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인상적인 첫 구절이다. 2년 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넘어가지 못했다. 읽고 나서 해설에 매달리고 내가 잘못읽었나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마도 더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다. 이번에는 소설의 이야기 중심으로 읽고 그리고 여러 사람과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읽어서인지 이해의 폭이 조금은 나아졌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가 아랍인을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아 죽이고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는 이야기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뫼르소가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보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때 냉담했다는 사실, 장례 다음날 해수욕을 하고 여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고 희극영화를 본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뫼르소에게 비판의 날을 세우고 결국 그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뫼르소는 이해하지 못한다. 왜 내가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과 상관없는 다른 것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고 나를 심판하는지 의아해했다. 재판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인데 왜 자신은 거기서 배제되어지는 의아해한다. 사형선고를 받을 때도 자기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같은 사람의 생명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세상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p130)아무리 해도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마련해준 재판과 판결의 언도가 내려진 순간부터 어쩔 수 없게 된 그 결말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국민)이란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하여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 같은 결정으로부터 많은 준엄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되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준엄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서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부조리'와 '실존주의'다.
이 책을 읽을 때 소설을 그냥 이야기 중심이 아닌 그 속에 내재된 의미를 찾아야된다는 생각에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부조리'와 '실존주의'에 대해서 이해하고 난 후에 접한 이야기는 조금 더 풍성해진 느낌이 있다.
옮긴이(이휘영)에 따르면 부조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176) 카뮈에 의하면,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합리의 욕망이 있는 까닭에 세계의 뜻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세계는 인간이 알아볼 만한 아무런 뜻도 없다. 인간이 가진 '합리의 욕망'과 세계의 '몰합리'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것, 이러한 이율배반으로부터 생기는 모순, 그것이 바로 카뮈의 부조리이며, 인간이 피하지 못할 숙명,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누구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졸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습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상생활의 쳇바퀴를 돌며, 인생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문제 삼지않는다. 그처럼 졸고 있으면 존재자의 의식일 수 없으므로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부조리를 명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와 직면하여 모순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 '반항' 이다.
소설을 있는 이야기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유없이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는 것, 사람을 죽인 후에도 그렇게 큰 죄책감이 없었다는 점은 싸이코패스와 유사하다. 카뮈는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를 조금 더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본질 속에 매몰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본질이 상실되면 나 조차 상실하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부터 '실존주의'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의자라고 한다면 의자의 본질은 '앉을 수 있는 것' 이다. 만약 나무로 만든 의자가 다리가 뿌러져서 앉을 수 없다면 의자의 본질은 상실한 것이고 이것은 곧 의자 자체의 상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고정된 본질이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실존으로 존재한다. 본질로 규정되어 지는 자기를 둘러싼 억압과 규정에서 자유로워지고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은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부조리와 실존주의가 책을 읽고 나서 해설을 통해서 알게 된 이 책의 내포된 의미였다면,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인간본연의 모습도 존재한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 해변가에서의 아랍인 살해, 재판 과정 중에서도 담담하고 어떻게 보면 무관심했다. 하지만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는 그동안의 모습과는 다른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의지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p134)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것,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밤마다 그 새벽을 기다리며 지낸 셈이다. 나는 언제나 갑자기 놀라는 것을 싫어했다. 무슨 일이든 생길 때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마침내 낮에 좀 자두었다가 밤에는 끝끝내 새벽빛이 천장 유리창 위에 훤히 밝아오기를 기다리게끔 되었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보통 그 일을 하러 오는 때라고 알고 있던 그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 나의 귀가 그처럼 많은 소리, 그렇게도 조그만 소리를 들어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발 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으니 어지간히 운수가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게 되는 법은 없는 거라고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하늘이 빛을 디며 새로운 하루가 나의 감방으로 새어들 때 나는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서 내 심장이 터지고 말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문으로 달려가서 판자에 귀를 대고 얼빠진 듯이 기다리노라면 나중에는 나 자신의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거칠기가 마치 허덕이는 개의 숨결과도 같아서 깜짝 놀라는 일은 있었을지언정, 결국 나의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나는 24시간을 벌었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을 29살의 나이에 발표했는데, 어떻게 이런 작품을 그 나이에 발표했을 수가 있을까라는 놀라움과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가장 부조리하게 여겼던 교통사고로 4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느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하나의 작품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다음은 『이방인』의 이해를 한 층 더 돕는다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카뮈를 다시 접해보려 한다.
p9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온 것이다.
p53
문을 닫는 소리가 나더니 영감이 자기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왜 그때 어머니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는 일찌감치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 저녁도 먹지 않고 자버렸던 것이다.
