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spirit)
독주를 뜻하는 '스피릿'은 알코올 도수 35도 이상에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증류주를 말한다. 최근엔 알코올 도수 20도 이상의 증류주를 스피릿으로 부르기도 한다. 곡류 및 과일 등을 발효시킨 뒤 다시 증류해 순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위스키, 브랜디, 럼, 진, 보드카, 테킬라, 고량주 등이 이에 속한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대체로 증류 후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키는데, 숙성 기간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얼음이나 물을 타 희석해 마신다. 각종 칵테일과 폭탄주의 베이스로 활용되기도 한다.
럼당밀에 물과 효모를 넣고 발효시킨 뒤 증류해 만든다. 당밀은 사탕수수를 짜낸 즙에서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것으로 설탕과 칼로리가 같고 비타민과 칼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을 다량 포함하고 있어 영양식품으로도 쓰인다.색이 짙고 향이 강한 다크럼과, 무색에 향도 약한 라이트럼, 둘의 중간인 골드럼으로 구분된다. 통상 다크럼은 발효를 천천히 시키고 단식증류기를 쓰며, 라이트럼은 발효를 빨리 시키고 연식증류기를 사용한다. 라이트럼은 칵테일의 베이스로 많이 쓰이는 반면 다크럼, 골드럼은 주로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얼음 넣어 마신다.
위스키나 브랜디처럼 러도 증류한 뒤 통상 1년 이상의 숙성 기간을 거치는데, 위스키나 브랜디에 비해 훨씬 짧다. 대개는 미국 버번 위스키를 숙성시킨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며 이 경우 색이 진해진다. 무색투명한 라이트럼의 경우는 스테인리스 탱크 안에 저장한다.사탕수수 즙을 발효해 술로 만들어 마신 건 고대 인도와 중국이었지만, 이걸 증류해서 마시기 시작한 건 17세기 중반 카리브 해 연안 섬들에서였다.설탕용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설탕을 만들고 난 부산물인 당밀이 알코올로 발효되는 걸 발견했고, 여기에 증류기술이 보태지면서 럼이 만들어졌다.
럼이 탄생하자마자 곧 북아메리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해 스테이튼 섬과 보스턴, 메사추세츠 등지에 1660년대에 럼 증류소가 들어섰다. 마침 유럽에서 설탕, 수요가 늘고 있는 마당에 럼의 수요까지 급증하자 카리브해 연안섬의 사탕수수 경작을 늘리기 위해, 북미의 럼주를 주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사서 카리브 해로 데려가 사탕수수를 경작하게 되고, 여기서 생긴 당밀을 미국의 증류소로 가져다주고 다시 거기서 럼을 받아 노예를 사오는 삼각무역이 번성했다.
럼을 두고 '킬 데블', '해적의 술' 등의 별칭 외에 '넬슨 제독의 피'라고도 부른다. 이는 영국의 넬슨 제독이 트라팔카 해전에서 전사하자 그 시체를 썩지 않게 하려고 럼 통에 넣어 본국으로 이송했는데, 선원들이 술통에 구멍을 내 술을 빼먹는 바람에 본국에 와서 술통을 열어보니 술이 하나도 없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그 통엔 럼 아닌 브랜디가 들어 있었다는 설이 있는 등, 신빙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
보드카위스키, 럼 등의 다른 스피릿과 달리 보드카는 증류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알코올 농도를 95% 이상으로 만든 다음에 그걸 다시 물에 섞어 원하는 도수로 만든다. 위스키나 럼은 원하는 도수에 맞춰서 거기까지만 증류시킨다. 이 때문에 보드카엔 메탄올 찌꺼기 같은 불순물이 거의 없는 대신, 위스키나 럼과 같은 특유의 향도 없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보드카는 소련과 유럽 밖에선 시들했는데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버번 위스키를 앞서기 시작하더니 21세기 들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스피릿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2007년 전 세계에서 183억 리터의 스피릿을 마셨는데, 그 중 보드카가 37억 리터로 1위이며 위스키가 21억 리터로 2위였다.
단일 브랜드로 보면, 럼주인 '바카디'가 오랫동안 1위였는데 2006년에 보드카인 '스미노프'가 이를 앞질렀다고 한다. 이 두 브랜드에 이은 3위도 최근 수년 동안 '앱솔루트 보드카'가 지키고 있다.
