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이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눈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볕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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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소설 속 이야기.


작중 화자인 겐타로는 일본에서 자라고 공부했다. 그가 열세 살 때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세상에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후에 여러 사정으로 김경식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게 된다.

겐타로에게는 시케하루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다. 어느날 시케하루는 도서관에서 간단히 자료만 찾아주는 보수가 좋은 일을 겐타로에게 같이 하자고 한다. '만주'라는 단어에 대한 검색한 책에 대해서 조사해서 U라는 누군가에게 메일로 보내주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시케하루가 사라진다. 그리고 겐타로는 사라진 시케하루를 찾아 나선다.

시케하루를 찾으러 가는 여정에서 그는 종이뭉치 속에서 다른 세대의 사람인 요코이자 이타츠 푸리카를 알게 되고, 동주라는 한국 시인을 알게 된다. 그 속에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


윤동주를 만나게 되다.


구효서 작가의 <동주>라는 책을 만났다. 좋은 인연을 만났다. 책과의 좋은 인연 중에 하나는 책 속에서 장르가 확장되고 새로운 호기심과 궁금증을 일으키는 확장성이다. 소설 <동주>를 통해서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그의 시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그가 태어난 곳인 간도는 과연 어떤 역사가 있는지 궁금했다. 자연스럽게 시와 역사로 이어진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아까운 삶을 마쳤다. 겨우 29살이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리다. 그는 1943년 일본 특고경찰에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고 1944년 3,4월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의 징역에 처해졌다. 그런 그는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의 죽음에는 생체실험이라는 짙은 의혹이 드리워져 있었다. 짧은 삶 속에서 그는 시 119편과 산문 4편을 남겼다. 이 시들 중에서 특히 <서시>와 <별 헤는 밤>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간도의 상징성과 작중 인물


간도는 우리에게 아픈 곳이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흉년으로 사람들은 두만강을 넘어 간도 지방으로 이주를 시작했고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그래서 1926년 당시에는 중국인이 9,912호인 반면 우리나라 사람의 호수는 5만 2,881호에 달했다. 그리고 이곳은 우리민족의 항일투쟁의 근거지가 되었다. 동시에 중국, 러시아, 일본의 열강들의 경계 속에서 파란만장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간도는 마치 정체성에 고민에 빠진 섬과 같았다.


이런 간도와 작중 인물들의 삶이 마주친다. 

동주는 일본에서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다. 동주이면서 히라누마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소설 속 인물인 요코는 요코인 동시에 이타츠 푸리카로 살아간다. 처음에 자신은 일본인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이 이누아족이라는 것을 알아가며 정체성을 회복해간다. 작중 화자인 겐타로 또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김경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들은 사이를 살아갔다. 하나가 아닌 여러 곳에 걸쳐져 있는 삶 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결국은 자연스럽게 정체성에 이끌린다. 


<동주>는 윤동주가 이야기의 흐름에 중심에 서 있지만, 요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요코는 어렸을 때 고등경찰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동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도리우차 아저씨를 알게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팥빙수를 얻어 먹는다. 그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이유없이 팥빛수를 좋아하는지, 왜 그렇게 시원한 얼음이 좋은지 모른다. 책을 같이 읽은 한 친구가 말한다. 요코는 원래 아이누족인데 아이누족은 훗카이도에 터전을 잡고 있고 그곳은 눈이 많은 곳이란다. 그녀도 모르게 그녀가 이끌리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유없이 빠져드는 무언가가 삶에 때로 중요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언어의 의미와 정체성


<동주>에서는 언어에 대한 표현이 자주 나오며 중요시 다루어진다. 언어는 곧, 영토이며 민족이다. 윤동주가 일본에서도 늦은 밤 한글로 써내려 온 시는 어쩌면 하나의 외로운 민족해방운동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언어란 무엇을 나타낼까?


p200

나는 만주와 조선에서 보았고, 관동대지진으로 들었어. 아버지가 직접 일본에서 그 지진을 겪으셨거든. 쥬고엥고짓센. 조선에는 없는 어두유성을 말하게 해서 발음이 정확치 않으면 바로 죽여버렸지. 말. 말로 조선인을 구별해냈던 거야. 말 한마디가 삶과 죽음을 갈랐지.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고향으로 편지를 하면서도 걱정 말라는 조선말을 못 쓰고 네바 마인도라는 일본식 영어 발음 딱 한 줄 적어 보냈겠는가.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과 배척은 실로 추악해. 동화라는 그럴싸한 말 속에는 그런 끔찍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거야. 말이 같아야 한다고? 같아지는 게 아니라 빼앗기는 거지. 말을 빼앗기면 다 빼앗기는 거고.


p339

시란...... 말이 있어야 하고 말은 말의 영토가 있어야 하지. 조선과 조선의 말이 있어야 시도 있는 거잖아. 지금 조선도 말도 다 빼앗기고 있어. 시를 지킨다는 게 말을 지키는 거라면, 말의 영토부터 지켜야겠지. 되찾아야겠지. 꼭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하면 지켜낼 수 있을까?


얼마전에 기사를 하나 보았다. 중국이 윤동주의 생가를 국가공인 관광지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으로 알리며 A에서 부터 AAAAA로 관리되는 국가공인관광지 중 AAA로 지정할 계획 및 지원할 예정이란다.

기사를 접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였다. 우리나라의 정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충분하며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역사를 빼앗기는 것은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족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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