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책을 조금씩 많이 읽어가면서, 어느 순간 소설과 역사 위주의 편협한 내 독서 분야를 조금 더 넓혀야 겠다는 생 을 했다. 그러면서 어떤 분야가 좋을까 고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책들을 들춰봤다. 그러다가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인 <말하는 건축가> 가 생각이 났고 그 때의 감동이 새삼 다시 느껴지는 듯 했다. 관심 분야는 내가 많이 접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에 시작해서 찾던 중에 건축, 건물, 집, 도시 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항상 걸어다니는 거리, 거리의 가로수, 수 많은 건물들 처럼 나에게 밀접한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만난 첫번째 책이 알랭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 이고, 두번째가 바로 <제가.살.고.싶은. 집은......>이다. 두번째 책을 접하고 나서 확실히 건축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고, 너무나 잘 선택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건축가 이일훈과 건축주인 국어선생 송승훈의 이메일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책은 그 자체로 나와 같은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하나의 내공이 깊은 선생이 쓴 건축개론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집에 담아내려고 하는 것들을 표현하면서 끊임없이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면서 접근하는 인문학적인 접근 또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것을 알게 되니, 마치 흥부의 박을 연 것 같기도 하고,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을 짓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도 너무나 좋았고, 잔서완석루의 요소요소를 보여주는 사진도 빼놓을 수 없었다. 또한 건축가의 설계도 역시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였다.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다. 이를 위해 내 삶의 고정관념을 깨고 미리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고정관념은 "이제 지금부터 고정관념은 버리자" 라는 이런 구호가 아닌 지식과 실력으로 갖추어지면서 서서히 없어지는 것이기에 교만하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책과 서재를 좋아하다 보니, 책의 표지에도 나오듯이 서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또한 책상이 있는 2층 또한 내게 다가왔다. 툇마루 역시 너무나 좋은 공간인 듯 하다.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고, 바람이 통하는 곳이고, 잠시 누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인 그 곳에 나 역시 잠깐 눈을 감고 누워있고 싶었다.

 

이 집을 짓기위해 그리고 그 전부터, 건축주인 국어선생 송승훈씨는 건축을 너무나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것 같았다. 건축가와 의사소통하는데도 건축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거기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았고, 잘 몰라도 건축가와 소통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잔서완석루'라는 집이 만들어 지고, <제가.살.고.싶은 집은......> 이라는 책도 만들어 진 것 같다.

마치 인문학 서적을 한 권 읽은 기분도 들었고, 자신을 성찰하는 하나의 수필인 것도 같았고, 건축에 대한 책인 것도 같았던 매력적인 책이었다. 아마 이 책이 내가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오늘 아침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건축 관련 책을 찾아서 온라인 서점에 주문해서 지금 내 책상 위에 세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집을 순례하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다시, 집을 순례하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

이 책들에서는 어떤 것을 알게 될까? 무엇에 감동받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p76
깨진 질감의 벽돌은 스플릿블록split block (쪼갠 벽돌)으로, 아주 단단하며 질감이 좋습니다. 단 기존의 블록보다 비싸고 인건비가 더 들지만 매력적인 재료입니다.

p77
통녑적 생활방식을 바꿔볼 부분도 이리저리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p81
인생이 매끄럽게 높아지지 않고, 얼마만큼 노력하면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을 얻어 한 단계 올라서고, 그 상태에서 다시 얼마만큼 애쓰다 보면 다시 한 걸음 내딛게 되고 그런 것이니까, 당장 얼마만큼 힘썼다고 곧바로 그만큼 진보가 있는 게 아니니 지금의 더딘 진보와 치유의 속도에 기 꺾이지 말라는 뜻일까 혼자 짐작했습니다.

p82
자연빛이라 인공조명과는 또 다른 부드러운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른 자연빛이 들어와서 성당 안을 다채롭게 하겠지요.

p83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구호만으로 고정관념은 깨지지 않고 역량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p84
삶의 방식은 사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가까이 또는 너무 당연한 탓으로 그러하지요. 이미 많은 단서가 잡힌 것ㅂ니다. 안방이 의례적일 필요가 없고, 서재 중심이고, 식당을 따로 마련치 않을 가능성과 거실도 클 필요가 없다는 것만 해도 큰 진척입니다.

p86 <book 건축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건축물을 볼 때 '형태와 재료'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에 대해 모두 깊게 아쉬워하고 있더군요. 실제 그 건축물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게 될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고 모양에 더 많이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안타까웠겠지요.

