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너무 젊은데······."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또렷한 발음으로 그녀가 한 말은 이 세 마디뿐이었다. 사막처럼 희미하고 고통스럽고 억눌려 있는 수많은 문장들이 묻혀 있는 오랜 침묵이 흐른 뒤에 나온 세 마디 였다. 울 수도 없었다. 커다란 불덩이가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 저 밑바닥부터 타오르면서 눈물을 말려 버렸다. (p12)
누군가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카뮈의 마지막 날들』 입니다. "가장 잘못된 죽음의 방법이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 이라고 말했던 카뮈는 1960년 마흔 일곱살의 나이에 그가 부조리하게 생각했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을 담고 있는 책으로 작가는 카뮈의 입장이 되어 그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아직 너무 젊은데······." 라며 안타까워 하는 이는 카뮈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열두 살 때 티푸스에 감염된 이후에 거의 벙어리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카뮈를 낳은 다음 해인 1914년에 남편을 세계1차대전에서 잃게 됩니다. 이번에는 자식을 먼저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녀가 내뱉은 세 마디는 어쩌면 아픔의 극한을 표현해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카뮈는 아버지 없이 외가에서 자라게 됩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카뮈에게는 그러기에 더 특별한 어머니였습니다.
알베르는 단어들이 입에 물고 있던 조약돌의 벽을 넘어가도록 애를 쓰며 크게 낭독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돌을 내뱉어버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가장 힘든 것은 돌을 통제하는 것, 혀와 돌이 혼연일체가 되어 자유자재로 움직이게끔 하는 것이었다. 결핵에 걸렸을 때 나던 소리와 똑같은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아직은 분명치 않은 음절로, 어머니가 내는 그런 발음처럼 어렵사리 변해갔다. 알베르는 그 소리에 익숙해져 갔고 자기 자신이 내는 소리를 거울 삼아 어머니가 소리를 삼켜버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언어를 표현함으로써 마침내 그 소리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을 하고 싶을 때 조차도 어머니의 말들은 결국 체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파도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불분명한 문장을 삼켜버리는 이 해변에서 알베르는 침묵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p46)
카뮈는 어머니가 말하는 부분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장애로 인해서 불분명한 발음을 하게 되는 것을 카뮈는 스스로 바닷가에서 조약돌들을 입에 가득 물고 말을 해봅니다. 반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에게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는 오직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을 뿐이니까요.
카뮈가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어머니 다음으로 생각났던 분은 제르맹 선생님이었습니다. 카뮈의 할머니는 그가 상급학교 진학이 아닌 졸업장을 따면 공장의 견습생으로 일을 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공부를 시킬 여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르맹 선생님은 좋은 성적을 받아서 장학금을 받으면 가능하다고 할머니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할머니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 때 갑자기 어머니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 애 학교 갈 거예요!"
잘못했으면 우리는 카뮈라는 작가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은 노벨문학상까지 받으며 세상에 그의 작품과 이름을 남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카뮈가 얼마나 어머니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드리고 싶었을까요. "어머니, 제가 쓴 글이에요. 사람들이 많이 읽고 좋아하는 거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어리광도 부리고 싶지 않았을까요.
자동차 사고가 나기 전에 카뮈는 유난히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쓴 작가의 상상이겠으나, 그 당시에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였을 것입니다. 말하지 않더라도 그 누구보다 깊게 들어주는 어머니였기에...
오늘 저녁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렸을 적 밤마다 리듬을 맞추던 어머니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악몽을 꾸고 나서 달아나버린 잠을 다시 청해야 할 때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면 안심이 되곤 했었다. 눈을 감고 가벼운 증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를 똑똑히 듣곤 했었다. 어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최대한 옆에 붙어 어머니와 같이 숨을 쉬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꿈을 훔쳐 자기 마음속으로 조금씩 주입시키면 나중에 소리 없는 밤에 그것들을 깨울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르네 샤르 생각이 났다. 어느날 그에게 자기와 어머니와의 이상하고도 서글픈 관계에 대해 말했더니 그가 잠시 사이를 두고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그건 침묵이 아니라네." (p104)
다시 어머니의 독백으로 돌아옵니다. "아직 너무 젊은데·····." 이 부분이 왜 이렇게 아플까요.
그녀는 얼마나 아들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어 했을까요. 아들이 쓴 글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싶었을까요.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알베르 카뮈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니를 남겨두고 먼저 떠났기에 더 마음이 아프네요.
『조르바 위버멘쉬를 꿈꾸다』의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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