p56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마리가 정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이고 나는 승낙했을 뿐이다. 그때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며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을 했을 것인가, 다만 그것만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생각해보는 듯하였으나,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어서 아마 그 때문에 자기가 나를 사랑할 테지만, 바로 그 같은 이유 때문에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p57
"내가 무슨 볼일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p75
뜨거운 햇볕에 뺨이 불타듯 달아올랐고 땀방울이 눈썹에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날처럼 특히 머리가 아프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피부 밑에서 지끈 거리고 있었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를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 반사되자 마치 번쩍거리는 길쭉한 칼날이 내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터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어벼렸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에서 뻗쳐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뜨거운 칼날은 나의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쳤다. 바로 그때였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다는 답답하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하늘은 활짝 열리며 불을 쏟아놓는 듯하였다. 나의 온몸이 긴장하여 권총을 힘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권총 자루의 미끈한 배를 만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내가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벼렸음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쓰러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인 듯했다.
p85
그는 여전히 좀 피곤한 표정으로 내가 한 일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각을 하고 나서 정말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귀찮음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날은 그것으로 그치고 이야기는 더 진행을 보지 못했다.
p92
형무소에 수감되어 처음에 가장 괴로웠던 일은 내가 자유로운 사람의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가령 바닷가로 가서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솟곤 했다. 발 밑의 풀에 부딪히는 첫 물결 소리, 물 속으로 몸을 담글 때의 촉감, 그리하여 느끼는 해방감, 그러한 것들을 상상할 때, 갑자기 나는 감옥의 벽이 그 얼마나 답답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를 느꼈다. 그런 상황이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 다음에는 죄수로서의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매일 안뜰에서 하는 산책 시간, 아니면 변호사의 방문을 기다렸다. 나머지 시간은 그럭저럭 보낼 수 잇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만약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가 살게 되어 머리 위 하늘에 피는 꽃을 바라보는 것밖에 다른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차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지나가는 새들이나 마주치는 구름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마치 여기서 변호사의 야릇한 넥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듯이 또 저 바깥 세상에서 마리의 육체를 껴안을 것을 기다리며 토요일까지 참고 지냈듯이, 그런데 결국 생각해보면 나느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이건 어머니의 생각이었는데 어머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법이라고 했다.
p94
"그러나 당신네들은 감옥에 가두는 것은 그 때문이라오."하고 그는 말했다.
"아니, 그 때문이라니?"
"아무렴, 자유라는 것, 그것을 당신네들에게서 빼앗는 거란 말이오."
나는 한번도 그런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동의를 표하며 말했다.
"참 그렇긴 해. 그렇지 않다면 징벌이라는 게 어디 있겠소?"
"그렇고 말고, 당신은 참 이해를 잘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요. 그렇지만 결국 그네들도 스스로 괴로움을 덜게 된답니다.
p96
그처럼 잠을 자고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3면 기사를 읽는 동안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시간은 흘렀다. 감옥에 있으면 시간 관념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얘기를 읽은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러한 것이 나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고 동시에 짧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지내기는 물론 길었지만, 너무나 길게 늘어나서 하루하루 넘쳐 서로 겹치고 마는 것이었다. 세월은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말만이 나에게는 의미를 잃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들어온 지 다섯 달이 지났다는 말을 어느 날 간수로부터 들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믿었으나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로서는 언제나 같은 날이 내 감방으로 밀려오고 언제나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간수가 가버린 뒤에 나는 쇠로 만든 밥그릇에 비친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 모습은 아무리 마주보며 웃으려고 해도 무뚝뚝한 채로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흔들고 빙그레 웃었으나 비쳐진 얼굴은 여전히 무뚝뚝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나로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형무소 모든 층의 여기저기로부터 저녁의 소리가 정적의 행렬을 지어 올라오는 그런 시간이었다.나는 천장으로 뚫린 창문으로 다가가서 마지막 빛 속에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으나 그야 놀라울 것도 없었다. 나는 그때 사실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여러 달 만에 처음으로 나는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나는 그것이 오래 전부터 나의 귀에 울리고 있었던 소리임을 알아차리고 그 동안 내가 줄곧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형무소 안의 저녁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상상할 수는 없는 것이다.
p102
"우리들은 당신의 사건을 좀 부풀려서 보도했답니다. 여름철은 신문사로선 불경기죠. 기삿거리가 도리 만한 것이라곤 당신 사건하고 부모 살해 사건밖에 없었어요." 하고 그는 덧붙였다.
p108
그 목소리가 하도 억세고, 나를 향한 눈초리가 하도 의기양양해서 나는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p109
성의껏 최선을 다했으나 그만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셀레스트는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눈은 번쩍이고 입술은 떨리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자신이 좀 더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몸짓도 하지 않았으나 한 사람의 인간을 껴안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 것은 그때가 생전 처음이었다.
p113
"배심원 여러분, 이 사람은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 날에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희극 영화를 보면서 시시덕거린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p115
검사는 배심원들에게로 돌아서며 말했다.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 날 가장 수치스러운 정사에 골몰한 그 사람은 대수롭지도 않은 이유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치정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고 살인을 한 것입니다."
p118
피고석에 앉아서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있는 일이다.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 변론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마 나의 범죄에 대해서보다는 나라는 인간 자체에 관해서 더 많이 이야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쪽의 변론이 그다지 차이가 있었을까? 변호사는 팔을 쳐들고 범죄를 인정하되 변명을 붙였고, 검사는 손가락질을 하며 유죄를 고발하여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좀 난처한 일이 하나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때로는 나도 내 의견을 한마디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면 변호사는 "가만 있어요. 그래야 일이 잘 됩니다." 하고 말했다.
