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월 책정리

 

#1.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 - 최병삼,김창욱,조원영/삼성경제연구소
-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주목을 받아온 플랫폼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IT업체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산업을 바라보면서 플랫폼에 대해서 설명하고 플랫품 구축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플랫폼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논리적인 구조를 잘 갖추고 있어서 논리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라든가 플랫폼에 대한 전략에 대해 접근법을 보기에는 좋은 것 같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 2.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마로니에북스

- 박경리의 <토지>를 읽다가 6권에서 정체되고 있다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았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제목인데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김약국과 그의 딸들이 겪게 되는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가 짙게 베어 있다. 읽고 나면 무언가 묵직한 기분이 든다. 읽고 나서 별도로 정리해두지 않고 서평을 쓰지 않은 게 아쉬운 책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의미있는 책이다.

 

# 3. 나의 조선미술 순례 - 서경식/반비

- 여기서 '조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재일동포인 서경식 작가가 큰 그림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가 직접 만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미술에 대해서 더듬어 가는 것이다. 다른 미술 관련 책들과 구별되는 점이라면 작품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작가를 중심으로 접근해가는 방식이다. 그의 작가 본인도 그렇고 디아스포라에 관련된 글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가 예전에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도 나중에 읽어볼 생각이다.

 

# 4.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 다케우치 가즈마사/비즈니스북스

- 전기자동차 테슬라, 우주산업 스페이스엑스, 태양광산업 솔라리스를 이끌고 있는 엘론 머스크에 관한 책이다. 사내외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유난히 많이 언급된 인물이다. '인간을 지구 밖으로 보낸다'라는 비전으로 실제 일을 만들어내고 실천해내는 모습이 대단할 뿐이다. 개인적인 목표, 비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책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히 목표를 찾아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 5. 식물의 인문학 - 박중환/한길사

- 식물, 나무, 환경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서 관련 분야의 책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처음에 들어가는 말부터 인상적이었다. "식물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그 외에도 가정 내에서 환기의 필요성과 식물을 기름으로써 얻는 효과등을 유심히 보고 조그마한 화분도 두개 사서 집에 두었다. 올해는 화분의 수를 많이 늘리고 관리법에 대해서 공부해볼 생각이다. 이 책은 식물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분명 좋은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인데, 몇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 6.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민음사

- 읽으면서 나 역시 수없이 상상했다. 망망대해의 조그만 배위에 낚시대를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실제 그런 사진이라도 있으면 하나 구해서 책상 앞에 걸어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노인이 몸에 낚시 바늘을 두르는 모습, 손에 쥐가 나서 그 손을 보고 대화하는 모습들이 떠오르고, 자꾸만 그 노인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 그 설명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은 올해 안에 한 번 필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노트를 준비했다. 남다른 감동을 받은 건 아닌데 한 번 써보고 싶었던 충동이 일어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르겠다.

 

# 7.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 최효찬/예담

# 8.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 - 최효찬/바다출판사

- 독서와 자녀교육에 대한 책이다. 무언가 특별히 남다른 이야기가 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보통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중간은 간다. 지금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보게 되고, 자녀 교육에 아버지로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준 책이었다.

 

# 9. 삶의 한 가운데 - 루이저 린저/민음사

- 이 책은 지루하지는 않은 데 읽는 데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작중 몇 년 만에 만난 언니와 동생이 동생의 우편물을 보면서 동생의 지난 삶에 대해서 회고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두 자매는 서로 이해하기도 하고 스스로 깊은 갈등과 고민에 빠지는 모습이 드러난다. 동시에 동생과 한 남자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볼 만하다. 시대적 배경은 나치시대이기에 당시의 시대상도 엿보인다. 읽고 정리하지 않고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작중 인물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다.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구는 하나도 없는 방안에서 트렁크가 놓여져있고 그곳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두 자매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고 그 옆에 위스키 병이 계속 생각났다.

