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로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를 가지는 <오래된 연장통> 이다.
만약 부제가 적혀있지 않다면 이 책이 무엇에 관련된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제목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한때 통섭을 주제로 한참을 뜨겁게 달군 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이자 국립생태원 원장인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 에서 추천도서 목록을 접하고 나서 알게되었고 최근에 읽은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을 읽으면서 1장에 소개되는 주제가 심리학이어서 기존에 구매를 망설였던 <오래된 연장통>이 내 손에 오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전중환 경희대학교 교수는 서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의 최재천 교수 연구실에서 [한국산 침개미의 사회 구조 연구]로 행동생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텍사스 대학교 심라학과에서 진화심리학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데이비드 버스 교수 연구실에서 [가족 내의 갈등과 협동에 관한 진화 심리학적 연구]로 진화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렇게 작가의 약력을 잠깐 살펴본 것은 생물학과-진화심리학의 연계 고리가 아주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학문이 만나는 융합, 통섭의 한 예라고 볼 수도 있고 우리 인간의 심리를 찰스 다윈의 진화라는 개념을 통해서 풀어나가는 진화심리학이라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 <오래된 연장통>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인간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비바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포식동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지화적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다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다. 톱이 판자 자르기, 드릴이 구멍 뚫기를 각각 잘 수행하게끔 특수화된 공구들이듯이, 인간의 마음은 각각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특수화된 수많은 심리적 '공구'들이 빼곡히 담긴 연장통이다. 그런데 이게 오래된 전통적인 공구들만 들어있는 오래된 연장통이기에 오늘날에는 가끔씩 문제를 일으킨다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주제에 대해서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중에서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우리가 왜 향신료를 사용하는가?' 에 대한 설명이었다.
한국인들은 매운맛하면 의래 고추의 매운맛을 연상한다. 하지만 후추, 생강, 마늘, 양파, 파, 계피, 강황, 파슬리, 레몬, 육두구, 고추냉이 등등은 매운맛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준다. 이처럼 향신료가 저마다 독특한 맛과 향기를 내는 까닭은 식물 종마다 조금씩 다른 2차 대사산물인 '피토케미컬(phytochemical)을 지니기 때문이다.
피토케미컬은 식물이 초식동물이나 초식 곤충, 곰팡이, 병원균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화학 무기로 수십가지의 피토케미컬들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각 향신료 고유의 매운맛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이 대표적인 피토케미컬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식물들의 무기라 할 수 있는 피토케미컬을 즐겨하는 것일까?
피토케미컬이 만드는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따라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통증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 자연 진통제인 베타-엔도르핀이 분비되므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은 어떻게 좋아하게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고 매운 맛의 향신료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향신료가 음식물 속의 세균과 공팡이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므로 인간은 향신료를 일종의 향균제로 요리에 곁들이게끔 진화했다는 가설이 있다.
이런 것은 대장균, 살모넬라 같은 세균이나 기생충의 위험성을 낮춰준다. 그리고 추운 나라보다 더운 나라가 더 많은 그리고 더 강한 향신료를 선호한다는 것이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위의 내용은 책 속의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이론적인 면보다는 '왜 직장 간부와 면담하기 전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지','왜 카페에서 가면 창밖에이 내다보이는 구석 자리에 앉는지' 등과 같은 우리의 일상 속의 모습을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
진화심리학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다른 이론적인 배경과 지식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가 부족하지만 진화심리학이 우리 인간의 마음과 본성을 들여다 볼 때 유용한 한 가지 도구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무엇인가 진화심리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화심리학만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에는 아직은 바라볼 수 있는 범위가 좁을 뿐 아니라 확실한 논거를 뒷받침해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으로 진화심리학이라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앎이 생겼고 호기심이 생겼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다른 심리학과의 연계성등도 찾아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입문서를 원한다면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앨런 밀러와 사토시 가나자와의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같은 책들을 읽어볼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나 역시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한 권이라도 찾아봐서 진화심리학이라는 지식의 스펙트럼을 조금더 넓혀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주제, 새로운 발상으로 일상생활에 접근하는 모습들이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오래된 연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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