보드카 칵테일무색 무취의 보드카는 칵테일의 베이스로 가장 인기가 좋다. 대체로 당도가 높다면 어떤 과일이든 주스를 짜고 보드카를 타면 (경우에 따라 소다수를 첨가해도 좋다) 먹기가 좋다. 오렌지주스에 보드카를 탄 '스크루드라이버', 오렌지, 복숭아, 크랜베리 주스에 보드카를 탄 '섹스 온 더 비치'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내가 개발한 보드카 칵테일 하나, 레몬주스에 보드카를 넣는 건데, 레몬이 당도가 높지 않은 만큼 사이다를 보드카의 1~1.3배 섞는다. 레몬주스는 미리 만들어 파는 레몬즙이 아니라 레몬을 짜서 쓰는데, 중요한 것은 레몬을 껍질째 힘껏 짜서 주스 색이 뽀얗게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율은 보드카 750ml에 레몬 6~8개, 사이다 1리터와 얼음을 넣는다.
여러 명이서 파티를 할 때, 큰 그릇에 레몬을 함께 짜 넣고 보드카와 사이다를 붓고 얼음을 넣고 저어서 잔에 떠 마시면 된다. 내 경험으로 이 칵테일을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테킬라테킬라는 위험하다. 모든 술이 많이 마시면 안 좋고 더 않좋으면 사고치게도 만들지만, 테킬라가 주는 취기는 꼬장이나 객기와 조금 달리 뭔가를 능동적으로 하고 싶게 만든다. 누군가 그랬다. 창조에 수반되는게 기쁨이고, 쾌락은 소비할 때 생기며, 이 둘이 섞인 게 관능이라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테킬라는 관능적이다. 시한부 삶의 운명에 좌절한 젊은 이들로 하여금 바다의 석양을 찾아 나서게 만들 술로, 테킬라만한 게 또 있을까
테킬라의 이런 관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위스키나 브랜디에 비해 테ㅣㄹ라는 증류한 뒤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기간이 길지 않다. '엑스트라 아네호'라는,2006년에 새로 추가된 딱지가 붙은 최상품의 숙성기간이 3년이다. 대부분은 증류 뒤 바로 마시거나(블랑코), 두 달 숙성시키거나(레포사도), 1년 숙성시킨다(아네호). 그러나 위스키나 브랜디의 원료인 곡물이나 과일이 1년마다 열리는 것과 달리, 테킬라는 원료가 되는 식물 아가베(용설란)를 8~12년 동안 땅에서 키운 뒤 만든다. 아즈텍 문명을 낳은 멕시코 중앙고원의 뜨거운 햇빛 아래서 원료 자체가 긴 세월 동안 숙성되는 셈이다.
테킬라는 또 아즈텍과 서구, 두 문명의 결합으로 탄생한 4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술이기도 하다. 충분히 키운 용설란, 아가베의 잎을 잘라내고 남은 지름 70~90cm의 파인애플 같이 생긴 몸통을 찌고 그 과정에서 생긴 당분으로 발효시킨 뒤 증류한 게 테키라인데, 증류하기 전 상태의 막걸리처럼 걸쭉한 술을 '풀케'라고 부른다. 이걸 16세기 이전에 아즈텍인들이 마셨다고 한다. 16세기 중반 스페인이 이곳을 점령한 뒤 그들의 증류 기술을 동원해 풀케를 증류하기 시작했고, 1600년을 전후해 테킬라를 만드는 공장이 생겼다고 한다.
테킬라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한 가지, 바로 벌레다. 아가베 뿌리에 사는 구사노라는 벌레를 훈연해서 넣는데, 수년 전부터 테킬라 제조에 관한 규정은 테킬라에 이 벌레를 넣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벌레가 들어가는 술이 있다. '메즈칼'이라는 멕시코 술이다. 메지칼은 현지 말로 아가베를 뜻한다. 아가베, 즉 용설란으로 만든 술을 통칭해서 메즈칼이라고 부르며, 그 가운데 테킬라라는 마을이 속해 있는 멕시코 할리스코주에서 아가베의 여러 종류 가운데 '블루 아가베'로 만든 메즈칼을 테킬라라고 부른다. 브랜디 가운데 꼬냑 지방에서 나는 것만 꼬냑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더 유명해져서 꼬냑이라는 말이 브랜디를 대체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최근의 기사들을 보면, 테킬라는 대량생산되면서 첨가물도 많이 들어가는 데 비해, 메즈칼은 전통에 따라 수공업으로 소량씩 제조돼 테킬라보다 더 품질도 낫다고 한다. 메즈칼에 벌레를 넣으면 향기가 풍부해진다는 설도 있고, 그냥 상술에 불과하다는 설도 있다.
