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하루키가 좋아졌다. 책을 읽은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아 비교적 최근의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 읽을 수록 묘한 매력이 생겨났다. 그리고 한 권씩 그의 책을 찾아서 읽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만난 책은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1Q84》, 자신만의 색채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 하던《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독립기관>이라는 단편이 인상적이었던《여자 없는 남자들》이다. 모두 하루키의 2010년 이후의 작품들이다. 하루키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인 1979년에 데뷔한 이래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왔기에 그의 예전 작품들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선택한 책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이 책의 부제 격인 '세계적 작가 하루키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 이라는 말이 작품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말인 듯 하다. 글을 읽고 하루키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읽은 작품들이 성격이 다소 몽환적인 느낌 때문이었는지 작가의 성향도 무언가 독특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하루하루 철저하게 일정 거리, 시간을 달리기를 하고, 그의 본업인 글쓰기도 이른 시간에 규칙적으로 꾸준히 해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가끔 생각하는 밤낮이 바뀌고, 무언가 규칙적이지 않을 거 같고 조금은 특이할 것 같다는 작가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런 하루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으며, 동시에 달리기라는 것에 흠뻑 빠져들었다. 물론 글로 빠져들었을 뿐이다. 아마 이 책을 읽어본 분들은 읽고 나서 밖에 나와서 조금이라도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 기분으로 주말 아침에 아파트 단지 주변을 뛰어보기도 했다. 역시 글과는 다르더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p18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러너가 어느 날 컨디션이 좋다고 평소 이상으로 스피드와 거리를 올려서 달리고, 작가가 어느 날 하루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글을 쓴다면, 다음 날은 평소와 같지 않을 것이다. 하루키가 러너와 작가로서 언급하는 점은 확실히 탄력을 받을 때 까지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말은 즉, 일정량을 꾸준히 지속한다는 개념이다. 분명 이건 진리이다. 진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실제 이것을 몸으로 직접 체화해본 사람만이 그 진가를 알아차리고 그 진리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 속에서 실제 마라톤 코스(역방향이긴 했지만)를 뛰는 이야기 그리고 100킬로나 되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트라이애슬론에 대한 것도 흥미로웠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이기에, 또 아마 평생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들이기에 주의 깊게 들여다 보았다. 사실 간단히 생각해보면 그저 달리기인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한계에 도전하는 것에 다시금 고개를 숙이곤 한다.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들은 러너이자 작가인 하루키가 자신의 달리면서 느끼는 부분들,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표현들이었다. 운동을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등산을 하거나 가끔 달리기를 할 때는 정말 어떤 특별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에 하지 운동을 하다 보면 느껴지는 근육의 움직임들, 거친 숨소리, 그저 앞을 보고 달리고 오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그 이유일 것이다. 아마 그러면서 여기저기 뒤죽박죽 뒤섞여 있던 생각들이 버릴 것은 버려지고 다시 정리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P114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이만큼 일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단다" 하고 실례를 보여가며 반복해서 설득하면, 그 상대도 "아, 좋지요" 하고 그 요구에 맞춰서 서서히 힘을 들여 나간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무리하게 혹사를 하면 고장나 버린다. 그러나 시간만 충분히 들여 실행하면, 그리고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군소리도 안 하고(때때로 얼굴을 찌푸리기는 하지만)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나름의 고분고분한 자세로 강도를 높여 나간다. '이만큼의 작업을 잘 소화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기억이, 반복에 의해서 근육이 입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근육은 무척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쪽이 순서만 올바르게 밟아 나가면 불평하지 않는다.

아직은 그렇게 어떤 하나의 운동에 크게 매료되고 자주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늦기 전에 하나라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건강을 유지한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숨가뿐 기쁨을 찾아서 느껴보고 싶다.

다음에 읽을 하루키의 책은 몇 번을 읽다가 접어둔 《상실의 시대》이다. 기대된다.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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