. "그렇게 끔찍한 생각이 드는 순간에 왜 당신은 소마를 먹지 않나 모르겠어요. 먹으면 그런 생각을 말끔히 잊어버릴 텐데. 비참한 생각은 가시고 흥겨워질 것 아녜요? 아주 흥겨울 텐데."
p130
소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내적인 힘에 의존한 채 어떤 크나큰 시련이나 고통이나 어떤 박해에 직면한다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고 버나드는 전에 여러 번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는 심지어 고통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p138
"그건 노인들이 저렇게 되는 것응ㄹ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인들을 병으로부터 보호합니다. 그들의 내분비물이 인위적으로 청춘기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대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그네슘과 칼슘의 비율을 서른 살 때의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젊은 피를 그들에게 수혈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신진대사를 항상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노인들은 저렇게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는 다시 부연해서 말했다. "우리의 노인들은 대부분 이 노인의 나이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순살까지는 젊음이 원상 그대로 보존됩니다. 그러다가 꽝 하고 무너지듯 종말이 다가오는 겁니다."
p185
블룸즈베리 본부 4천 개에 달하는 방에 걸린 4천 개의 전자시계의 발늘은 하나같이 2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장이 즐겨 부르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 생산의 벌집'은 작업하는 기계 소리로 꽉 차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모든 것이 질서정연했다. 현미경 밑에서는 수많은 정충들이 긴 꼬리를 맹렬히 움직이면서 난자 속으로 머리르 들이밀며 돌진하고 있었다. 수정이 이루어진 난자들은 팽창하고 분열하거나 또는 보카노프스키 법이 이미 실시된 것은 싹이 트고 분열하여 수많으 태아로 증식되었다.사회계급예정실에서는 에스컬레이터가 위윙거리며 지하층으로 내려가고 붉은 노을빛으로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는 복막으로 된 쿠션 위에 얹힌 태아가 찌는 듯한 열응ㄹ 받고 혈액대용이나 호르몬을 배불리 먹으면서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는 독극물을 먹고 힘없이 쇠약해져 엡실론 계급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희미하게 윙윙거리는 소리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선반은 몇 주 동안이고 발달단계의 유구한 시간 속을 살며시 기어가서 최후에는 배양실에 도달하고 거기서는 새로운 병으로부터 출생하는 영하들이 공포와 경이의 첫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p186
지하 2층에서는 발전기가 윙윙 하는 소리를 냈고 엘리베이터가 급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육아실로 사용되는 11층 전체가 우유를 주는 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분류표가 붙은 1천 8백 개의 병 안의 1천 8백 명의 영아들이 파스퇴르식 살균법을 거친 외분비액을 동시에 빨고 있었다.
그 위로는 기숙사가 10층으로 차례차례 연결되어 있었는데, 아직도 오후의 수면시간이 필요한 어린 소년 소녀들이 자신들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분주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위생이나 사교성, 계급의식이나 초보적인 어린이의 연애생활에 대해 수면시 교육을 무의식적으로 받고 있었다. 그 위층에는 다시 유희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비가 왔기 때문에 9백 명에 달하는 좀 나이가 든 아이들이 벽돌이나 진흙으로 모형을 만들기도 하고 지퍼 찾기라든가 성적인 유희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p201
사실 거의 코가 없다시피 뭉그러진 83명의 새카만 단두의 델타 계급 노동자들이 냉각 압연을 하고 있었다. 네 개의 추가 달리고 철커덕철커덕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 56대가 매부리코의 붉은색 감마 계급에 속한 56명의 노동자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다. 주조소에서는 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조건반사 교육을 받은 1백 7명의 세네갈 출신 엡실론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머리통이 길고 모랫빛 머리칼에 골반이 좁고 모두 1미터 69센티에서 20밀리 안팎의 신장을 가진 33명의 델타 계급에 속한 여자들이 나사를 깎고 있었다.조립실에서는 2개 조로 나뉘어진 감마 플러스의 난쟁이들이 발전기를 조립하고 있었다. 두 줄의 낮은 작업대가 마주보고 있었고 그 가운데 부품이 실린 운반 벨트가 움직이고 있었다. 47명의 금발 머리가 47명의 갈색 머리와 마주보고 있었다. 47개의 들창코가 47개의 매부리코와 마주보고 있었고 47개의 주걱턱과 47개의 움푹 들어간 턱이 마주보고 있었다. 조립이 끝나자 18명의 똑같이 생긴 갈색 곱슬머리 여자들이 초록색 옷을 입고 검사를 하고 다리가 짧고 왼손잡이인 34명의 델타 마이너스 남자들이 그것을 상자에 넣었고 새파란 눈과 주근깨투성이의 63명의 엡실론 저능아들이 대기중인 트럭과 전차에 그것을 적재했다.
p223
<생물학의 신이론>이라는 것이 무스타파 몬드가 방금 다 읽은 논문의 표제였다. 그는 잠시 명상하듯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 있다가 이윽고 펜을 들고 속표지를 펼치고 썼다.