p87 <이일훈의 건축, 숨겨진 재미를 찾아서 - http://www.edunity.net
건강한 집이란 바람 잘 통하고 빛이 잘 들고 소음이 없고 진동이 없는 집이라고 하셨지요. 마루가 있으면 여름이 끝내주리라 싶습니다. 겨울에도 깨금발로 이 방과 저 방 사이를 종종거리며 걷는 일이 재밌을 것 같습니다.

p96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 같은 말이 장소와 공간이 바뀌었을 때 더 큰 설득력을 갖는지요. 아마 그것이 장소와 공간에 내용이 더해질 때 갖는 힘이겠지요. 도면을 보고 이해는 하지만 현장을 보고 더 큰 감동응ㄹ 느끼는 것도 장소의 공간이 힘을 갖는 경우고, 노동 현장의 갈등을 풀려고 고위책임자가 현장을 가는 이유도 아마 장소의 힘이 말할 수 없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p98
어차피 동네가 그린벨트가 아닌 '관리 지역'이라서 야금야금 개발의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가깝게 있는 필지들이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작은 필지로 대지 분할을 시도하는 집들도 나올 수 있습니다. 도시화는 지가 상승과 함께 진행되므로 한 번 시작하면 속도가 빠릅니다. 더욱이 주변에 산이 좋아서 주택지로 선호되는 탓에 땅 구하려는 이는 많고 매물이 없다면 큰 땅들은 분할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예측보다는 좀 더 많은 집들이 주변에 들어설 수 있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p101 <book 건축, 우리의 자화상 - 인물과 사상사 2005>

p118
거친 벽은 지루하지 않을 거야, 세월에 덜 누추해지고 나이가 들어도 추해지지 않고 멋있을 거야, 건축가가 지었지만 시골 동네에 위화감을 만들지 않기에 의미 있을 거야, 인생이 본래 황량하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 나는 그 모양이 마음에 와 닿았을까, 싸게 짓는 집에서 당당하려면 거친 모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이일훈 선생의 글을 보았잖아.

p119
건축이 그 땅에 세워지면 그 땅에 축복일 수 있게 해야 한다.

p127
<재색불이>, <기찻길 옆 공부방>, <도피안사>에 쓰인 재료는 스플릿블록입니다. 보통의 소위 '브로꾸'라는 것을 아주 강하게 만들고 표면을 거칠게 깬 제품인데 질감이 참 좋습니다. 혼합하는 재료에 따라서 다양하진 않지만 질감, 표면 마감, 색상의 연출도 가능합니다. 혹자는 돌로 보기도 하고, 혹자는 좋아하지만 혹자는 싫어하기도 합니다.

p129
머리를 쓰는 사람은 몸 쓰는 일이 휴식이다.

p135
대지를 산 일은 아무 걱정이 없는데, 답으로 된 땅 100평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법무사에게 여락해서 어떤 쓰임으로 허가받았는지 알아보라고 하면서 만약 특용작물재배로 허가를 받았으면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게 웬 난리야 싶었지요. 알아보니까, 주말농장으로 허가받았다고 하더군요. 밭 갈고 씨 뿌려야겠습니다.

현행 법으로는 밭에 집을 지으면 불법이지만 대지에 텃밭을 일구는 것은 합법이다.

p140
봄은 볼 것이 많아 봄이라는데, 이 봄에 저는 될 수 있으면 덜 보려고 합니다. 눈을 뜨면 밖만 보이고 안이 잘 안 보이는지라, 봄에는 오히려 눈을 감는 것이 봄을 안으로 들이는 법이 아닐까 합니다.

p141
지난 한 주는 학교 끝나고 저녁때마다 집터에 올라가서 나무를 심었지요. 첫날은 회양목 다섯 그루로 시작해서 그 다음날에는 철쭉 열 그루로 늘리고, 그 다음에는 스무 그루를 심었지요. 회양목 서른 그루쯤, 철쭉 열댓 그루, 조팝나무 다섯 그루, 작은 정향나무 두 그루 심었지요.

p143
봄비가 오는 소리가 좋아서 바깥에서 듣다가 잠에 빠지면서도 듣고 싶어서 창을 약간 열 수가 없을 때, 아아 신음하겠고요. 여름에 비가 와서 후덥지근할 때 창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싶은데 그 창문으로 그리 세지 않는 비조차도 들이쳐서 답답할 때, 아아아 신음할 듯싶어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빛에 따라 책을 읽고 싶은데 빛이 얼마 없어서 전깃불을 너무 오래 틀어놓아서 눈이 아프면 아쉽겠지요.

