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김중혁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몇 번을 언급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그 전에는 '커트 보니것' 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작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관심으로 이어진다.
'커트 보니것'이라는 이름을 온라인서점에서 찾아보니 여러 권이 나왔다. 그 중에서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그의 회고록으로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회고록으로 살짝 워밍업을 해보고, 작품을 찾아나가도록 해야겠다.
우선 낯설은 작가이기에 책의 날개에 적혀 있는 작가 소개부터 차근차근 읽어본다.
<커트 보니것>
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1922년 11월 11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인 건축가 커트 보니것 시니어와 이디스 보니것 사이에서 태어났고, 2007년 4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블랙 유머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로, 리처드 브라우티건,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학과 미술에 재능이 뛰어난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가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유머감각을 키웠다. 청년기에는 코넬 대학, 테네시 대학 등을 오가며 공학자와 작가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다 1943년 2차 대전 막바지에 징집된다.
전선에서 낙오하여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그곳에서는 히로시마 원폭에 버금가는 인류 최대의 학살극이 벌어진다. 연합군이 사흘 밤난으로 소이탄을 퍼부어 도시를 용광로로 만들고, 십삼만 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했던 이 체험을 통해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난다.
『나라 없는 사람』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소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 짧은 글 속에서는 인권, 반전, 환경, 유머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문체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내용은 진지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유머와 비유등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든다. 동시에 쉽지만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다. 독특한 문체다.
나는 이런 글이 너무나 좋다. 첫 몇 장을 읽자마자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 모습에는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커트 보니것은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냈다.
권력은 여전히 거칠고 난폭한 억측가들의 손에 있다. 그들은 지식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그 억측가들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값비싼 졸업장과 함께 모든 지식과 교양을 내팽개쳤다. 그중에는 심지어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의 졸업장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골적인 억측이 이렇게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부탁하건대 여러분은 그러지 말아달라. 하지만 우울한 사실이 있다. 만일 여러분이 계속 교육을 통해 얻은 광대한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때문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억측가들이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억측해보건대 열 배 정도는 될 것이다. (p87)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보다 신뢰도가 낮다는 정치인을 생각할 때 드는 생각이다.
분명히 능력있고 자신의 본분을 아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일부 인물들은 도무지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없는 말들을 하고 행동을 한다.
누가 봐도 저건 아닌데 라고 생각되는 것을 서슴치 않고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은 옆에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아마 그들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의 위트와 통찰은 여러 군데에서 드러난다.
이 지구와 "빌어먹을 인간"을 창조한 것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의심이 든다면 조간신문을 읽어보라. 어떤 신문이든 상관없고, 어떤 날짜든 상관없다.
"우리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가지고 온갖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독성물질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죽이고 있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네. 우리가 미쳤다는 증거 아닌가? 내 생각에, 지국의 면역체계는 AIDS,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그러니까 그 멍청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 기억한?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구절은 식인 행위를 말하는 거라네. 잡아먹을 게 얼마나 많은가? 그래. 지구는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것 같아." (p119)
책의 중간 중간에는 이렇게 그가 남긴 삽화들도 등장한다. 이 삽화는 몇 개는 작은 액자를 해서 간직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커트 보니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휴머니스트적이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
책의 뒷 표지를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던 보니것이 약속을 깨뜨리게 해주셔서 - 스터즈 터클(작가, 방송인)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 <뉴욕타임즈> 북 리뷰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보니것의 풍자에는 품격있는 유머와 날선 재치가 담겨 있다." 이 표현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에세이 하나에 작가 보니것에 매료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의 작품 중에 몇 번 들어 본 게 『제5도살장』인데 절판이 되어서 구하기가 힘이 든다. 늦지 않게 이 책이 재출간되거나 어디서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보니것의 한 마디로 마치겠다.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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