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는 책들을 보면 보통 가장자리 위 아래쪽이 접혀 있다.
접혀있는 부분이 많고 적음에 따라 내가 몇 번에 걸쳐서 그 책들을 읽어내려갔는지 알 수가 있다.
책의 아랫 부분은 책을 읽다가 중간에 멈추고 다음에 읽어야 할 때 접어둔다. 여기까지 읽었다는 표식이다.
반대로 윗부분은 읽다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해 접은 부분이다. 보통은 연필이나 볼펜으로 표시를 해두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 표시해두는 방법이다.
<롤리타>의 경우에는 아랫 부분이 여러 군데 접혀 있다. 길게는 100여 페이지에서 짧게는 2,3장에 이르기까지 접혀있는 폭도 가지각색이다. 이 의미는 읽는데 어떤 상황때문에 계속 끊겼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아주 조금 시간이 있어도 그것을 읽기 위해 책을 펼쳤다는 표시이다.
문학동네에서 내놓은 <롤리타>는 작년 초부터 읽기를 망설였던 책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눈에는 자주 띄었지만 왠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아마 눈에 잘 띈 것은 책 표지 디자인부터 눈길을 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표지는 문학동네에서 네이버를 통해 해당 표지 이벤트를 진행해서 선정된 것으로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제목과 '한 남자와 소녀와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짐작하고 있던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처음에 어느 정도 읽어내려갔는데 불편했다. 최근에 국내에서도 자주 불거지는 아동성폭력에 대한 뉴스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고 머릿속에 잠시 박범신의 <은교>도 스쳐 지나갔다.
과연 문학은 어떤 소재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재의 제약이 없다는 것에 기뻐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해보았다.
이런 논란은 책이 출간될 때 부터 불거졌다. 1955년 유럽과 미국에서는 <롤리타>에 대해서 '판매금지'조치가 이루어졌고 송아성애자의 판타지를 그린 포르노그래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불과 3년 후인 1958년 뉴욕에서 출간되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영어소설로 꼽힐 정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타임, 르몽드, 모던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소설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게 되었다.
<롤리타>가 이런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은 내용보다는 글 속에 표현되는 은유와 비유의 향연 속에 빠지는 매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자극적인 소재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은유와 상징 속에서 헤매는 내 모습이었다. 헤맸다는 것은 우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심리와 자극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경외감과 함께 때로는 너무나 많은 은유, 비유, 상징 속에서 지쳐 짧고 사실적인 표현이 있는 글들을 읽고 쉽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롤리타>는 처음 문장부터 아주 훌륭하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읽은 글들 중에서 가장 멋진 도입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이런 책은 정말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으나 내 영어실력이 아쉬울 뿐이다. 나중에 한 번은 사전을 찾아보고 한 번쯤 시도는 해보고 싶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롤리타>를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이 난 것이 있다.
위에도 이미 이야기했지만, 소재의 자유로움 속에서 느껴지는 다소의 불편함과 은유와 상징으로 언어의 무한함을 느끼게 해주는 표현력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예술작품에 대해 내려지는 심의에 관해서이다.
이미 앞의 두 사항에 대해서는 설명했고 심의에 관련된 내용은 <롤리타>와는 어쩌면 다소 연관성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읽는 내내 심의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떠올랐다.
작년에 읽은 책 중에 만화책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보지 말아야 할 성애장면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2013년 7월 25일에 간행물윤리 심의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로 결정되었다.
여기서 성애장면이라는 것은 아주 일부 나와있으며 내용의 전개상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최근에 TV에 등장하는 걸그룹들보다 덜 야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들이 자살한 아버지를 대신해 고백해내는 아버지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삶은 스페인내전을 겪고 아나키스트로서 삶을 살고자 했으나 결국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살게되는 개인의 삶이자 역사를 보여주는 이 만화를 단지 몇 장면에 불과한 것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낙인찍어버렸다. 결국 나중에 심의에 통과했으나 다른 훌륭한 문학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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