p144
회양목, 철쭉, 조팝, 정향나무들이 서로 잘 어울리고, 축대의 경사면에 적당합니다. 조팝나무는 무리를 이루면 좋습니다. 봄에 흰꽃이 장관입니다. 작은 꽃 무리가 일품입니다. 회양목은 가끔 퇴비를 주어 줄기가 실해지면 나무 모양이 그럴 듯합니다. 절대 가지자르기 하지 마세요. 도시에선 군식해서 빡빡머리 가꾸듯이 한 것이 많은데, 회양목은 그냥 크게 자라면 무척 자연스러운 맛이 납니다. 좀 외롭고 성글고 뭔가 나무로서는 기운 없어보이지만 사철 푸른 성깔을 보여 주지요. 큰 줄기 빨리 볼 욕심에 퇴비 얘기를 했는데 거름 없어도 잘 사는 나무입니다. 철쭉은 흔해서 관심을 못 끌지만 방창하게 꽅 피울 때는 화려하다 못해 서러울 지경으로 색을 내지요. 철쭉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으면 봄의 기운이 마치 움직이는 듯하지요. 정향나무도 석축에서 잘 자랍니다.

p150
집을 지은 후에 토질이 나빠지는 것은 뻔한 일이니 미리 너무 많은 나무에게 정성을 들이지 마십시오. 조금 아끼고 계시다가 후년부터 듬뿍 정을 쏟으시길 바랍니다. 공사 뒤에는 대대적인 토양 교체와 토질을 살리는 거름주기와 이른바 땅 살리기를 해야합니다.

p156
'나눔문화'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사회단체입니다. 노동시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박노해 시인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누리집은 http:/www.nanum.com

p158
재료 자체에서 오는 감각만 따졌을 때 인공재인 철판은 반환경적이다. 그러나 철은 재생이 가능하므로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진짜 황토로 만든 집은 허물면 다시 흙이 되기에 친환경적이다. 그러나 물에 약한 황토집은 1년에 한 번씩 수리해줘야 하는데 이 작업이 번거로워서 황토에 인공 첨가물을 사용하기 쉽다. 그러면 황토는 호흡하는 기능이 사라지고 반환경적이 된다. 자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친환경, 반환경적인 측면을 갖게 된다.

 p164
건축가 김진애는 <이 집은 누구인가>(샘터사, 2006)에서 부억이 여러 사람이 오고가는 마당이 되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책에는 그밖에도 비가 오는 데 집안에 있으면서 바깥공기를 쐬며 비 맞지 않는 곳을 만들면 멋지다와 같이 쏙쏙 집어내서 적용할 거리가 있습니다. 잠자는 방은 꼭 클 필요가 없고 작아도 편안하다는 내용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p172
참 김중업 선생님께서 생전에 자주 하신 말씀이 집이란 '어드메 한 구석에 기둥을 부여잡고 울 수 잇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p192
<모형 속을 걷다>(이일훈, 솔, 2005) 이 책을 읽고 저는 건축가 이일훈을 찾아갔습니다. 장안동 동네 서점 책장 아래칸에서 찾았지요.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건축책인 줄 몰랐지요. 건축에서 전통을 계승한다고 할 때 형태를 따르기보다 공간 구성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깊게 와 닿았습니다. 건축가가 건축물을 설계하며 겪은 여러 일과 사색과 애환이 오밀조밀 담겨 있어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며 포장마차에서 듣는 인생 이야기 같습니다.

p223
 자석으로 사진을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하는 벽

p227
유행 따른 건축물은 유행이 지나면 초라해 보입니다. 유행에 초연한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도 의젓한데 그 단순함을 놓치다니 안타깝지요.

p236
황토벽돌로 만든 방은 벽에 못을 박으면 안 된다고 하셨지요. 흑벽돌이 못을 견고하게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요. 못 박을 자리를 미리 정해두고 거기에 벽돌 대신에 나무 토막을 넣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바닥에 황토를 쓰면 한지로 마감하고 콩기름 먹여야 하는데 그게 내구성이 없어 훼손되기 쉬워서 신경 쓰 일이 많도고도 알려주셨고요. 미화시키지 않고 선생님 판단을 얘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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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기독교에 대한 신앙적인 차원이 아닌 '성경'이란 그 매개체에 접근해보고 싶어서이다. '성경' 자체가 인문학의 보고이자, 사람 사이의 갈등과 지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종교적인 입장이 아닌 인문학적인 접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 이야기는 마치 최근에 읽고 있는 신영복의 [강의]를 성경 버전으로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바로 성경구절과 함께 그것을 강독해주는 구조로 되어있고 그 설명 또한 나 처럼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저자인 김민웅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아~! 이 사람이었구나. 예전에 토론 프로그램에서 기독교 관련 이슈에 대해서 나왔을 때 본 분이다. 일부 기독교 관계자들은 교회속의 언어와 세상을 바라보면서 충돌하고 있었는데, 이 분이 기독교와 현재의 사회와의 관계 및 변화해야 할 점이라던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을 보고 눈여겨 본 적이 있었다.