압생트미국의 금주령처럼 술의 역사에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 가운데 하나가, 19세기 중후반 포도나무 해충의 만연이었다. '필록세라'라는 이 조그만 벌레는 1860년대에 북미에서 유럽으로 들어와선 이후 20~30년 동안 유럽 곳곳의 포도 농장을 황폐화시켰다. 와인은 물론, 와인을 증류해 만든 브랜디까지 생산량이 급감했다. 자생력이 더 강한 새로운 품종으로 포도 농장이 바뀌기까지 그 몇십 년 동안에 술의 판도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세계적으로 영국의 스카치 위스키가 브랜디를 누르고 '스피릿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됐다. 다음으로 유럽 안, 특히 와인의 종주국 프랑스에서 '압생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압생트는 한 번 증류한 알코올에, 쑥의 한 종류인 웜우드와 아니스, 페넬 등의 허브를 담근 뒤 한 번 더 증류해 만든 스피릿이다. 알코올 도수가 50~75도로 독한 탓에 통상 압생트를 따른 잔 위에 압생트용 스푼을 놓고 설탕을 얹은 뒤, 그 위에 찬물을 따라 설탕 녹인 물로 희석시켜 마신다.
칼바도스칼바도스는 과일주를 증류한 술, 브랜디 가운데서도 사과술을 증류한 것이다. 노르망디 해안 지방에서 재배되는 사과로 만드는데, (제품에 따라 배를 30% 가량 섞기도 한다) 칼바도스는 이 지역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사과술을 증류한 건 16세기 중반이며, 17세기에 이미 이 지방의 사과 증류주, '오드비 드 시더(cider, 사과술)'를 '칼바도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칼바도스가 지역의 명칭으로 공인된 건 프랑스 혁명 뒤이다.) '칼바도스'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1588년에 '살바도르'라는 스페인 함선이 노르망디 해안 근처에서 침몰해 이 이름이 생겼다는 설과, 해안 근처에 솟은 두 개의 바위 형상이 사람의 '벌거벗은 뒷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생겼다는 설을 전한다. 아무튼 관능적인 이름이다.
칼바도스는 19세기에 생산량이 증가하다가 '필록세라'라는 해충이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시켜 꼬냑을 비롯한 포도 브랜디 생산량이 급감한 19세기 후반에 포도 브랜디의 대체재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1942년부터 프랑스 특산물을 관리하는 AOC의 관리 대상에 포함돼, 칼바도스라는 명칭 아래 생산되는 모든 술이 AOC의 품질 규제를 받는다. AOC의 규정은 모든 칼바도스는 이 지역 사과(와 배)로 만들고, 증류 뒤 2년 이상 숙성시키도록 하고 있다. 칼바도스 가운데서도 '칼바도스 페이도쥬'라고 표기된 것은, 그냥 칼바도스가 한 번 증류하는 데 비해 두 번 증류한 술로 맛이 훨씬 풍부하다. '페이도쥬'라는 명칭의 표기 여부 역시 AOC가 관리한다.
AOC의 등급 분류기준은 이렇다. 'Fine', 'Trois etoile', 혹은 별 셋이나 사과 모양의 무늬가 셋잇 경우는 2년 이상 숙성시킨 것이다. 'Vieux', 혹은 'Reserve'는 3년 이상, 'V.O.', 'Vielle Reserve', 'V.S.O.P.'는 4년 이상, 'Extra', 'X.O.', 'Napoleon', 'Hors d'Age' 등은 6년 이상 숙성시킨 것이다.
