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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sultant & Leader/□ Philosophy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 - 쇼펜하우어

by Broaden 2025. 6. 26.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이 서늘하고도 예리한 문장은 '염세주의 철학의 대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당대를 지배했던 헤겔의 낙관주의 이성주의에 홀로 반기를 들고, 인간 삶의 본질이 '고통'이라고 선언했던 철학자. 그의 비관적인 철학이 어떻게 시대를 넘어 니체, 프로이트,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을까요? 오늘, 쇼펜하우어가 고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를 만나봅니다.

부유한 상속자, 고독한 철학자의 길을 걷다

쇼펜하우어는 1788년, 당시 프로이센의 일부였던 단치히의 유복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상인 교육을 받으며 유럽 각지를 여행했지만, 그는 상업보다 학문에 더 깊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는 괴팅겐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플라톤과 칸트 철학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과의 만남은 그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818년, 그는 자신의 모든 철학적 사유를 집대성한 생의 역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합니다.

 

하지만 그의 야심작은 세상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당시 독일 철학계는 헤겔의 절대정신과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하는 낙관주의가 대세였고, 삶의 본질이 맹목적인 의지이며 고통은 필연적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시대의 흐름과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그는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개설하며 맞섰지만, 텅 빈 강의실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학계를 떠나 평생을 고독 속에서 연구하며, 세상에 대한 냉소와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이어갔습니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 - 맹목적인 '의지'와 삶의 고통

쇼펜하우어 철학의 출발점은 칸트에게서 비롯됩니다. 그는 칸트처럼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표상', 즉 나의 주관에 의해 나타난 세계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칸트가 끝내 알 수 없다고 남겨든 '물자체'의 정체를, 쇼펜하우어는 바로 '의지'라고 단언했습니다.

1. 세계의 본질, '살려는 의지'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성적인 의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성도, 목적도 없는, 그저 살고 생존하고 번식하려는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에너지입니다.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지려는 힘부터 식물이 빛을 향해 자라는 힘, 동물의 생존 본능,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까지,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바로 이 거대한 '살려는 의지'가 꿈틀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고통은 삶의 본질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바로 맹목적인 '의지'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의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깁니다. 무언가를 가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속삭이지만, 막상 그 욕망이 충족되면 그 만족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내 또 다른 욕망이 고개를 들거나 지독한 '권태'가 찾아옵니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한 '고통'과 욕망이 잠시 충족된 상태인 '권태' 사이를 영원히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진단입니다.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 - 예술과 동정

그렇다면 이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쇼펜하우어는 절망 속에서도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합니다.

1. 에술의 통한 미적 관조

우리가 아름다운 에술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현실의 욕망과 걱정, '나'라는 개별적인 존재를 완전히 잊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미적 관조'의 상태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맹목적인 의지의 지배에서 벗어나 순수한 인식의 주체로서 평온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음악은 의지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에 가장 수준 높은 예술이라고 극찬했습니다.

2. 금욕과 동정을 통한 의지의 부정

더 근본적인 해법은 '의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해탈과 유사한 길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는 '금욕'을 통해 의지의 힘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동정'을 윤리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나와 타인이 본질적으로 같은 '의지'의 표현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동정심을 통해 이기심의 경계를 허물고 타인과 연대함으로써, 우리는 의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철학자, 그 지독한 위로

생전에는 철저히 외면받았던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소품과 단편집』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비로소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의 사상은 헤겔의 거대하고 낙관적인 철학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철학계를 넘어 니체, 바그너, 톨스토이,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등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에게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인간의 이성 너머에 있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통찰한 부분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선구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분명 어둡고 비관적입니다. 하지만 그는 삶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긍정적으로 표장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똑바로 마주 보라고 말합니다. 그 고통의 근원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로부터 벗어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쇼펜하우어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는, 당신이 느끼는 그 고통이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철학은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는 막연한 위로 대신, "원래 그런 거야"라는 차가운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는 지독하지만 현실적인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근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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