역시 글을 읽다보니, 그 분이 옆에서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처럼 신앙적인 차원이 아닌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한 번쯤을 읽어볼 만한 괜찮은 책인 듯하다. 그러면서 그 속에 담긴 뜻도 한 번씩 곱씹어 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P18

하나님은 인간의 삶이 안정되었다고 여기고 그의 기운이 고이려 하는 때 일으켜 세우십니다. 안락하다고 그냥 주저앉으면 안정이 아니라 퇴보이고 무너짐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노쇠해지고 맙니다. 또한 창조적 긴장을 가져올 만한 도전을 피하고 생명력 넘치는 상상력을 상실한 습관적인 인생으로 후퇴하며 틀에 박힌 삶의 무미건조한 존재가 되어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P19

과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새롭게 눈뜨고 자신을 옥죄던 운명의 사슬을 푸는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이 자신이 그토록 구했던 답을 줄 때 가능해집니다. 생각이 제 아무리 많아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은 단 하나이며, 선택의 여지가 하늘의 별처럼 많아도 결국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현실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당장에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우선은 유리하게 보이더라도 잠시 뒤에 가장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고, 불리하게 여겨지는 지점도 알고 보면 유리한 고지로 가는 고갯마루일 수 있습니다.

 

P30

어딘가에 도착했다가 다시 떠돌고 장막을 세우는 일련의 과정은 소모적이거나 어리석거나 아니면 몰라서 방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정작 뿌리내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는 힘을 기르는 절차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헤매고 떠도는 모든 과정이 우리의 영적 성장사가 될 수 있습니다.

 

P35

우리 역사에는 화냥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고 함부로 자기의 몸을 파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원래는 환향녀가 변모한 발음이라고 하지요. 과거 몽골족이 지배했던 원나라에 공물로 바쳐졌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 환향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을 고향에서는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수치로 여겼고, 마을의 치욕으로 여겨 능멸하고 욕설을 해댔다고 합니다. 이처럼 암울한 역사의 상흔인 환향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었지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우리의 여인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위안부나 정신대로 빼앗긴 역사가 있습니다.

 

P40

어떤 곤경에도 다시 길을 가는 의지와 용기가 주어지기를 기원하는 사람은 약해 보여도 결국 가장 강한 자입니다. 암담하게만 보이는 운명을 극복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 희망은 무너지는 법이 없습니다.

 

P45

인생에는 아파봐야만 깨닫는 게 있고, 눈물 없이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픔과 눈물, 떠도는 시간들은 모두 소중하고 결과적으로 아름답습니다. 고난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마주하는 방법, 그것을 알아가는 믿음의 지혜가 소중합니다. 아브람에게도 유랑생활은 그런 믿음과 지혜, 능력을 기르는 귀한 시간들이었지요.

 

P51

사랑하는 관계에서 분쟁이 생겼을 때 진상을 일일이 밝히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큰 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진상을 밝히려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의 책임을 묻고 비난하게 됩니다. 물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진상을 규명해야 하고, 강자가 약자를 짓누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정의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로의 힘이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서로의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한 상황이라면 감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건 자칫 서로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P67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승자는 들뜰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면 제 자신이 잘났다는 헛된 자신감에 사로잡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남들을 우습게 알기 시작합니다.승리의 순간에 교만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참 어렵습니다. 원상회복을 이루었다고 해도 이 기회에 한몫 챙기고 싶은 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P96

우리는 누군가 깊은 슬픔에 빠져 있거나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내가 위로한다고 해서 과연 위로가 될까?” 하고 회의적인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한 번의 위로와 관심이 큰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슬퍼하고 낙심에 빠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마음을 나누면 그 영혼은 점차 안정되어갑니다. 따뜻한 눈길 한 번, 정성어린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어 사람을 일으킵니다.

 

P110

남자들이 성적 능력에 자신이 있으면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경향도 이러한 본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힘을 포악하게 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성범죄와 같은 사건들은 남성의 여성들에 대한 성적 유린과 폭력입니다. 전쟁이 일어나 집단 강간이 일어나곤 하는 일들도 모두 남성의 성적 능력이 폭력적으로 변한 결과입니다. 성이 생명의 능력이 아니라 죽음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남성의 생식력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태어나는 자손들이 모두 건강하다면 좋은 일입니다. 손상된 생식력으로 병약한 자손이 태어나는 것을 바랄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남성의 생명력이 올바로 쓰이지 않으면 많은 죄와 폭력이 생겨납니다.