꼬냑꼬냑은 과일주 증류주인 브랜디 가운데서도 프랑스 꼬냑 지방에서 나오는 브랜디를 일컫는다. 꼬냑이 술의 역사에서 한동안 '술의 제왕' 노릇을 하게 된 걸 두고 크게 두 가지 이유가 꼽힌다. 원래 꼬냑 지방에서 나오는 포도는 신맛이 강해 와인으로 만들면 맛이 없었는데, 이걸 증류하니까 다른 지방 포도주를 증류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탁월한 맛이 나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 17세기 중반 프랑스 재무상 콜베르가 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배를 만들 목재를 비축하기 위해 꼬냑 동부 리무쟁 지방에 오크나무 숲을 조성했고, 이 숲이 술 저장용 오크통의 보고가 되면서 꼬냑의 대량 생산에 기여했다.
꼬냑은 300년 동안 프랑스 정부가 나름의 요건을 정해놓고 명칭 사용을 통제해왔다. 그 요건은 우선 90% 이상을 Ugni Blanc, Folle Blanche, Colombard 세 종류의 포도로 만들어야 하며(품종 기준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두 번 증류해야 하고, 오크통에서 2년 이상 숙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충족하는 꼬냑에 대한 더 자세한 등급 구분 기준은 다음과 같다.
위스키
위스키는 곡물 발효주를 증류한 것으로, 원료에 따라 크게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 그리고 둘을 섰은 블렌디드 위스키로 나뉜다. 몰트 위스키 중에서 한 증류소에서 나온 술만으로 담은 것을 싱글몰트, 여러 증류소에서 나온 술을 모다 담은 걸 퓨어몰트 위스키라고 부른다.
위스키는 아일랜드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 스코틀랜드로 넘어가 1820년대에 스코틀랜드 정부가 공인한 1호 위스키 '글렌 리벳'이 나온다. 하지만 몰트 위스키는 맛이 거칠다는 이유로 영국 상류 사회에서조차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영국 상류층은 여전히 프랑스의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를 마시고 있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스피릿의 지도를 그리면 아일랜드엔 몰트 위스키, 영국과 유럽엔 브랜디였다. 변화를 불러온 건 블랜디드 위스키였다. 몰트 위스키에 귀리, 옥수수 등으로 만든 그레인 위스케를 섞은 블랜디드 위스키는 맛이 부드러워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조니워커, 발렌타인 등의 블렌디드 위스키들이 이때 탄생해 영국 시장을 장악하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마침 19세기 후반 유럽엔 포도 해충이 들어와서 포도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브랜디 생산량도 급감했고 그 틈새를 블랜디드 위스키가 파고 들었다.
그러는 동안 속이 상한 건 아이리시 위스키였다. 아ㄹ이리시 위스키는 대다수가 몰트이고, 발효한 몰트액에 그냥 몰트를 더 넣어서 증류하기 때문이 맛이 더 달고 거칠다. 영국의 블랜디드 위스키가 위스키 시장을 석권하자 아일랜드 위스키 업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위스키(whisky)의 철자에 'e'를 넣어 'whiskey'로 표기하면서 영국 위스키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한 편, 영국의 블랜디드 위스키에 위스키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냈으나 패소하고 말한다.
아일랜드나 영국과는 달리 미국 위스키는 옥수수가 주원료다. 켄터키주 버번 지방에서 생산되는 버번 위스키는 원료인 곡물 가운데 70%이상(법으로는 51%이상)을 옥수수로 하여 만든 주정을 증류한다. 잭 다니엘스로 대표되는 테네시 위스키는 옥수수를 주원료로 사용하지만, 오크통에 담기 전에 단풍나무 숯에 여과하는 과정을 거친다.
조니 워커
조니 워커라는 이름의 기원인 존 워커(1805~1857)는 아버지가 스코틀랜드 킬마넉에 잡하상 하나를 남겨놓고 죽자, 열다섯 살부터 가게를 운영하면서 그곳에서 팔던 위스키들을 섞어 보기 시작했다. 죽을 때쯤, 그가 만들어 팔던 블렌디드 위스키는 주변에서 인기 있는 술이 돼 있었다. 그의 아들 알렉산더 워커는 위스키 블렌딩을 보다 전문화해 1865년 '워커스 올드 하이랜드'를 내놓았고, 마케팅도 본격화해 세계 곳곳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 술에 '조니 워커'라는 이름이 붙은 건, 1909년 조니 워커의 손자 알렉산더 워커 2세 때의 일이다. 이때부터 저 유명한 '활보하는 남자'의 로고와 함께, 숙성연도가 낮은 위스키 35가지를 섞은 '조니 워커 레드 라벨'과 숙성연도 12년 이상의 위스키 40종을 섞은 '블랙 라벨' (블렌디드 위스키의 숙성 연도는 , 배합한 위스키 가운데 가장 숙성기간이 짧은 위스키의 연도를 표기하도록 돼 있다.) 이 나왔다.
