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월 책정리

 

#1.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 - 최병삼,김창욱,조원영/삼성경제연구소
-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주목을 받아온 플랫폼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IT업체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산업을 바라보면서 플랫폼에 대해서 설명하고 플랫품 구축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플랫폼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논리적인 구조를 잘 갖추고 있어서 논리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라든가 플랫폼에 대한 전략에 대해 접근법을 보기에는 좋은 것 같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 2.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마로니에북스

- 박경리의 <토지>를 읽다가 6권에서 정체되고 있다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았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제목인데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김약국과 그의 딸들이 겪게 되는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가 짙게 베어 있다. 읽고 나면 무언가 묵직한 기분이 든다. 읽고 나서 별도로 정리해두지 않고 서평을 쓰지 않은 게 아쉬운 책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의미있는 책이다.

 

# 3. 나의 조선미술 순례 - 서경식/반비

- 여기서 '조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재일동포인 서경식 작가가 큰 그림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가 직접 만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미술에 대해서 더듬어 가는 것이다. 다른 미술 관련 책들과 구별되는 점이라면 작품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작가를 중심으로 접근해가는 방식이다. 그의 작가 본인도 그렇고 디아스포라에 관련된 글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가 예전에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도 나중에 읽어볼 생각이다.

 

# 4.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 다케우치 가즈마사/비즈니스북스

- 전기자동차 테슬라, 우주산업 스페이스엑스, 태양광산업 솔라리스를 이끌고 있는 엘론 머스크에 관한 책이다. 사내외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유난히 많이 언급된 인물이다. '인간을 지구 밖으로 보낸다'라는 비전으로 실제 일을 만들어내고 실천해내는 모습이 대단할 뿐이다. 개인적인 목표, 비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책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히 목표를 찾아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 5. 식물의 인문학 - 박중환/한길사

- 식물, 나무, 환경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서 관련 분야의 책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처음에 들어가는 말부터 인상적이었다. "식물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그 외에도 가정 내에서 환기의 필요성과 식물을 기름으로써 얻는 효과등을 유심히 보고 조그마한 화분도 두개 사서 집에 두었다. 올해는 화분의 수를 많이 늘리고 관리법에 대해서 공부해볼 생각이다. 이 책은 식물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분명 좋은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인데, 몇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 6.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민음사

- 읽으면서 나 역시 수없이 상상했다. 망망대해의 조그만 배위에 낚시대를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실제 그런 사진이라도 있으면 하나 구해서 책상 앞에 걸어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노인이 몸에 낚시 바늘을 두르는 모습, 손에 쥐가 나서 그 손을 보고 대화하는 모습들이 떠오르고, 자꾸만 그 노인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 그 설명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은 올해 안에 한 번 필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노트를 준비했다. 남다른 감동을 받은 건 아닌데 한 번 써보고 싶었던 충동이 일어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르겠다.

 

# 7.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 최효찬/예담

# 8.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 - 최효찬/바다출판사

- 독서와 자녀교육에 대한 책이다. 무언가 특별히 남다른 이야기가 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보통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중간은 간다. 지금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보게 되고, 자녀 교육에 아버지로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준 책이었다.

 

# 9. 삶의 한 가운데 - 루이저 린저/민음사

- 이 책은 지루하지는 않은 데 읽는 데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작중 몇 년 만에 만난 언니와 동생이 동생의 우편물을 보면서 동생의 지난 삶에 대해서 회고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두 자매는 서로 이해하기도 하고 스스로 깊은 갈등과 고민에 빠지는 모습이 드러난다. 동시에 동생과 한 남자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볼 만하다. 시대적 배경은 나치시대이기에 당시의 시대상도 엿보인다. 읽고 정리하지 않고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작중 인물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다.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구는 하나도 없는 방안에서 트렁크가 놓여져있고 그곳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두 자매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고 그 옆에 위스키 병이 계속 생각났다.

 

# 10.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헨리 뢰디거, 마크 맥대니얼, 피터 브라운/와이즈베리

- 제목 그대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각종 실험과 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효과적인 공부법을 소개한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중해서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자주 기억속에서 인출을 자주 함으로써 배운 것을 떠올리라는 것이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시험이다. 이러한 인출작용을 통해서 뇌를 자극해서 부족한 부분을 알고 뇌 속의 뉴런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반복적으로 읽는 것은 우리가 텍스트에 익숙해져서 이해하지 못함에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외에도 흥미로운 기억법도 소개되었다. 어떤 것을 외울때 자신이 잘가는 카페를 생각하고 카페에 외울 것들을 대입하는 것들 같은거... 무언가 획기적인 공부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롭게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 1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문예출판사