 

P156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좌절하는 이유가 단지 우물을 빼앗겼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것은 닥친 현실일 뿐입니다 .우리가 정작 무너지게 되는 것은 우물을 새롭게 팔 의지를 일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이 의지만큼은 잃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서면 됩니다. 누군가 우물을 메우면 다시 파면 되고, 그래도 빼앗고자 한다면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억울한 형편을 반드시 아실 거라 굳게 믿고 흔들림없이 다시 길을 떠나면 됩니다. 누구나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에 마련입니다. 정말 힘들게 노력해서 성취한 것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이 억울함을 풀지 못해서 사람이 변하면, 그건 자신의 인생과 존재가치를 폐허로 만드는 길입니다.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래 또 파나가면 되지했습니다. 우물을 다시 팔 수 있는 의지, 이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그 결과가 나에게 축복이 될 것을 믿는 사람은 이삭과 같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P157

때로 인생에서 우물을 빼앗겼다고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마십시오. 우물을 파려는 의지만 있으면 언젠가 마른 땅에서 물이 샘솟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막혀버린 줄 알았던 브엘세바의 우물이 터진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그렇게 다시 물이 솟는 감격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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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나서 좀 지나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30년 가량을 무교로 지내오고 성향도 불교나 천주교에 가까우나 아내의 권유로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혼란이 많다. 종교라는게 이성적으로 다가가면 안되지만 지금까지 내 사고는 그렇게 굳어져 있었다. 지금은 단순히 지난 일주일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일주일의 안녕에 대해서 그냥 기도를 드리는 정도이다.

계속 고민중이다. 계속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지만 성경이라고 하면 한 번 쯤은 읽어 볼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종교를 떠나서 인문학적으로 뛰어날 뿐 더러, 유럽의 문화뿐만 아니라 각종 분야에서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가끔 성경책을 펼쳐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순히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글자 그대로 읽을 뿐이지 아무런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지나가 버렸다. 이 책은 그런 내용을 상세하게 그 배경과 내용을 풀어준다.

책을 읽다 보면 종교를 떠나서 너무나 다가오는 말이 많이 있을 뿐 더러, 나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지난 번 [이슬람교]를 읽었을 때와 어쩌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든다. 만약 내가 어떠한 한 종교를 믿더라도 절대 편협하게 믿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어떠한 것은 시대와 역사를 거쳐오면서 그 근본 사상은 변함이 없지만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들이 왜곡되어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조금 더 넓게 다가가고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알아가는 기쁨은 표현할 수 없을 듯 하다.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느껴야 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p57
자존감과 자만심은 다릅니다. 자만심은 자기를 스스로 높이면서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지만,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각성입니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되는대로 살지만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어떤 협박이나 유혹에도 자기를 값싸게 팔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허물거나 남에게 짓밟히지 않습니다. 

p73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바 있습니다. "온 세상을 다 얻고도 너를 잃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라는 존재,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에 이 세상은 주어진 생명의 힘을 나누는 의미를 진정으로 얻게 됩니다. 그만큼 인간은 우주 생명체계의 핵심이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p80
인간에게는 창조적인 상상력과 독자적이고도 개성적인 의지가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이 능력은 그 안에 본래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깨우치고 발휘하는 것이 창조적 진화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단순히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적응만 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가치를 새롭게 길어 올리면서 발전된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p126
당사자가 분명하게 알아야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기 내면이 진실한 눈과 정직한 생각으로 현실을 바라봤을 때 진정 자신과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의 힘이 나오지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일시적인 충격은 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진실한 자신가 마주해야 답이 나옵니다.

p130
자신과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세는 자기를 살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모든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당당히 책임져야 합니다. 피하려다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주체적인 성찰과 선택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택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능력은 온전하게 발휘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책임과 권리입니다. 우린 자신을 감추기 위해 걸쳤던 가면들을 모두 벗어야 합니다.

p159
참을 '인忍' 자는 칼 '도刀'자가 마음 '심心' 자 위에 턱 하니 있는 형상입니다. 그래서 참는다는 것은, 마음에 품고 있는 칼을 독하게 결심하고 뽑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p160
자기 성찰은 이토록 중대한 의미를 가집니다. 성찰이 깊어야 책임전가의 유혹을 이기고,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생명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를 경쟁적 적대감으로 대하는 존재는 생명을 파괴해도 무감각해지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쟁과 지배가 아니라 사랑과 생명의 가치를 최선의 자리에 올려놓고 살아가는 인간, 그런 공동체가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의 원형입니다.