조니 워커는 스코틀랜드의 '디스틸러스 컴퍼니'라는 지주회사에 속해 있다가 1986년 이 회사가 기네스에 팔리고 기네스가 합병해 디아지오를 만들면서 디아지오에 속하게 됐다.
발렌타인
발렌타인은 조니 워커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1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블렌디드 위스키이다. 한국에서 워낙 인기가 좋아, 한국인들을 위해 따로 블렌딩을 한다고 할 정도이다. 싱글몰트 위스키와 달리, 블렌디드 위스키의 브랜드 창시자들은 양조장을 갖지 않은 채, 주류 판매상을 하던 이들이 많다.
발렌타인의 창시자인 조지 발렌타인(1808~1891) 역시 열아홉 살부터 에딘버러에서 잡화상을 경영하며 여러 가지 위스키를 팔았다. 가게가 번성하자 1865년 큰아들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글래스고에 더 큰 가게를 열어 와인과 스피릿 판매에 전념하고, 이 가게에서 영국 왕실에도 납품을 했다. 그러면서 1869년 자신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개발해 팔았고, 이게 수요가 늘자 둘째아들이 사업에 동참해 '조지 발렌타인 앤 선'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 뒤 창고를 갖춰놓고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위스키를 팔면서 사업이 번창했고, 아버지 조지는 1881년 은퇴한 뒤 1891년에 사망했다. 1895년 빅토리아 여왕이 이 회사에 훈장을 수여했으며 1910년에 유서 깊은 '발렌타인 파인스트'(최하 3년 이상 숙성시킨 수십 종의 위스키를 블렌딩한 것)을 내놓게 된다.
조지의 아들은 1919년 비싼 가격에 회사를 '바클리 앤 맥킨리'에 팔았고, 새 주인은 '발렌타인' 이름으로 신제품 개발에 몰두해 1930년 '발렌타인 17년'과 '발렌타인 30년'을 선보였다. 1937년 주인이 한 차례 더 바뀌면서 이 회사는 유럽에서 가장 큰 곡물증류소를 갖게 됐고, 1960년대에 유럽 공략에 전념해 1980년대에는 유럽의 넘버원 브랜드로 꼽히게 됐다.
이 회사는 1988년 '어라이드 도맥'을 거쳐 2005년, 디아지오와 함께 1,2위를 다투는 다국적 주류 기업 페르노리카에 넘어갔다.
맥켈란
스카치 위스키 생산이 합법화된 직후인 1824년에 나온 유서깊은 싱글몰트 위스키이다. 글렌피딕, 글렌리벳 등과 더불어 스카치 위스키 5대 생산지 중 하나인 스페이강 유역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이다. 증류소 인근 지역 주민들이 경작한 보리로 술을 담갔고, 1960년대 상장한 뒤 한동안 주식의 상당 부분을 지역 주민들이 소유해 '몰트 오브 피플'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오롤로소 셰리주(포도주에 브랜디를 섞어 알코올을 강화한 스페인의 셰리주 가운데 가장 오래 묵히는 것)를 담았던 통에서 숙성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며, 1926년산 빈티지 맥켈란이 200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5400달러에 팔려 사상 최고가의 위스키로 기록되기도 했다.
글렌피딕
글렌피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싱글몰트 위스키로, 싱글몰트 위스키 안에서의 시장점유율이 35%에 이른다. 대다수 위스키 회사들이 다국적 주류 기업에 합병된 것과 달리, 글렌피딕의 제조사인 '윌리엄 그랜트 앤선즈'는 창립자의 가문이 대를 이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창립자인 윌리엄 그랜트(1839~1923)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이런 저런 잡일들을 하다가 스물일곱 살인 1866년에 양조장의 장부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된다. 거기서 20년간 일하면서 위스키 제조의 노하우를 배운 뒤, 1886년 그동안 번 돈으로 땅과 장비를 사서 9명의 자녀와 함께 글렌피딕 증류소를 차렸다. 그리고 1887년에 글렌피딕이 첫 선을 보였다.
