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사회의 교회계급, 영주/군사계급, 농민이 있었다. 농민들은 각종 세금과 11조 부담했다.

11세기 십자군 원정 이후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정기시가 생기며 시장을 중심으로 한 화폐경제로 변모된다. 상업의 활성화는 도시의 성장을 가져왔으며 상인들은 자신들의 단결과 확장을 위해 길드, 한자등을 조직하며 그들의 발언권과 세력을 높여갔다.


상업이 발전하면서 일상의 관행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세 초기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는 교회에 의해 벌을 받아야 하는 행위였으나 이러한 교리는 사라지고 신념, 법등도 상업의 발전에 발맞추어 변해갔다. 영주의 토지에 얽매여서 농사를 지어야만 했던 농민들도 당시 개척지의 증가와 14세기 흑사병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노동자의 지위는 강력해졌으며 그들은 기존의 억압된 환경에서 그들의 지위를 회복하는데 힘을 사용했다.


길드의 구성원들은 도시에서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인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길드는 후에 큰 길드가 작은 길드를 지배하고 장인들이 큰 길드의 직공으로 들어가는 등 길드제도가 변화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프롤레타리아로 등장하기시작한다.


상인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이제 그들은 장사를 위해 안정과 질서를 원했다. 기존의 봉건영주들의 힘이 셀 때는 영주들 간의 경쟁이나 다른 여러 요소들에 의해 제약을 받고 각종 세금의 영향을 받았다. 이제는 전체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앙권력이 그들에게 필요했고 상인들의 자본력과 국왕은 동맹을 통해 기존 영주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또한 당시 전체토지의 1/3이상을 차지했던 교회의 특권을 해체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이는 종교개혁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16~17세기에는 상업의 중심이 기존의 베네치아와 같은 상업의 중심지에서 대서양을 중심으로 진출이 가능한 나라로 바뀌어 나갔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그 중심이 되었고 서인도회사, 동인도회사, 아프리카와 같은 회사들이 등장한다. 스페인의 경우는 페루, 멕시코에서 금광, 은광을 발견함으로써 유럽에는 상업의 발달과 금,은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체적인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물가상승은 토지소유자나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는 제조업자들에게는 이익을 가져왔으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는 실질적인 압박으로 다가왔다. 임금의 상승은 물가상승에 맞추어 올라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상업은 발전되고 기존의 가내수공업의 형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뉴버리의 잭이라는 사람은 16세기 자신의 공장에 200개의 방직기와 600명의 성인남녀와 어린이를 고용하여 일을 했다. 점점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은 사라지고 중간상인과 기업가에 종속되어 임금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 국가의 부의 척도는 금과 은이었다. 그래서 각국은 자국의 금,은이 유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각종 법안과 규제를 만들었다. 보조금과 각종 지원금 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식민지에서 각종 원자재를 들여오고 그들 나라에서는 영주국과 동일한 산업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만들어진 물건을 다시 되 팔면서 그들의 부가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지 않게 하였다. 동시에 상인계급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은 동일시 되어 갔고 무역에 관련된 일이 국가의 주업무가 되어 갔다.


1776년은 미국의 독립 선언, 즉 영국의 중상주의적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발의 해인 동시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세상에 나온 해였다. 이 책에서는 중상주의의 제한, 규제, 금지에 대한 각종 제도에 대해 비판했으며 모든 제도를 없애면서 자연스러운 거래가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 후반에 제1신분이며 2신분이었던 성직자와 귀족이 각각 13만명, 14만명이었다. 민중은 제3신분으로 2500만명의 프랑스 국민 중 95%를 차지했다. 이들 중에서도 약 25만명의 상층 중간 계급인 부르주아지는 제3신분의 나머지의 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나머지 2200만명의 농민들은 각종 세금을 납부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적이지 않은 사회에서의 봉건적 법률을 폐기하려 했고 그들의 힘은 증대해지기 시작했고 종교개혁, 영국혁명, 프랑스혁명의 큰 배경에 힘입어 18세기 후반에는 봉건질서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제 대신 이윤창출의 목적으로 상품의 자유교환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체제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체제로 향한 길을 개척하는 과정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과정이다. 교회는 근면, 검소를 강조하고 이전처럼 이윤 추구를 막지 않았다. 또한 초기 상업 축적 자본과 무산노동계급이 결합되면서 자본주의는 다시 상업자본에 다시 부를 축적시켰다.


18세기 말에는 신작물재배, 증기기관의 발명, 운하 및 도로 건설등 농업, 공업, 수송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자본주의의 발전에 부추긴다. 자본가들은 점점 기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많은 노동력을 사려고 했다. 여성, 아동등이 저임금으로 무분별하게 이용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기존의 길드 형태를 노동조합으로 발전 시키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하는 애덤 스미스의 교의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또한 맑스와 같이 전혀 다른 노선으로 향한 이들도 생겨났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착취된다고 생각했으며 엥겔스와 함께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특징을 지적한다. 부는 소수에 집중, 소수의 대생산자가 다수의 소생산자를 눌러 부수고, 기계 사용이 확대되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린다. 또한 자본주의의 풀리지 않는 숙제인 공황이 주기적으로 일어난 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들은 근본적으로 사유재산을 폐지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해방하는 투쟁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자본주의도 힘을 더해 간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에는 트러스트가 독일에서는 카르텔이 산업을 장악한다. 그리고 과잉생산된 상품을 팔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 들고 그들에게 원자재를 들여와 다시 상품을 그들에게 판다. 유럽 국가들은 채 20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술 몇 병과 천을 가지고 영토를 넘기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아프리카 전역을 합병, 분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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