- 이 책의 첫번째 매력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작중 주인공인 도리언 대신 그의 초상화가 나이를 먹어가는 이야기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인간의 도덕과 쾌락 뿐만 아니라 본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도리언이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추하게 변해가는 초상화를 통해서 과연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간 소설이지만 19세기 영국의 귀족문화를 엿볼 수 있었고,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에 대해서도 경험하게 만든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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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 라는 가장 큰 매력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과 함께 현재의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생각의 관점이나 나와는 다른 배경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통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서경식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통해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보여주듯이 미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술 작품과 그에 대한 설명 위주로 내용이 전개되는 다른 미술 관련 책들과는 구성 자체가 다르다. 실제로 책 속에는 미술 작품이 그렇게 많이 수록되어 있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읽고 나면 많은 그림이 가득차있는 것들 보다 더 깊이 미술작품을 감상한 기분이 든다. 작가 서경식은 미술 작품에 먼저 접근하기 보다는 작가의 삶을 먼저 들여다 본다. 이런 접근법은 나와 같은 미술 작품 감상에 문외한에게는 너무 반갑다.

미술에 대해 관심이 점점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미술관도 많이 가보지도 못했으며 작품을 보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미술 사조가 등장하면 그때부터는 앞이 캄캄해진다. 그런데 작가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되면 왠지 모르게 그 작품이 이해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은 후에 고갱의 작품을 보면 느낌이 다르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나서 고흐와 동생 테오와의 관계와 고갱과의 인연을 알게 되면 고흐의 작품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을 읽고 나니 그가 그리는 소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서경식은 이런 식으로 작가에게 먼저 접근하면서 그들의 개인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근현대사의 내용으로 가기도 한다.

처음에 책을 개괄하기 위해 책 속에 있는 그림들을 하나씩 볼 때는 이게 도대체 뭐야 했던 것들도 있었다. 이런 것도 미술 작품이야? 도대체 예술작품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솔직히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정연두, [상록타워], 2001

 

이 작품은 작가 정연두의 경험을 통해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어느날 아파트의 이웃집 여자가 복도에 나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 여자는 그와 마주치자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이웃집의 주인집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옆 집에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냐고? 실은 그 날 옆집 가족은 야반도주를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벽 하나 사이를 두고 이루어지는 똑같은 구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불행은 무엇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과 무서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한 아파트의 같은 구조에 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이 책의 다른 중요한 한 지점은 바로 '민중미술'과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는 민중미술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민중미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대두한 미술의 한 갈래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사회운동이 번지던 무렵에 등장,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의 삶과 행동을 주제로 하는 미술을 주장했다. 민중미술은 본래 비판적 리얼리즘의 면모가 강하였으나,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노동자 계급성이 강화된 양상을 띠게 되면서 주변적 장르였던 만화, 판화 등이 중심이 되었으며, 벽화, 걸게그림 등을 통해 선전, 선동성이 강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작가 신경호와 홍성담에 대한 부분에서는 이렇게 민중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회에 대한 작가의 역할과 접근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한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나어 베를린으로 입양된 작가 미희, 중국 만주에서 태어나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인연을 이어가는 윤석남, 산업화 시대에 간호사로 파독되어 그곳에서 작가로 거듭난 송현숙을 통해서 바라보는 디아스포라를 통한 미술적 접근과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바라본다.

 

 

 

좌(左) - 신경호 「넋이라도 있고 없고:초혼 1980」, 1980년
우(右) - 윤석남 「어머니Ⅰ: 열아홉 살」, 1993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미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어떤 이유로 그저 눈으로 보았을 때 의아한 것들이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고민을 해봐야 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그런 노력이 쌓여야만 새로운 작품이나 다른 것들을 받아들 일 때 무조건적인 배척 또는 수용이 아닌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 우선은 많이 접해야 겠다.

다른 하나는 예술인들의 사명의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민중문학이 생기게 된 것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회는 부조리 속에 빠져 있는데 그저 작품만 만들면 되는가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작품을 통해서 사회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였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않은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문인들과 시민들이 만든 '304 낭독회'도 어쩌면 그런 예술인들의 사명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모든 예술인이 이렇게 사명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에 대해 물어볼 깜냥은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그런 사명 의식을 가진 분들에 대해서는 지지해주고 존경해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신경호, 홍성담 작가의 글을 남긴다.

 

p57

만약 제 그림에 아직도 관심이 있다면 그이는 아마도 예술적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간직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예술적 삶은 '함께 현실을 아파하고, 같이 뛰어넘고자 하며, 더불어 치열하게 사랑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저의 리얼리즘입니다

p345예술가는 원칙적으로 모든 권력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입니다. 국가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술가는 오히려 허무주의자나 아나키스트에 가깝고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예술가에게는 처음부터 커다란 권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예술가인 것이 하나의 권력입니다. 자기 자신이 바로 하나의 '정부'이자 '대통령'이므로, 그렇게 가장 훌륭하고 가장 멋지게 태어났으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혁명정부가 탄생한다고 해도 그 과오마저 지적하는 정도가 되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닙니다. 예술가의 역할이란 언제나 그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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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호

p57

만약 제 그림에 아직도 관심이 있다면 그이는 아마도 예술적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간직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예술적 삶은 '함께 현실을 아파하고, 같이 뛰어넘고자 하며, 더불어 치열하게 사랑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저의 리얼리즘입니다.