블렌디드 위스키 일색이다시피 하던 당시에 싱글몰트 위스키를 판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윌리엄 그랜트는 증류소를 하나 더 사들이면서 저돌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갔고, 그의 사위인 찰스 고든은 이 위스키의 해외 판매에 나서, 1914년에 글렌피딕은 세계30개국으로 수출됐다.
2차대전 뒤의 경영난을 벗어나기 위해,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는 제품 수를 늘림과 동시에 1957년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병에 글렌피딕을 담아 팔기 시작했다. 아울러 면세점을 주요 공략대상으로 삼아 마케팅해온 것에 힘입어 싱글몰트 위스키 판매량 1위를 고수하면서 180여개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대다수 몰트 위스키 증류소에서 생산량의 90%를 블렌디드 위스키용으로 보내고, 나머지 10%를 싱글몰트 위스키로 담는 것과 반대로, 이 회사의 증류소들은 90%를 싱글몰트 위스키로 담고, 나머지 10%를 블렌디드 위스키용으로 사용한다.
버번 위스키
버번 위스키는 원료인 곡물 가운데 통상 70% 이상(미국 정부 법으로는 51% 이상)을 옥수수로 하여 만든 주정을 증류한 위스키다. 미국 법은 증류한 술을 오크통에서 2년 이상 숙성시켜야 '버번'이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한다. (스카치 위스키에 대해 영국법이 요구하는 숙성기간은 3년 이상이다.) 스카치 위스키에 비해 싸구려로 술로 통해오다가, 이후 6년 이상 숙성된 버번이 대량생산되면서 통념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 버번은 18세기 후반 미국에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역사에서부터 미국과 영국의 갈등이 얽혀 있다. 미국 서부 개척기 초기, 넓디 넓은 땅에 옥수수가 무척 잘 자라 사람 먹고, 소와 말 먹이고도 남았다. 이걸 미국 동부에 가져다 팔자니 운송비도 안 나오고, 그래서 술로 담가서 마시기도 하고 다른 물자와 교환하는 화폐 대용으로 썼다고 한다. 마침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 1812년 전쟁 등을 벌이는 동안 설탕과 당밀 등의 수입이 힘들어졌다. 그때까지 미국에서 주로 마시던 독주는 럼주였는데, 당밀이 원료인 럼 역시 원활히 생산되지 못했다. 그래서 옥수수술을 증류한 버번 위스키가 그 대체제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버번의 역사에 영국이 등장하는 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름부터 그렇다. 버번 위스키는 켄터키주에 있는 버번 지방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버번'이라는 지명은 프랑스 푸르봉 왕조에서 따온 것이다.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일 때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미국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위스키의 표기도 미국과 영구이 다르다. 스카치는 'whisky'이고 버번은 'whiskey'이다. 위스키 스펠링은 아이리시 위스키 편에서 다시 다뤄진다.) 또 하나, 독립전쟁으로 빚체 쪼들리게 된 미국 연방 정부가 1791년 '위스키 세금'을 매기자, 주류제조업자들이 '위스키 반란' 까지 일으켰다가 결국 연방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켄터키주로 옮겨 갔고 마침내 그곳에서 훗날(1964년) 미국 의회가 'America's native Spirit'으로 공인한 버번 위스키가 탄생했다.
짐 빔
술 당기는 김에 여기서 술 얘기, 1795년부터 만들어져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짐 빔은 '와일드 터키' 등과 함께, '미국 고유의 독주'로 미국 의회가 공인한 버번 위스키를 대표하는 상표이다. 한국에선 얼마 전부터 '잭 다니엘스'를 많이 마시는데, 잭 다니엘스는 엄밀히 말해 버번 위스키가 아니다. 옥수수가 주원료인 건 맞지만, 증류한 원액을 오크통에 담기 전에 단풍나무 숯으로 여과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테네시 위스키'라고 분류한다. 실제로 술도 버번이라는 곳에 속헤 있는 켄터키주가 아닌 테네시주에서 만든다.
그럼에도 짐 빔과 잭 다니엘스는, 우리로 치면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관계처럼 미국에서 가장 라이벌을 이루고 있는 술이다.