p269
인간의 성장사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아이가 아버지의 모순과 위선에 실망하고 그 실망이 점점 커져 아버지에 대해 내심 경멸하거나 자신과 아버지를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느꼈다고 가정해보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이 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면 그 자신도 아버지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경험하게 마련입니다. 인생의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모순과 위선에 빠지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은 고독의 심연을 경험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누구도 알지 못할 슬픔, 위로해 줄 수 없는 고뇌, 나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상처가 생긴다면 그때에 비로소 그는 부모 세대의 고통과 외로움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됩니다. 이건 단순한 연민과 배려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이런 인생의 시련을 지나오셨구나. 아버지가 아무리 대단하셨다고 해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뇌가 있으셨겠지. 회의하고 불안해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고, 혹시 그로 인해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괜한 걱정이라도 하게 될까봐, 그 모습을 숨기시면서 홀로 골방에서 지내신 적은 없으셨던 걸까? 그의 마음을 위로할 존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고, 그래서 때로는 혼자 술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시간이 아버지에게도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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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음식, 술에 관련된 책에 관심이 생겨서 찾던 중에 발견한 책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라하는 세계사도 들어있으니 이거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그에 덤으로 창비 회원이기에 40%할인 혜택도 얻게 되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중요하지 않은가~

목차 부분을 살펴보면 10개의 주제(감자,소금,후추,돼지고기,빵,닭고기,옥수수,바나나,포도,차)로 되어 있으며 내용은 각 음식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나 관련 음식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위의 주제에서 보다시피 너무나 흔하게 접하는 음식의 종류인데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재미나 역사적 사실과 유래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칠레산 포도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예전에는 비싸서 하나씩 팔던 바나나를 이제는 한 다발로 몇 천원에 살 수 있다는 사실등 우리의 일상에 관해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창비의 청소년문고시리즈이어서 내용의 전개방식도 심플하고 역사적 사실도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책을 읽는데 있어서 불편함이 없어서 오랜만에 쉽고 재미있게 읽게 내려간 것 같다. 때때로 음식 하나만 던져놓고 너무나 역사적 사건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내용의 흥미로움때문에 애교로 넘어가면서 읽어내려갔다.

200페이지가 안되는 얇은 책이어서 조금은 아쉬웠고, 아마 작가가 2편을 준비하지 않나 하는 의심과 함께 기대도 해본다.
이 책, 짧지만 글의 소재, 전개방식, 주제 등을 보면서 창의적인 무언가를 얻은 듯하다. 재미있는 책이다 ~!!

아래는 책에 나오는 음식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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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이후에 읽는 두번째 책이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를 읽었을 을 때는 내 머리를 치는 생각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이렇게 사회의 보편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고 실천해 나갈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을 했다.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가 교육, 공부, 학습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돈, 공동체, 교육이라는 주제로 전개를 하고 있다. 사실 내용의 전개 방식이나 그 컨텐츠는 사실 이 두책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역시 또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구나! 하고 좋아라 하면서 이전 책과 너무 유사해서 다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돈'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는데, 역시 돈에 대한 관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것은 짐작은 하였지만 실상 돈에 대한 이야기 전개는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고미숙 작가에 대한 내 기대치가 높아서 생긴 일이다. 하지만 역시 그 참신한 컨텐츠와 공동체와 증여라는 방식으로 전개한 내용은 인상 깊었던 같다.

책 속에서 [가난뱅이의 역습],[버리고 행복하라],[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 이라는 또 다른 책에 대한 인용은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 다음 읽을 책에 포함이 되었다.

[수유+너머 구로], 그리고 이전에 수원시 평생학습관을 통해서 알게 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나중에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관련 책을 모두 읽고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글을 쓰는 기회를 만들겠노라고 작은 다짐을 하나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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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5일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진행하는 김두식 교수의 강연을 가게 되었다.

창비에서 온 문자 강연 초대 문자와  이전에 읽었던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기존에 읽었던 책들과는 새로운 느낌을 얻어서인지 과연 김두식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강연에 참석하기 이틀 전에 서둘러 교보문고에서 <욕망해도 괜찮아> 책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강연 참석하기 전에 마지막 장을 마치며 김두식 교수의 강연을 보게 되었다.

우선 아쉬웠던 부분은 강의가 책의 한 챕터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강의를 하면서 흥미롭기도 하고 짜증나는 부분이 있었다. 강연이 끝이 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첫 질문은 바로 기독교 집사이신 어떤 점잖게 보이는 한 남자 분이 왜 책에 기독교 비판적인 부분이 많느냐. 그런 것 이외에 많은 좋은 부분이 있다는 식의 논리로 김두식 교수와 언성이 있는 질의 응답을 하였다.