정연두

p85

정연두 : 예술가는 사회적인 리더도,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관찰자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p89
약 한 달 동안 산속을 걸으면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은 만들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p92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이잖아요. 기무사 자체도 역사를 바꾸고 만들어내는 장소였고요. 이 작품은 결국 권력의 상징적 장소였던 건물 옥상에서 경복궁을 바라면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셈이죠. 다큐멘터리 형식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줍니다. 그와 동시에 뒤의 무데를 떼어서 다시 앞으로 붙이는 방식을 취해서 말이 안되게, 어떻게 보면 바보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불합리해 보이는 방식으로 영향을 촬영해서 만들어낸 작업입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라는 것도 저런 식으로 조물조물 만들어서 보여지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역사는 실제로 있었던 사실과는 무관할 수 있으며 때로는 입장만 존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p93

하지만 그 당시 힘들었던 사회 현실이 반영된 상징적인 장소가 이제는 바뀌어서 누구나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을 때, 여전히 과거에 대한 의식을 지닌 채 현재의 모습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한국 사람들은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사람들이 민중미술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고유의 미술사적인 관점이 있다는 생각으로 바라보기는 해도 현재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p99

양약으로는 병이 더 진전되지 않게 막고, 한약은 스스로 낫게끔 몸을 도와주는 거예요.

p102

저는 시각예술을 하는, 즉 눈에 보이는 것을 예술로서 다루는 사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질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술가의 경우에도 조각을 공부했으니까 조각가, 영상을 주로 하니까 영상작가, 이렇게 부르지만 결국 다루고 있는 매체는 매체일 뿐이죠. 그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내 아이디어를 전달해서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통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게 아닐까요?

p119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 그 일을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반응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 상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한다해도, 그 작품에 대한 반응 속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미술이 사회적 문제와 얼마나 평행선을 그리며 나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볼 때, 한쪽(현대미술)은 꽤 늦은 템포로 움직인다면, 다른 한쪽(사회적 문제)은 순간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겠지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굉장히 혼돈스럽고, 동시에 미토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에 외국 작가로 참가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믿음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느낍니다. 제작자인 저도, 제 작품을 받아들이는 관객도 그 작품이 가진 가치를 즉각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작가가 작품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원전 사태나 세월호 사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작가의 개인적 관점과 맞물린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문맥과 함께 작품의 가치도 차차 파악되겠지요. 작가의 개인적 역량이 사회에 큰 파급효과와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리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p121