잭 다니엘
미국 영화에 단일 브랜드로 가장 많이 출연한 술은? '잭 다니엘스' 아닐까. 버번 위스키처럼 옥수수를 주재료로 함에도 제조 과정이 조금 달라 테네시 위스키로 분류되는, 그럼에도 대다수가 버번 위스키의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로 알고 있는 그 술.
1975년에 태어난 이 술은 역사도 짧고 테네시주 무어카운티라는 촌 동네 출신이지만, 그곳의 천연광천수를 이용하고, 증류 이전의 발효 단계에서 원료들을 묵혀 단맛을 줄인 뒤, 증류액을 단풍나무 숯으로 여과하는 특유의 제조 과정을 꾸준히 지키면서 명성을 쌓아갔다. 1904년에 열린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의 위스키 경연대회에서 스코틀랜드의 명주들을 제치고 금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미국 너머로까지 알리기 시작했다.
잭 다니엘스의 창업자인 잭 다니엘이 살았던 미국은 훨씬 더 타락했다. 남북전쟁이 있었고, 극심한 인종차별 속에 KKK단이 만들어졌고, 주세가 높은 데 비례해 밀주와 뇌물이 횡행했고, 상당수 기독교인들은 그 모든 죄를 술에 돌려 금주운동을 열렬히 펼쳤다. 아일랜드 출신 이민 3세인 잭 다니엘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어머니가 죽고, 남북전쟁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아버지도 죽고 새엄마가 떠나자 십대 중반에 이웃 농가에 들어가 농사일을 도와주며 자랐다.
운명처럼 그 농가의 주인이 증류소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서 맡은 옥수수 증류주의 냄새 속에서 잭은 장래의 희망을 보게 된다. 스물다섯 살에 아버지 소유의 농장이 팔리면서 유산을 상속받게 되자 증류소를 세웠다. 서른 즈음에 이미 부자가 된 잭이 그 뒤에 한 일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술 제조 상한을 하루 300갤런으로 정해놓고 이걸 지키면서 술의 품질을 유지했고, 또 하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서 교회에 헌금을 많이 냄으로써 봉사활동도 하면서 금주운동의 표적에서 비켜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전국적인 금주령이 시행됐고, 회사를 이어받은 그의 조카는 다른 사업으로 자산을 지켜오다가 금주령이 해제된 뒤 공장을 다시 세웠다. 그 조카가 죽고, 자식들이 회사를 이어받았다가 1956년 브라운-포맨이라는 거대 주류, 음료 기업에 팔아 브라운-포맨이 잭 다니엘스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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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나 와인을 오크통에 숙성시킬 때 증발돼 줄어드는 미세한 양을 두고, 서양인들이 '천사의 몫'이라고 부르는 건 유머도 있고 광고 효과도 있다. '얼마나 맛있으면 천사가 돈 안 내고 훔쳐 마실까......' 그런데 천사도 서로 주량이 다른 모양이다. 스카치 위스키의 본산지인 스코틀랜드 지방은 저기압이어서 증발량이 매년 2% 남짓이라는 데, 그보다 기압이 높은 한국에선 증발량이 더 많을 것 간다. 한 주류회사 관계자에게 "스카치 위스키 수입량이 세계 5위에 이르는 한국이 위스키 원액을 못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 원인으로 수질, 피트(토탄) 매장량의 차이 등과 함께 기압에 따른 '천사의 주량 차이'를 꼽앗다.
선토리 위스키
선토리 위스키사가 만든 '히비키 30년산'은 <위스키 매거진> 주최로 런던에서 열린 '월드 위스키 어워드 2008'에서 '최우수 블렌디드 위스키'로 꼽혔다. 또 헌토리와 함께 일본 위스키의 양대 주자인 닛카 위스키가 만든 '요이치 20년산'이 같은 대회에서 '최우수 싱글 몰트 위스키'로 선정됐다.
선토리와 닛카, 두 회사는 1980년대 말부터 스코틀랜드의 양조장을 사들이고, 2000년대 이후 권위있는 위스키 경연 대회에서 주요상을 여러 차례 석권했다. 이에 따라 스카치 위스키의 모국인 영국의 언론이나 위스키 관련 사이트에는 수년 전부터 일본 위스키를 다룬 기사들이 실린다. 기사들은 중국, 인도, 러시아에서의 위스키 소비량 증가로 급팽창하고 있는 위스키 시장에서 일본 위스키가 큰 활약을 할 것으로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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