하지만 그 질의응답을 보고 들으면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선 책을 읽지도 않고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그 질문자와 질문자의 질문에 한 번 더 생각하지않은 '죄송합니다. 선생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이런 식으로 약간은 비꼬는 방식의 대답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에게는 무언가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 다른 청중 한 명은 계속되는 기독교 관련 질문에 열을 올리는 그 질문자에게 고함을 지르며 "이 기독교 근본자야." 이런 말을 하고..... 다시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린 놈의 XX' 등이 난무하는 정말 멋진(?)  강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오호!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고 아니 이런 강연에 참석할 정도면 아마도 김두식 교수가 얘기하는 바로 A 독자 일 것을 가정하면 다른 이들보다 책과 인쇄매체를 더 많이 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바로 어쩌면 좀 더 욕망을 감추고 자신의 환경에 매몰되어 자신의 생각 속에 머물러 버리는 그런 욕망을 참고 또 참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그리고 최근 들어 대하 소설과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수필류를 읽게 되는 이유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관음증과 나에게 없는 무언가를 지니고 살아가는 타인들에 대해 조금 더 경험해보기 위해서 였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름 생각해볼 만한 것이 많았던 책이었고 강연이었던 것 같다.

얼마전 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직도 종교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에서 이성적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것들을 접하다 보니 아직 고민이 많은 상태이다. 심장과 머리로 생각하고 느낀 후, 다시 한 번 쯤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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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에 우리는 왜 유성룡을 읽어야 하는가?"

위기돌파 능력 유성룡은 흔히 우유부단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겸비한 인물로, 임진왜란 와중에 발생한 여러 위기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해냈다.

비전제시 능력 유성룡은 행정에 박식한 관료이자, 군사에 통달한 병법가이고, 경제에 해박한 학자다. 때문에 그는 전란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과 정치, 경제, 민생 등 국가 발전에 필요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

탁월한 국정수행 능력 유성룡은 대동법, 진관체제, 중강개시, 기득권 타파, 노비 충군 등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 실시해 백성들의 공역부담을 덜어 주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뛰어난 현안해결 능력 유성룡은 어떤 자리에 있든지 명분보다는 시급한 현안해결에 매달렸다. 극단이 아닌 중용의 길을 택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했다.

능수능란한 외교력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유성룡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고, 일본의 전략과 계략을 한눈에 파악한 뒤 이를 역이용하는 등 뛰어난 외교 전략을 펼친다.

유연한 사고방식 유성룡은 표면적으로 성리학자를 자처했지만 교조적인 신봉자는 아니었다. 모든 학문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열린 자세를 갖고 있었다.

날카로운 인재발탁 능력 유성룡은 하급 무관이라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했고, 두 장수는 임진왜란 3대첩 중 행주대첩과 한산도대첩을 승전으로 이끈다.

책의 내용을 이루는 큰 줄기가 있다면,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받치고 사대부의 특권보다는 나라의 존립과 백성들의 안정을 꾀하는 유성룡의 모습과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을 떠나 난을 피하고 싶어하고 난이 끝난 후에는 진정한 공신들을 자신의 경쟁자로 여기고 처단하는 선조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사대부라는 자신들의 특권을 버리지 않고 권력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는 그 알량한 사대부들의 모습과 조선조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지금도 항상 볼 수 있는 당파싸움이 그 병풍을 만들어 주고 있다.

너무 안타까웠다. 중간 중간 징비록에 나와있는 그 당시의 처참한 상황속에서도 그저 세치 혀로 당파싸움이나 하려 했던 것들이 너무나 화가 나게 했다.

약 520년 전의 임진왜란(1592)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유성룡> 결코 5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래서 역사는 반복되고 과거로 부터 배워나가는 것이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후, 서로 상이한 의견을 내어 놓은 대신들, 명나라에 의존하려는 조선의 왕 선조, 외교력의 부재로 인한 국가적 손실, 서로 다른 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등이 과연 500년 전만의 일인가? 라고 물어본다.