'목적개념에 대한 필자의 수학적 검토는 참신하고 극히 독창적이지만 이단적이다. 현재의 사회질서에 관한 한 그것은 위험하고 해로운 요소가 잠재되어 있음. 출판불허.' 그는 출판불허라는 말에다 밑줄을 그었다.
'이 필자를 감시하기 바람. 세인트 헬레나 섬의 해양생물학 연구소로 전보발령을 내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서명을 하면서 가엾게 되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걸작이다. 하지만 일단 목적론적 해석을 용인하기 시작하면 -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는가! 그것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확고한 사상을 지니지 못한 자들이 받은 조건반사 교육을 백지로 돌릴 가능성이 있는 사상이다. 지고의 선으로서의 행복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상실케 하고 그 대신 인간의 최종목적이 어느 피안에 있다고 믿게 할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최종목적이란 현재의 인간 영역 밖에 있으며 인생의 목적이란 행복의 유지가 아니라 의식의 강화와 세련이며 지식의 확대라는 믿음을 심어줄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사실 그것이 옳은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총통은 생각했다.그러나 현재의 여건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다. 그는 다시 펜을 들어 출판불허라는 단어 밑에다 두번째 줄을 그었다. 먼저 그었던 줄보다 더 두껍고 더 진했다. 그는 다시 한숨을 지었다. '행복에 대한 사색을 허가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p265
이제야 눈에 비칱 것을 이해했다. 공포와 염증에 사로잡힌 채, 이것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망상적인 광경, 악목 같은 획일, 구별할 수 없는 닮은 꼴들의 군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쌍둥이들, 쌍둥이들 ...... 구더기들처럼 그들은 린다의 신비한 죽음을 더럽히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구더기는 구더기지만 보다 크고 통통한 이 구더기들은 지금 그의 슬픔과 회오 속으로 기어든 것이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당황하고 겁먹은 눈으로 카키색 군중을 노려보았다. 그는 지금 그 군중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자세로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인간들이 여기에 있는가!' 노래 속의 가사가 그를 야유하듯 귀에 울리고 있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
p267
"여러분은 갓난아기 상태가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갓난아기들입니다. 보채고 앵앵우는 젖먹이들입니다."
야만인은 그들의 짐승 같은 우둔성에 대해 어찌나 분개했던지 자신이 구해주러 온 대상인 그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고 있었다. 모욕적인 언사는 거북등과 같은 완강한 그들의 우둔성 앞에서 무력한 메아리처럼 되튕겨 왔다. 그들은 분노에 찬 표정을 눈에 담고 야만인을 멍하고 침울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p279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야. 강철이 없이는 값싼 플리버 승용차도 만들 수 없어.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일세. 자유라!" 총통은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델타 계급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기대하다니! 그들이 <오셀로>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다니! 정말 자네답군!
p281
"하지만 얼마나 유용한 존재인가! 자네는 보카노프스키 집단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군. 그러나 그들은 다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이야. 그들은 국가라는 로켓이 흔들리지 않고 곧장 날아오르게 만드는 회전의와 같은 것이야."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고 야만인이 말했다. "부화병에서 무엇이나 만들 수 있으면서 도대체 왜 그런 것들을 제조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제조를 수행할 때 모든 인간을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으로 제조하지 않는 것입니까?"
무스타파 몬드는 웃었다.
"우리의 목이 잘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야" 하고 그가 대답했다.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신봉하네. 알파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세. 알파 노동자로 채워진 공장을 상상해보게 - 다시 말해서 좋은 유전인자를 지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책임을 떠맡는 일이 가능하게끔 조건반사적으로 단련된 개별적이고 상호연관이 없는 인간들로 채워진 경우를 상상하란 말일세. 그것을 상상해보란 말일세!?하고 그는 반복했다.
