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7
"가슴에 묻어? 못 묻어. 콘크리트를 콸콸 쏟아붓고, 그 위에 철물을 부어 굳혀도 안 묻혀. 묻어도, 묻어도, 바락바락 기어 나오는 게 자식이야. 미안해서 못 묻고, 불쌍해서 못 묻고, 원통해서 못 묻어."
p110
"천지야, 속에 담고 살지 마. 너는 항상 그랬어.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잘해도 싫어요, 소리는 못했어. 만약에 지금 싫은데도 계속하고 있는 일 있으면, 당장 멈춰. 너 아주 귀한 애야. 알았지?"
p114
"괜히 애써 무겁게 살지마. 산다는 거 자체가 이미 무거운 거야. 똥폼 잡고 인생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들, 아직 인생 맛 제대로 못봐서 그래. 제대로 봐봐. 웃음밖에 안 나와 ......"
p148
"그러게 말이다. 너, 죽지 마라. 언젠가는 죽기 싫어도 죽어. 일부러 앞당기지 마.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 더 아프게 하는 거야. 죽어서 해결될 일 아무것도 없어. 묻어둘수는 있겠지.근데 그거, 해결되는 거 아냐. 냄새가 진동하거든.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 거야. 생명 다할 때까지 살아."
p160
"어찌된 게 요즘 애들은 단체전은 없고 개인전만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혼자 다 하려니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겠어요."
p195
"...... 그리고 미라야, 분명히 말하지만 천지는 멍청한 게 아니라 착한 거야. 착한 애는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꼭 가지고 놀려는 것들이 생겨서 문제지. 자기 맘에 들면 착한거고, 안들면 멍청한 건가? ......"
"잘못했어요."
"알아."
"저는요, 천지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럼 그냥 '나 너랑 안 놀아.'하면 됐잖아."
"불쌍해서 어떻게 그래요....."
"너 말 참 우아하게 한다. 불쌍해서 못 했다고? 말은 못 하면서 행동은 어떻게 했니? 천지가 떠날 정도로 지독하게? 그냥 조금 더 가지고 놀고 싶었어요. 그게 네 진심 아냐?"
나는 과연 지금껏 살아오면서 우아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가? 잠시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을 한 적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의 등장인물 중 미라는 과연 미라의 그런 방관자적인 모습이 천지를 아프게 할지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사람은 무쇠처럼 강한 존재인 동시에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이다.
어떤 이에게는 단지 스쳐지나가는 말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정말 아릴 정도의 고통을 줄 수 도 있다.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제목 만으로 선택한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천지가 죽는다. 무언가 가벼운 주제가 아니구나 바로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 도가니를 읽을 때 안개가 배경으로 나왔을 때 느꼈던 기분이랑 비슷하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인 천지의 자살은 지금 세대를 살고 있는 어떤 이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과 얼마 전에도 한 학생이 왕따로 인해 자살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면서 고통 속에서 여전히 아파하는 이들은 너무나 많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왕따의 대상은 정말 무언가 크게 잘못하거나 그래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미소처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조건에 처해있고, 거기에는 분명한 가해자 대상이 있으며 이들과 함께 주변의 동조자와 방관자가 주변을 채운다.
나는 과거에 가해자, 동조자, 방관자 였던 적이 없었을까? 자신있게 없었다. 라고는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택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고통의 결과로 결정한 것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내가 한 말이 타인의 가슴에 꽂히는 화살이 되지 않는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고, 그 화살은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창비의 청소년문학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정말 지금 학교생활을 하는 이들이 한 번 읽어보고, 자신은 어떤 대상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말 무엇보다도 아프게 하는 입으로 나오는 그 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항상 다시 되새겨보아야 한다.
그래야 내 앞에 있는 당신이 아프지 않고, 내가 아프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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