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오디세우스는 귀환을 시작하자마자 연을 먹는 사람들의 섬에 기착한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권한 연 열매를 먹고 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모두 잊어버린다. 무엇을? 귀환이라는 목적을 잊어버린다. 고향은 과거에 속해 있지만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은 미래에 속한다. 그 후로도 오디세우스는 거듭하여 망각과 싸운다. 세이렌의 노래로부터 달아나고 그를 영원히 한 곳에 붙들어두려는 칼립소로부터도 탈출한다. 세이렌과 칼립소가 원했던 것은 오디세우스가 미래를 잊고 현재에 못박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망각과 싸우며 귀환을 도모했다.


시간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 없거든



책의 겉표지에는 김영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라 적혀있다. 그런데 내가 읽은 장편 소설 중에서 이렇게 짧은 글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총 페이지 수 173쪽의 1.3센티미터의 얇은 책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접한 책들과는 무엇인가 다른게 있었다. 이게 김영하라는 작가의 작품세계인가 생각도 해보았다.


김영하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책 부터가 아니라 팟캐스트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를 통해서이다. 작년부터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에서 김영하 작가의 목소리와 작품해설과 낭독이 좋았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아직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이지?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통해서 이런 저런 것들을 찾아보았다. 아! 나만 지금까지 몰랐었구나. 이미 오랜 전부터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었고 이미 많은 작품들을 선보인 작가였다. 이렇게 한 명의 작가를 또 알게 되는구나! 하면서 그의 최신작인 <살인자의 기억법>을 집어들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스포일러 한 마디면 작품이 재미없게 되는 마치 영화 식스센스의 마지막 반전과 같은 극적 대반전을 가지고 있고 책이 짧은 탓도 있지만 가수 이적이 읽고 남긴 한 마디가 이 소설의 재미를 잘 표현해주는 듯하다. '굉장한 파괴력, 단숨에 읽히지만 긴 후유증이 남는다. - 이적'


처음 읽을 때는 나 역시 정말 영화를 한 편 보는 것처럼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간단한 내용을 설명하자면,

주인공인 70세 김병수는 오랫동안 여러 사람, 특히 여자만을 골라 살해해온 연쇄살인마이다. 그런 김병수는 딸인 은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치매로 인해서 점점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시간과 기억에 대한 끈을 이어가기 위해 젊은 시절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렇게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다가 박주태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김병수는 박주태가 자신과 같은 눈빛을 지닌 같은 부류의 인간 바로 연쇄살인마라는 그만의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박주태가 그의 딸인 은희와 사귀게 되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는 필사적으로 은희를 그 연쇄살인마로부터 지켜내려한다.

그리고 후에 반전이 일어난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연쇄살인범과 치매라는 독특한 소재 두 개의 결합으로 작품을 전개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조금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문학동네의 팟캐스트 <신형철의 문학이야기>의 초대손님으로 김영하가 나왔다. 그리고 그의 작품 <살인자의 기억법>대해서 문학평론가인 신형철과 작가 김영하가 이야기를 한다.

이 작품은 김영하 작가가 의도적으로 여기저기 많은 아포리즘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포리즘이라 하면 간단히 말하자면 속담처럼 짤은 글이지만 의미있는 뜻을 함축하는 단락들을 말한다. 
그래서 나처럼 그저 쭉 읽어만 내려가고 그 아포리즘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저 짧고 재미있는 소설책 한 권 읽었구나! 하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책은 기억과 시간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연쇄살인범이라서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내려가서 그 의미를 잠시 접어둔 것 같다. 치매라는 소재를 통해서 우리가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고 시간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역할 수 없는 순리에 적응하고 간과하기 쉽지만 가장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 없거든'

분명 이길 수 없지만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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