야만인은 상상하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부조리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알파의 병에서 태어나 알파로 조건반사 훈련을 받은 인간이 엡실론 세미 모론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때 미쳐버릴 거야 - 미치든가 아니면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할 거야. 알파도 완전히 사회화되는 것은 가능하겠지 -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알파에게 맞는 임무를 맡길 때에 한해서 가능한 일이야. 엡실론적 희생은 단지 엡실론에게만 기대할 수 있는 거야. 그들에겐 그것이 희생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런 희생은 최소저항선이야. 엡실론의 조건반사 훈련이 자신이 달릴 궤도를 미리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야. 그들은 어쩔 수 없지. 애당초부터 예정된 것이니까. 설령 병에서 나온 후라 하더라도 엡실론은 여전히 병 속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 유아기와 태아기의 성격적 고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병 속에 들어 있는 거야. 하진 우리 모두가 ......" 총통은 명상적으로 말을 계속했다.
p282
"병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지, 하지만 우리가 우연히 알파로 태어나면 우리의 병은 비교적 큼직한 공간을 제공하지. 보다 좁은 공간에 머물게 되면 우리는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상류계급의 샴페인 대용액을 하층계급의 병 속에 부어넣을 수는 없는 거야. 그것은 이론적으로 명백해. 하지만 실제로도 증명된 사실이야. 사이프러스 섬에서 시행한 실험결과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어."
"그게 무슨 실험이었습니까?" 야만인이 물었다.
무스타파 몬드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재투입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실험이지. 그것은 포드 기원 473년에 시작된 것이야. 총통들은 사이프러스 섬의 주민을 모두 추방하고 나서 특별히 이만 이천의 알파 집단을 선정하여 그곳에 거주하도록 했었지. 그들에게 농공업의 모든 설비와 연장을 부여하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도록 자유를 주었었단 말일세. 그 결과는 모든 이론적 예언과 정확히 들어 맞았어. 토지는 제대로 경작되지 않았고 모든 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단 말일세. 법률은 무시되고, 명령을 해도 그것에 복종하려 들지 않았지. 이윽고 낮은 계급의 일을 맡은 자들은 모두 높은 계급의 일을 맡기 위해 부단히 음모를 꾸몄고 높은 계급의 일이 맡겨진 자들은 모두 온갖 수단을 다해서 현상을 유지를 위해 음모로 반격했었단 말일세. 육 년도 채 지나기 전에 그들은 치열한 내란을 일으켰던 거야. 이만 이천 명 중에서 일만 구천 명이 살해되었을 때 생존자들은 세계총통들에게 섬의 통치를 다시 맡아 달라고 탄원했던 거야. 그래서 그렇게 해주었지.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알파만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사회는 종말을 고한 것이야."
p283
"최적의 인구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빙산과 같은 형태를 띠도록 구성되는 것이야. - 구분의 팔은 물 밑에 있고 구분의 일은 물 위에 있어야 되는 거야."
"물 밑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까요?"
"물 위에 있는 것보다 더 행복을 느끼는 법이야. 예컨대 여기 있는 자네 친구보다 더 행복하지." 그는 지적했다.
"그 지겨운 작업을 하면서 행복하단 말입니까?"
"지겨워! 그들은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지겹기커녕 그들은 일을 좋아한단 말일세. 작업은 경쾌하고 어린애도 할 서 있는 정도로 간단하거든. 정신과 근육에 하등의 긴장을 가져오지 않는 작업이야 하루 일곱 시간 반의 쉽고 피로하지 ㅇ낳은 작업을 끝내면 소마가 배급되고 게임이 있고 무제한의 성희와 촉감영화를 즐길 수 있단 말일세. 그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뭐가 았겠나? 하긴......"
하고 그가 말을 첨부했다. "그들도 짧은 작업시간을 요구하고 있지. 까짓것 우리는 보다 짧은 작업시간을 부과할 수도 있네. 기술적으로 하층계급의 작업시간을 하루 세 시간이나 네 시간으로 줄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네들이 더 행복할 있을까?아냐, 그렇지 않을 거야. 벌써 일세기 반 전에 실험이 행해졌었지. 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네 시간 노동제를 실시했던 거야. 결과가 어떠했는지 알겠나? 다만 불안과 소마 소비량의 증가라는 결과가 따라왔었네. 단지 그것뿐이었지. 세 시간 반이나 늘어난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그 여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도피할 수 있을까 하는 강박관념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말았단 말일세. 발명국에는 노동절약을 위한 계획이 산적돼 있네. 수천 가지의 계획서가 작성되어 있단 말일세."
p285
"그렇지." 무스타파 몬드는 계속 이야기했다. "그것도 안정을 위해 희생시켜야 할 품목이야. 행복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예술 뿐만이 아니야. 과학도 마찬가지야. 과학은 위험한 것이야. 우리는 그것을 용이주도하게 묶어 놓고 재갈을 물려 놓아야 해."
p288
"때로 나는 과학이 그리울 때가 있어. 행복이란 아주 귀찮은 주인이야- 타인의 행복은 더욱 그렇더군. 사람이 행복을 아무 말없이 받아들이도록 훈련되지 않은 경우에는 진리보다도 더 심기기 어려운 주인이야."
p300
"하지만 가치라는 것은 인간의 개인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야만인이 말했다.
"물건의 가치는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 자체가 귀한 것일 때 가치와 권위가 붙는 것입니다."
p305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