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고파지네요. 비소설을 읽다가 소설로 돌아오는 저의 주기입니다. 이야기에 주릴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소설, 무엇을 읽을지 망설일 때 손에 잡게 되는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한 번 뒤적여 봅니다. 역시 예전에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제 주린 허기를 채워준 책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였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손에 안 잡히던 책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았나 봅니다. 이번에는 다르네요.


카뮈의 책은 『이방인』에 이어 두번째로 만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로 시작되는 『이방인』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세 번을 곱씹어서 읽었네요. 그의 작품 뿐이 아닙니다. 

코트의 깃을 바짝 세우고, 입술 끝으로 짧게 문 담배 그리고 무언가를 살짝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잡힌 이마와 입가의 주름을 보게 되면 이 작가에게 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름부터 작가스러운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 알고 싶어집니다.


▲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는 1913년 알제리에서 프랑스계 이민자로 태어납니다. 그 다음 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고,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전사하게 됩니다. 그 후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불우하게 살아가게 되죠. 중등학교에 다닐 때는 폐결핵에 걸려서 가족과 떨어져 숙부와 함께 살게 됩니다. 정육점을 하고 있던 숙부의 집에는 에밀 졸라, 발자크, 휴고와 같은 프랑스 문인들의 전집이 있었고, 카뮈는 이런 책들을 읽게 됩니다. 후에 고학으로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평생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게 됩니다. 카뮈는 그르니에의 격려를 받아 그의 초기 작품들을 문예지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삶의 부조리 인식하기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표지


카뮈는 1940년 28세의 나이에 그의 대표작인 『이방인』을 발표합니다. 

주인공 뫼르소가 뜨거운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재판을 받아 사형 선고를 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는 뫼르소가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보다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냉담했다는 사실, 장례 다음 날 해수욕을 하고 여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으며 그녀와 함께 희극 영화를 본 것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결국 사람들은 뫼르소에게 비판의 날을 세우고 그에게 사형을 구형합니다.


뫼르소는 재판 과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자기가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과 상관없는 다른 것들을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심판하는지 의아해합니다. 재판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인데 왜 자신은 거기에 배제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을 때도 자기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같은 사람의 생명을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같습니다.


카뮈에 의하면,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합리의 욕망이 있는 까닭에 세계의 뜻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세계는 인간이 알아볼 만한 아무런 뜻도 없다. 인간이 가진 '합리의 욕망'과 세계의 '몰합리'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것, 이러한 이율배반으로부터 생기는 모순, 그것이 바로 카퀴의 부조리이며, 인간이 피하지 못할 숙명,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누구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졸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습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상생활의 쳇바퀴를 돌며, 인생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문제 삼지 않는다. 그처럼 졸고 있으면 존재자의 의식일 수 없으므로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부조리를 명확히 인식할 때,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다. 

- 『이방인』, 문예출판사, p179 -


『이방인』은 이러한 부조리로 가득차 있는 작품입니다.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무조리가 있지만, 사람들은 뫼르소의 행동에 드러나는 부조리 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카뮈는 뫼르소의 극단적인 성향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는 보이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방인』은 수많은 해석이 있으며, 지금도 제가 제대로 읽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독법으로 받아들인 것은 '세상의 부조리를 인식하라.' 였습니다. 그래야 다음에 무엇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


  ▲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표지


몇 년 동안 읽혀지지 않은 채 꽂혀 있던 카뮈의 다른 작품은 『페스트』입니다. 이 작품은 1947년, 카뮈의 나이 35살에 쓰여졌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네요. 그래서 그렇게 안 읽히던 책이 잡혔나 보네요 라고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어 봅니다.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정부는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합니다. 오랑은 무방비가 되고 대혼란에 빠집니다. 이런 와중에도 의사로서 사명을 다하려는 리유와 부당한 죽음을 거부하려는 타루, 오랑에 체류 중이던 신문기자 랑베르 등은 공포와 불의의 도시에서 페스트와 저항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반면에 페스트는 신이 내린 형벌이며, 신의 뜻에 따르자는 신부 파늘루, 고통의 세상에서 오히려 소속감을 느끼는 코타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방인』에서 부조리에 대해서 인식했다면, 『페스트』에서는 부조리를 인식하고 난 다음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부조리를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죠. 카뮈는 이렇게 인식된 부조리에 대해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반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반항'은 부조리로 인한 모순을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그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진리를 바라보고, 행복을 바라는 욕구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그의 '반항'은 작품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럼요" 그는 말했다. "아마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나는 필요한 정도의 자존심 밖에는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 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 『페스트』, 민음사 p170 -


늦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비 속에서도, 매일 같이 한밤 중이면 승객 없는 전동차의 괴상한 행렬이 바다 위 중턱으로 덜거덕거리면서 지나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시민들도 마침내는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순찰대가 임해 도로에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흔히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파도 치는 바다를 굽어보며 솟아 나온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전동차가 지나갈 때면 유람차 안에 꽃을 던지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전동차가 꽃과 시체를 싣고 여름 밤 속을 더 한 층 심하게 흔들리며 달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 『페스트』, 민음사 p234 -


등장인물 그 중에서도 의사인 리유는 자신의 사명감과 다른 이유 없이 자신 앞에 있는 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페스트가 심해져 사람들의 장례 절차도 없이 땅에 묻기 위해 수송될 때 사람들은 전동차에 꽃을 던집니다. 먼저 떠나지 않게 붙잡으려는 노력과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인간애입니다. 그들은 페스트라는 부조리에 각자 나름대로 반항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런 반항하는 행동적 휴머니즘의 모습은 카뮈의 삶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카뮈는 사형제도를 반대하고, 인권운동에 매진합니다. 1952년에는 스페인이 프랑코 치하에 있을 때, UN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지자 당시 유네스코 임원직을 사임합니다. 그 다음 해에는 동베를린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분쇄한 소비에트 연방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노벨상 그리고 카뮈의 죽음


▲ 프랑스 루르마랭의 알베르 카뮈 묘지


카뮈는 1957년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밝힌 작가"라고 평하지요. 그리고 3년 후 카뮈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카뮈는 1960년 바캉스를 마치고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통해 파리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가 미끄러져 나무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 사고로 카뮈는 48살이라는 짧은 삶을 정리합니다. 평소 '아이들의 죽음과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 보다 더 부조리한 것은 없다.' 라고 했던 카뮈이기에 그의 마지막은 무엇보다 더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카뮈의 검은색 가방에는 그의 유작인 『최초의 인간』 자필원고와 메모, 수첩 등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 작품은 그의 아내에 의해 1994년에 출간됩니다.


▲ 영화로 제작된 알베르 카뮈의 유작 『최초의 인간』


지금까지 카뮈를 통해 만난 두 작품, 『이방인』과 『페스트』는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밝힌 작가' 라는 한림원의 평을 여실히 증명해 줍니다.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자아(自我)' 그리고 '인간(人間)' 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한 번 쯤은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심연을 바라보기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가봐야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부조리한 세상과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 부조리하게 느껴지시나요?

뜨거운 여름, 카뮈의 작품을 권합니다.

단, '뜨거운 태양은'은 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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