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에 대하여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읽을 책은 많이 있지만 손에 책이 잘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읽을 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서점에 직접 서문과 맺음말을 읽어보기도 하고 소설이 아닐 경우에는 목차도 한 번 훑어본다. 온라인서점을 이용할 때는 먼저 읽은 사람들의 서평을 읽거나 관련 소개자료를 읽어본다. 나에게 맞는 책을 찾기 위해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노력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때로는 그냥 사전조사없이 읽지 않은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때 선택하는게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있는 제목은 다 알고있지만 정작 읽어보지않은 작품들이다.
책을 처음 읽을 때부터 고전에 대해서 읽어본 적이 없고, 세계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는게 항상 신경이 쓰였다. 책의 내용 중에는 다른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마치 원천기술처럼 책에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온 작품들이 있다. 이런 책들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는 있다.
처음에는 '저걸 내가 읽을 수 있을까?' 부담감때문에 망설여졌다. 아직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부담감에 비해서는 내용이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왜 이게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거지하고 의아해할 때도 종종 있다. 어떤 책들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소설','현대 100대 영문소설'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왜 이책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까? 하는 궁금점도 생기기도 한다. 아직 나는 좋은 작품을 볼 줄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도 많다.
세계문학전집은 책의 말미에 항상 '작품해설'에 대해서 약간의 페이지를 소비한다. 책을 읽고 나서 '작품해설'을 읽다보면 '아~!' 이런 숨은 의미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할 때도 있고, '이런 당시의 사회적배경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된다. 내가 의아심이 들었던 책들을 보면 보통 내가 그 나라의 그 시대의 상황을 몰라서 작품이 내재하고 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내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하나는 오늘 소개할 <위대한 개츠비>이다.
처음에는 그저 소설의 내용만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미국이라는 장소적 배경과 192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도 특별히 염두해두지 않았다. 단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갔다. 그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때는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소설>,<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BBC 선정 꼭 읽어야 할 책>, <옵저버 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정도로 뽑힐 만한 것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작품의 배경을 모르는 채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
책의 뒷부분의 '작품해설' 부분을 읽기 전에 느꼈던 이 소설의 느낌이다.
일단 대단히 흥미롭다. 읽을수록 너무 궁금했다. 과연 '개츠비'라는 베일에 쌓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부터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아마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닉 캐러웨이가 개츠비와 주변 인물에 대해서 관찰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이야기 전개를 더 흥미롭게 한 듯 하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생각한 건, 낭만주의자 개츠비이다. 아마 이 작품 내재하고 있는 다른 요소들을 제외하더라도 단순히 첫사랑 데이지만을 바라보는 개츠비의 사랑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개츠비는 첫사랑 데이지를 찾기위해 항상 호화 파티를 한다. 그 파티에는 초대받은 사람도 있지만 소개받지 않은 이들도 많이 온다. 개츠비가 파티를 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의 첫사랑 데이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결국은 데이지를 만나게 된다. 만남 자체도 흥미롭다. 개츠비의 마지막도 상당히 문학적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자동차사고로 머틀윌슨은 죽게 하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자기가 가져간다. 그리고 운명적인 죽음도 맞게 된다.
개츠비는 낭만주의자다. 자신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지만 사랑을 지켜나가는 낭만주의자다.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은 사랑이야기이다. 데이지가 보이는 모습에서는 개츠비에 대한 사랑이 별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처음으로 그의 저택에 데리고 와서 집을 구경시켜준다. 집 구경을 하던 중에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는 장면이 있다.
P134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그녀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묻혀 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셔츠가 좋은거야 개츠비가 좋은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곳에서는 그저 개츠비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하지만 게츠비가 죽은 후 얼굴도 보이지 않는 데이지를 생각하면 아마 그리움의 표현은 아닌 거 같다.
초반부터 개츠비에 대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진행해나가고 개츠비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모습과 생각치 않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구성 이것만으로 인상깊게 읽은 작품이다.
'작품해설'을 읽고 난 후의 <위대한 개츠비>
192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고 한다. 재즈와 찰스턴 춤과 자동차가 상징하는 1920년대가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있다. 192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이다. 미국은 당시 전쟁에 대한 본토에 대한 피해가 없었기에 그 어떤 시기보다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러한 경제 성장에는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따라다닌다.
P260
톰 뷰캐넌과 개츠비가 타고 다니는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 개츠비가 주말마다 벌이는 사치스러운 파티와 마치 '불빛을 쫓는 부나비처럼' 환락과 쾌락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톰과 데이지가 보여 주는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와 무책임은 바로 전쟁이 끝난 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던 이 무렵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시간적 배경 못지 않게 공간적 배경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P261
작품에 등장하는 이스트애그와 웨스트애그의 대조는 미국 동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의 차이를 보여 주기도 한다. 동부와 중서부의 대조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퇴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동부 사람들은 물질적 부와 세련미와 교양을 갖추고 있지만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있으며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행동 양식을 보인다. 한편 닉 캐러웨이가 대변하는 중서부 지방 사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할망정 아직 타락하지 않은 도덕적 순수성과 청교도주의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중략>
동부의 물질적 가치관과 중서부의 정신적 가치관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으며, 제이개츠비의 파멸은 바로 이러한 충돌이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분명히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 대해서 알고나서 책을 읽어내려갔다면 다른 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920년대 미국 동부의 모습은 나에게는 익숙하게 생각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일단 나와 상관성이 많지 않아서 관심이 덜 간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치하 있었으며 고급 승용차, 재즈, 파티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나와는 공감대 형성이 잘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재미있게는 읽었으나 훌륭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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