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는 2003년 4월, 길상사 요사채에서 가진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의 네 시간에 걸친 대담을 엮은 책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분들이지만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짧은 글들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사진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한 없이 위로 받았고 두 분의 대담 속에서 삶이라는 게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최인호가 물었다.

"스님,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법정이 답했다.

"몸이란 그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 걸요."


둘은 웃었다.


두 분의 대화 속에서 몇 번이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정해진 길이 없는 삶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길을 택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따끔하지만 따뜻하게 감싸줌을 느꼈다. 그리고 삶은 살아가는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두 분의 삶이 대화에 그대로 드러나인지 몰라도 짧은 글 속에서도 큰 울림이 있다.  





고독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법정)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최인호)

현대인들은 갈수록 고독을 느낀다고 합니다. 인간 자체는 고독한 존재인데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똑같이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지요. 

다만 현대인들이 갈수록 고독해지는 것은 광장에 나와 있기 때문이고 고독을 받아들일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한 세계에서 훨씬 많은 일과 부딪치며 삽니다. 고독할 기회가 적다고 할까요. 그래서 인간은 원래 혼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다가 문득 외로워지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지요. 쾌락으로 고독을 잊어보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결코 위로하지 못합니다.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시가 하나 있어 적어본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 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법정 스님의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아마 외로움이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눈을 비로소 마주 응시할 수 있음을 뜻하리라. 삶이라는 것이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스스로 찾아나가는 그리고 언젠가는 완벽한 고독과 마주하게 되면서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생각일 뿐이다. 어쩌면 그저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뻔지르한 말 뿐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자신과 맞닥뜨리는 게 길인 듯 싶다. 쉽지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은 속인에게는 어쩌면 두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정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법정)

영혼에는 나이가 없으니까요. 단지 육신을 가지고 나온 시간이 얼마 안 되었을 뿐 몇 번의 생을 겪고 나온 것이잖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라든가, 배울 새도 없었을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지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그 소리입니다. 육신의 나이로 아이를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법정)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꼭 해 주는 애기가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은 죽고 못 살 만큼 서로 좋아하지만 속상하면 못할 소리가 없다. 아무리 속상해도 막말은 하지마라. 막말을 하게 되면 상처를 입히고 관계에 금이 간다.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해 언젠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 어떤 일이 있어도 막말은 하지 마라."

관계의 균열이란 사소한 일, 무례한 말 같은 것에서부터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최인호)

칼릴 지브란이 말했던가요?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왔는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내 것은 아니다.' 라고요. 


(최인호)

가정은 우리 최후의 보루입니다. 가족은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끝까지 지키지 않으면 너무 억울한, 우리 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식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절에 가서 불공드리고 교회가서 기도하고 불우 이웃 좀 돕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오히려 집에서 왜곡된 사랑으로 상처 받는 아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게 더 중요하지요.


이런 대화 중심에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존재적 대등함, 인격적 대등함이라는 바탕이 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어떤 갈등이나 문제에 있어서 기본적인 접근법은 남편, 아내, 아이들을 모두 동등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자식이니까 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 들어야해.' 라고 자연스럽게 박혀 있는 생각을 걷어내야 한다. 다치고 상처입고 돌아온 가정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어야 한다. 가정은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 고립되고 감추는 공간이 아니고 서로를 보듬어 주는 동시에 각자 개인의 존재적 대등함을 인정해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 가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고 부끄러워하고 반성해본다. 그리고 늦지 않았음을 알고 다시금 되돌아본다.




두 분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대담이지만, 그 옆에 잠시 앉아 있었던 기분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그 무게가 갖는 힘은 다르다. 그러기에 이 분들의 말씀이 깊이 스며들었다.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여전히 꽃은 지지 않았다. 향기가 진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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