그가 전형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선택하여 카탈로그 사진을 찍으려 했을 리는 없다. 그는 피사체인 인물에 흥미와 애착을 느끼지만, 대상에 정서적으로 일체화되지 않으면서 차가운 객관성을 잃지 않고 관찰한다. 그런 애착과 객관성의 미묘한 균형이 '정연두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란 한국인이라는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문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p123정연두라는 인물 안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근대인의 뜨거운 마음과 탈근대(모스트모던)를 살아가는 세대로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깨어 있는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
윤석남
p137처음 그림을 시작한 동기도 나의 삶,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예술이 예술 자체로 승화되는 것도 물론 중요한 과제지만, 그 사회에 대해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제 생각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미적인 감각을 향해가는 길도 희구하고 있지만, 동시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p138
많은 분들에게 보편타당한 아름다움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윤석남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
p154어린아이들이 그렇게 하기는 어렵죠.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고정된 틀을 돌파하고 해체하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p171바리데기는 우리나라 무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신이에요. 우리나라 무당들은 바리데기 전설에서 시작한 거죠. 바리데기는 왕의 일곱째 딸로 태어났어요. 나라를 물려주려면 아들이 필요한데 계속 딸이 태어나니까 왕이 화가 나서 신하를 시켜서 죽이라고 명령하죠. 신하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강에다 띄웁니다. 그 공주를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가 데려가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이 죽을병에 걸린 거예요. 그런데 딸 중에 누구라도 죽음의 강을 건너가서 생명수를 구해오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다른 딸들에게 물어보니까 다 거절해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버림받았던 딸이 나서서 가져오겠다고 했어요. 바리데기는 고생 끝에 강을 건너갔고 무장생과 결혼해서 애까지 낳아야 했어요. 하지만 결국 생명수를 가지고 돌아와 이미 죽은 아버지의 상여가 나가는 길에 생명수를 뿌려 살려내요. 감동한 아버지는 나라 땅의 절반을 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 딸은 땅도 필요 없고, 왕도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 살면서 혼령을 좋은 곳에 보내는 역할을 맡겠다고 합니다. 바로 무당의 기원이 된 것이죠. 그 신화를 모티프로 한 작업입니다. 저는 무당에 관심이 많아요.
이쾌대
이쾌대는 서양에서 유래한 미술이론과 기법을 일제시대에 습득했고, 군상 을 통해 전면적으로 실천한 듯 하다. 일본의 패전에 의해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조선인은 드디어 집단적 주체를 주어로 삼아 말할 가능성을 손에 넣었다. 일제시대에는 그릴 수 없었던 역동감 넘치는 대화면의 공적 회화를 그릴 '주어'를 획득했던 것이다. 아니, 획득해야 했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까? '주어'를 획득했던 것이다. 아니, 획득해야 했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까? '주어'를 손에 넣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펼쳐지지 못했다. 해방공간에서 이쾌대가 일제시대에 축적했던 지식과 기량 모두를 쏟아부어 군상과 씨름했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리고 거기에 일본 전쟁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도 불가사의하지 않다.
일본의 전쟁화에서 침투해 들어온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적 정서를 가리킨다.
신윤복
p2602011년에 폴란드, 스웨덴 합작으로 만들어진 [브뤼헐의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예수가 십자가를 끌고 골고다로 가는 장면은 서양 회화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인데 그것을 컴퓨터 그래픽 영상으로 움직이듯 만든 것이죠. 16세기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가난한 농부들의 풍속이 그림에 나옵니다. 춤추고 축제를 벌이고 돼지를 잡고 수확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나와요 그때까지의 서양회화에서는 예수가 화면의 중심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민중들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p277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신윤복은 외부인이자 경계인이고 세상의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것은 제가 항상 해온 이야기와도 딱 들어맞아요.

p282
바로 이런 인상이다. 나 역시 [미인도]에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남성이 지닌 시선의 폭력에 갇혀 긴장하는 모습도 없고, 거꾸로 거기에 아양 떨며 자신을 상품하려는 생각도 없이, 정녕 '자연체' 인 것이다. 한마디로 [미인도]의 여성은 '기호'가 아니다. 자신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동성인 여성이거나, 혹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기에 가능한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미희
p321미희가 태어난 1960년대 말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뒤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시기에 해당한다. 부산 인근에 위치한 마산에는 수출자유지역이 만들어져 일본 기업이 진출했고 그와 동시에 많은 일본인이 한국 회사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미희의 아버지인 '기무라'씨도 그런 일본인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소녀였던 미희의 어머니에게 아기를 갖게 한 뒤 그대로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당시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추진된 '일본 신식민주의의 재진출'과 베트남 파병이 가져다준 군사 특수에 의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이 시작되었다. "우리 입양인은 고도경제성장의 폐기물'이라는 미희의 말이 단지 비유 이상의 생생함으로 다가온다.
홍성담

p332 
섬이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사방이 가로막혀 마치 죽음과 같은 허무나 절망이 감도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이 바다를 넘어 저쪽 끝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으리라는 희망과 낙관이 뒤얽혀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즉 비관과 낙관, 그런 극과 극의 상태가 매일 교차하는 곳입니다.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 강풍과 높은 파도를 만나면 언제 죽은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죽음은 도처에 널려 있으며 그렇기에 죽음과 생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 속에는 언제나 생과 죽음이 교착하고 있다.'
p336한국사회가 1970년대 개발독재를 통해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농촌 젊은이들 대부분은 공장이 있는 마산, 인천, 부산, 서울 등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제 초등학교 동창생 30명 중에 두 명만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나갔습니다. 엄청난 공해에 찌든 봉제공장과 같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했겠지요. 그들은 재벌, 그리고 재벌과 결탁한 독재정권을 살찌우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5년 정도 일을 하면 쉽게 병을 얻고 맙니다. 대부분 결핵입니다. 요양소에 들어왔다면 오히려 운이 좋은 편입니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손도 제대로 못 쓰고 피를 토하며 죽어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그런 젊은이들, 고향 친구들 같은 그 젊은이들과 결핵환자로서 만났던 겁니다.
p345예술가는 원칙적으로 모든 권력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입니다. 국가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술가는 오히려 허무주의자나 아나키스트에 가깝고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예술가에게는 처음부터 커다란 권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예술가인 것이 하나의 권력입니다. 자기 자신이 바로 하나의 '정부'이자 '대통령'이므로, 그렇게 가장 훌륭하고 가장 멋지게 태어났으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혁명정부가 탄생한다고 해도 그 과오마저 지적하는 정도가 되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닙니다. 예술가의 역할이란 언제나 그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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