과연 2012년 대한민국을 사는 내가 접하는 현실의 모습은 과연 위의 상황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딱히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러한 리더 바로 유성룡이 다시 한 번 나타나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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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지난주 코엑스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창비의 [창작과 비평]을 정기구독하게 되었다. 정기구독을 하면 창작과 비평 뿐 아니라 창비에서 출판된 책을 한 권 준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분좋은 것은 구독 기간 중에 창비에서 간행된 책이 무조건 50% 라는 사실이다. 그 때, 한 권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날 때면 나는 항상 감사한다. 지금까지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을 보고 읽어도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의 차이는 바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한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위의 그림처럼 겉표지는 다들 웃는 모습의 일러스트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이 그림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저렇게 다들 웃고 있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표지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들은 책 내용 속에 등장하는 소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반대인 다수에 의해서 침혜되는 소수의 권리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 책의 이야기는 진행되어 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의 내용을 기반으로 내용이 전개되다 보니 조금 더 흥미롭게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고 읽는 내내 이상하게 내 자신이 부끄럽고 그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 역시 인권침해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침해되는 소수의 사례는 어떠한 경우가 있는가? 나 역시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대상들을 잠깐 소개하려 한다.

[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 표지 처럼 밝지만은 않은 주제들이다. 각각의 소주제들 안에서도 여러가지 생각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 그냥 읽어내려가면서 무언가 나를 건드린 내용에 대해 잠깐 정리해보려 한다.

사람잡는 우생학 히틀러는 영화[300]의 스파르타인들이 꿈꾸었던 '우월하고 건강한 인종의 지배'를 과학적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건강한 아이들에게 제3제국의 미래가 있다고 믿었던 히틀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아이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만이 아리아인의 승리를 위한 필수적 요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찌 의사들에게 치료 불가능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모두 안락사시키도록 지시했고, 1939년부터 이들에 대한 등록이 시작되었다. 1940년에서 1941년까지 약 5천~ 2만 5천명의 독일인 장애아들이 살해되었고, 최소한 27만 5천명의 성인이 같은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말이 안락사지 대부분은 가스에 의해 살해되었고, 더 효율적인 살해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박스 안에 집어넣고 폭탄을 터뜨리는 참혹한 학살이 자행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27만 5천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도 점령지구 내에서 훨씬 잔혹하게 살해된 비독일인 장애인들을 제외한 순수 독일인만의 수치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적장애인만 살해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차 대전에 종군하여 부상을 입은 장애인들도 희생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전쟁 수행에 비생산적인 사람은 모두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장애에 대한 각종 편견에 맞서 켐프가 쟁취하려고 했던 것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정상이라는 인식이었습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은 언제나 장애인이 정상인에 비해 뭔가 '비정상적'이며 '불완전'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상적이고 완전한 상태를 먼저 정의한 후,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모두 비정상으로 정의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장애인을 드는 것이지요. 에범 켐프를 비롯한 장애인 운동가들은 장애인도 정상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도 최대한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정상 또는 비정상이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결국 그 대상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개입된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불타오르는 나무 위에 흑인젊은이가 목매달려 있고, 그 주변에 백인 군중들이 모여 있는 사진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1930년대의 린치 장면입니다. 죽어가는 흑인남성은 불에 타서 옷이 그슬리고 온몸은 상처투성이며 얼굴은 피가 철철 흐르는 상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백인 남성, 여성, 어린아이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넘쳐흐릅니다 .플래시가 터진 사진 프레임 안에는 기껏 수십명이 있을 뿐이지만, 어둠 속에 보이는 보자들의 그림자로 미루어 볼 때 훨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르완다 제노싸이드에 대해 흔히 90만명이 사망한 하나의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오해합니다. 하지만 제노싸이드는 하나의 사건이 아닙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르완다 제노싸이드는 한 명이 죽은 살인사건이 90만개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고, 죽음을 맞이한 상황도 모두 다르며, 지역에 따라 학살의 모습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제시한 것은 위의 여러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 중 장애인과 인종갈등에 관련된 몇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 책의 표지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사람은 한 명, 한 명 모두 하나의 우주이다. 세상의 어떤 일 보다 내 생각이 존재하고 사유할 수 있는 내가 존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나의 상실은 바로 모든 것의 끝이요. 우주의 소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감히 누가 그러한 우주를 마음대로 건드린단 말인가! 정말 무섭다. 이런 일을 바로 다수라고 불리우는 평범한 나같은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다. 소름끼친다.

 우리 인간들은 DNA가 99.95%가 동일하고 단, 0.05% 만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이 0.05% 라는 이 사소함이 99.95%를 과감히 배척하고 차별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단 말인가! 얼마 전, 신문에 'SKIN'이라는 책 소개를 보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역사가 바뀌었고 인종간의 살육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피부색은 단지 햇빛에 노출될 경우 피부를 보호하기위해 멜라닌 양이 서로 다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 라고 생각하고, 서로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한 사람이 모두 하나의 우주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직도 인권은 이 시간에도 유린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우선 사람은 살고 보아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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