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이번에는 책을 읽고 나서 남기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책상 앞에 앉아 이런 저런 문장을 끄적이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음을 알아간다. 


어쩌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번 다 읽고 나서 작품의 해설과 같은 책을 다룬 팟캐스트를 두시간 가량 들었는데, '이런~! 완전히 잘 못 읽고 있었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중요한 부분을 놓쳐버리고 말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읽고 난 후에 계속 걸리는 게 많았다. 아직까지 소설을 깊이있게 읽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늦지 않게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된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 이렇게 읽고 난 후에 나를 더 고민에 빠뜨려버렸고, 글을 남기는 것 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소설은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소록도의 병원에 새롭게 부임한 병원장인 현역 대령 조백헌과 섬 사람들과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작품 속에도 기자가 등장하듯이 실제 어떤 한 기자가 기사로 쓴 것을 이청준 작가가 보고 나서 이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 속 주인공인 조백헌 대령의 실제 모델인 '조창원 원장' 을 만나 본격적으로 글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새로 부임한 조백헌 원장, 한센인을 대표하는 황 장로, 조백헌 원장과 대척점에 서 있는 보건과장 상욱이 있다. 황 장로의 어린 시절, 한센병을 걸리게 되는 이야기 부분은 어떻게 보면 작품 속에서 가장 자극적인 부분이고 극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이것도 실제 황 장로의 실제모델의 실화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고 거기에 허구를 덧씌운다고 하지만 어쩌면 실제 현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극적인 소설보다 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나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소록도의 한센병 병원의 병원장으로 온 현역 대령인 조백헌 원장은 소록도를 한센인들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섬사람들은 이미 수십년 동안 경험해 온 비슷한 병원장이라 생각하고 조원장과의 의지에 맞추어 행동하지는 않는다. 조백헌 원장은 발가락도 몇 개씩 떨어져나간 한센병 환자들로 구성된 축구팀을 만들고 도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조원장은 간척사업을 시작하고 후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쓸 구상을 합니다. 하지만 간척사업을 하면서 소록도 주민들과의 갈등을 겪고, 간척되어져가는 땅을 원하는 섬 외부의 세력에 의해서 결국 병원장에서 해임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후에 다시 일반인의 신분으로 소록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한센병 환자와 일반인들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윤혜원, 서미연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작품을 마치는데...


작품 속에서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는 가장 큰 점은 조백헌 원장이 소록도를 한센병 환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와 보건과장 이상욱이 생각하는 결국 그것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런 일을 추진하는 조백헌 원장을 위한 것일 뿐, 소록도의 환자들에게 천국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조백헌 원장은 황 장로와 이상욱을 통해서 자신은 정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진정성있게 섬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후에 원장의 신분이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섬으로 들어와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이게 정말 그들 간의 갈등의 화해, 한센인과 일반인들과의 경계의 허물어짐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혼 장면으로 모든 것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해설을 읽고 나서, 그리고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다룬 부분을 들으면서 이게 그런 의미가 아님을 알았다.

나는 너무 글자 그대로 일차원적으로 바라보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조백헌 원장의 수많은 노력은 어쩌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자기는 아니라 하고 다른 사람도 아닐 거라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을 한 것인지 모른다. 작품 속에서 동상을 세운다는 개념이 나오는데 어쩌면 그도 모르게 스스로 동상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은 축사를 연습하는 조백헌 원장의 이야기를 결혼을 취재하러 온 기자와 이상욱 보건과장이 엿듣는 장면이다. 조백헌이 진심으로 일반인과 한센인들의 화해라 생각하는 결혼식 축사를 준비하는데 자신은 이미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도 축사 연습을 할 뿐이었다. 결국은 스스로에게 취해있지 않았나 모르겠다. 작품은 축사 준비로 끝난다. 과연 결혼식의 주인공은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게 궁금할 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의 제목의 의미심장함을 느낀다. 이미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제목 속에는 '우리들의 천국'이 되지 못함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백헌 원장이 축사 연습을 엿듣는 장면이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p494) 긴장하고 있던 상욱의 얼굴 위에 비로소 희미한 미소가 한 가닥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정태는 아직 그 상욱의 웃음의 뜻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그는 조 원장의 그 너무도 직선적이고 순정적인 생각에 다소의 감동을 받은 듯 싶기도 했고, 어찌보면 오히려 씁쓸한 비웃음을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처음 읽었을 때는 순정적인 생각에 감동만을 받은 채 책을 덮었다. 하지만 나중에 뒤돌아봐서 생각하니 상욱의 쓸쓸한 비웃음이 유난히 선명나게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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