이를테면 사건이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다루어진 셈이었다. 나를 참여시키지도 않고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p119
내가 옳게 이해한 것이라면, 검사의 생각의 요점은 내가 범죄를 미리 계획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것을 증명하려고 했으며, 그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그것을 나는 이중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명백한 사실에 비추어서, 둘째로는 이 범죄적 영혼의 음흉한 심리 상태에 비추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검사는 어머니가 죽은 뒤의 사실들을 요약하였다. 내가 냉담했다는 것, 어머니의 나이를 몰랐다는 것, 이튿날 여자와 함께 해수욕을 하러 갔다는 것, 페르낭델의 영화를 보러 가고, 끝으로 마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퍽 시간이 걸렸다. 그가 '정부'란 말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마리였을 따름이다. 그리고 검사는 레몽의 이야기를 했다. 사건을 보는 그의 방법은 여간 명석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는 그럴듯했다. 나는 레몽과 합의하여 그의 정부를 꾀어다가 '품행이 좋지 못한' 사나이의 흉악한 손아귀에 넘기려고 편지를 썼다는 것이고, 바닷가에서는 내가 레몽의 적들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다. 레몽이 다쳤던 까닭에 내가 레몽에게 권총을 달라고 하여 혼자서 그것을 사용할 생각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계획대로 아랍인을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조금 더 기다려서 '일이 잘 되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네 방의 탄환을 태연하게, 말하자면 확실하고도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쏘았다는 것이다.
p121
그리고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는데,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는 했다. 나는 나의 행동을 그다지 뉘우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노발대발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웠다.나는 그에게 다정스럽게, 애정을 기울여, 내가 정말로 무엇을 뉘우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항상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일, 오늘의 일, 또는 내일의 일에 마음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나의 처지로서는 누구에게도 그런 투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다정스러운 태도를 취하거나 선의를 가질 권리가 없는 것이었다. 검사가 다시 나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으므로 나는 귀를 기울였다.
p122
"이 법정은 내일 가장 가증스러운 범죄, 부모를 살해한 범행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잔혹한 범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 사회의 율법이 엄중한 처단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범행이 일으키는 전율감은 나의 무감각함에 대하여 느끼는 전율감보다는 차라리 덜하다는 것을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다고 지껄였다. 또 그의 말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사람은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 새회로부터 추방되어야 한 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전자는 후자의 행위를 준비하는 것이며, 말하자면 그러한 행위를 예고하고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p123
"저는 피고에 대하여 사형을 요구합니다. 사형을 요구하면서도 제 마음은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짧지 않은 재직 기간 중 나는 여러 번 사형을 요구한 일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이 괴로운 의무가 신성한 지상명령이란 의식과 흉악함 외에는 아무것도 읽어볼 수 없는 한 사람의 얼굴을 앞에 놓고 느끼는 전율감에 의해 되갚음을 받아 마음이 명랑해진 적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p124
나는 빠른 어조로 말을 좀 얼버무리며 나 자신이 우습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는 웃음이 일었다. 나의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곧이어 그는 발언권을 얻었으나 시간도 늦고 자기의 진술은 여러 시간을 요할 것이므로 오후로 미루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정은 이에 동의했다.
p125
그러한 장광설들, 여러날 동안 나의 영혼에 관해 이야기한 그 한 없이 긴 시간때문에 나는 모든 것이 빛깔 없는 물처럼 되어 버려 그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끼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p130
아무리 해도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마련해준 재판과 판결의 언도가 내려진 순간부터 어쩔 수 없게 된 그 결말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국민)이란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하여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 같은 결정으로부터 많은 준엄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되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준엄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34
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것,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밤마다 그 새벽을 기다리며 지낸 셈이다. 나는 언제나 갑자기 놀라는 것을 싫어했다. 무슨 일이든 생길 때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마침내 낮에 좀 자두었다가 밤에는 끝끝내 새벽빛이 천장 유리창 위에 훤히 밝아오기를 기다리게끔 되었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보통 그 일을 하러 오는 때라고 알고 있던 그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 나의 귀가 그처럼 많은 소리, 그렇게도 조그만 소리를 들어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발 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으니 어지간히 운수가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게 되는 법은 없는 거라고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하늘이 빛을 디며 새로운 하루가 나의 감방으로 새어들 때 나는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서 내 심장이 터지고 말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문으로 달려가서 판자에 귀를 대고 얼빠진 듯이 기다리노라면 나중에는 나 자신의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거칠기가 마치 허덕이는 개의 숨결과도 같아서 깜짝 놀라는 일은 있었을지언정, 결국 나의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나는 24시간을 벌었다.
p137
죽었다면 마리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죽은 뒤에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릴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죽고 나면 사람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란 결국 무슨 생각에든지 나중에는 익숙해지고 마는 법이다.
p146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생각했다. 만년에 왜 어머니가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보려 했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주변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서 어머니는 해방감을 느끼며,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안겨주기라도 한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 찬 밤하늘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제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