 

# 10.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헨리 뢰디거, 마크 맥대니얼, 피터 브라운/와이즈베리

- 제목 그대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각종 실험과 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효과적인 공부법을 소개한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중해서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자주 기억속에서 인출을 자주 함으로써 배운 것을 떠올리라는 것이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시험이다. 이러한 인출작용을 통해서 뇌를 자극해서 부족한 부분을 알고 뇌 속의 뉴런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반복적으로 읽는 것은 우리가 텍스트에 익숙해져서 이해하지 못함에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외에도 흥미로운 기억법도 소개되었다. 어떤 것을 외울때 자신이 잘가는 카페를 생각하고 카페에 외울 것들을 대입하는 것들 같은거... 무언가 획기적인 공부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롭게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 1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문예출판사

- 이 책의 첫번째 매력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작중 주인공인 도리언 대신 그의 초상화가 나이를 먹어가는 이야기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인간의 도덕과 쾌락 뿐만 아니라 본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도리언이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추하게 변해가는 초상화를 통해서 과연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간 소설이지만 19세기 영국의 귀족문화를 엿볼 수 있었고,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에 대해서도 경험하게 만든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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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그날 처음으로 내 얼굴과 마주한다. 반쯤 감긴 눈에 눈곱이 끼어 있고, 머리카락은 나뭇잎들이 햇빛을 찾아 뻗어가듯이 사방팔방으로 솟구쳐 있다. 급하게 씻고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로션을 바른 다음 거울을 다시 바라본다. 나름 하루의 시작이니 얼굴에 신경을 써야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에 마주했던 거울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묻는다. "넌 누구냐?" 하루 종일 컴퓨터를 바라 보아 오른쪽 눈의 가장자리가 붉게 충혈되어 있고, 푸석푸석해진 피부에 각질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침에 바른 로션의 효과는 과연 얼마나 갈까?

하루 두번 씩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이게 내 얼굴인가?  많이 변했다. 예전 사진들과 동일인물인가 싶기도 하고, 안경에 눌린 콧대의 번질거림이 어색하기도 하다. 라색 수술을 할까 하다가도 워렌 버핏, 빌게이츠가 안경을 쓰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한다. 거울을 보며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서 찾아낸다. 그저 피부 나이라도 천천히 먹기를 바란다. 이왕 늙어가는 거 보기 좋고 품격있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신체적 젊음을 잃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사람을 지구 밖으로 보내고 유전자지도를 완성해 나가도 아직까지는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곳이 있긴 하다. 바로 소설 속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기도 한 번으로 다른 무엇이 당신 대신 늙어간다면 기도를 하겠는가?
기도를 할지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소설 속에도 공짜는 없으니까.

p47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도리언 그레이는 여전히 자신의 초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렇게 중얼거렸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점점 늙어가며 끔찍하고 흉측해지겠지. 하지만 이 그림은 항상 젊음을 간직하고 있을 테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6월, 바로 오늘의 모습 그대로이겠지. 정반대라면 좋으련만! 내가 항상 젊음을 간직하고,  이 그림이 나 대신 점점 늙어간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바칠 텐데!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바치지 못할 게 없지! 내 영혼이라도 바칠거야!"

오늘 소개할 책인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한 대목입니다.
훌륭한 화가인 배질 홀워드는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알게 된 후 그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얻습니다. 도리언이 배질의 모델이 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온 날에 그는 쾌락주의적인 인생관을 깊게 가지고 있는 배질의 친구인 헨리 워튼 경을 만나고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깊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이 만난 날 배질은 도리언의 훌륭한 초상화를 완성한다. 초상화를 본 세 사람은 작품에 감동을 하고 도리언은 작품 속 자신에 감탄하고 변하지 않는 젊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합니다. 베질은 초상화를 도리언에게 건네 주고 도리언은 그것을 자신의 집에 걸어 둡니다.

어느 날, 도리언은 싸구려 연극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시빌 베인을 만나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예술적인 연기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하지요. 하지만 배질과 헨리에게 그녀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극장을 찾은 날, 그녀는 형편없는 연기를 선보이고 도리언은 시빌 베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헤어지자 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도리언을 만나고 진정한 사랑과 삶을 알았다고, 극중 인물들의 연기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도리언이 사랑하게 된 예술적인 연기가 도리언을 사랑하게 되면서 변하게 된 것이죠. 그녀는 도리언에게 자신이 잘못했다고 간청하지만 도리언은 그녀를 내치고 떠나버립니다.

다음 날 헨리는 자신이 너무 했나 싶어 그녀에게 잘못과 사랑을 구하는 편지를 씁니다. 하지만 헨리가 놀랄 만한 소식을 가지고 옵니다.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헨리는 그 소식을 이야기하고 별 일 아니라고 그녀는 도리언으로 인해 진정한 삶을 살았다며, 그 삶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도리언은 그를 따라 파티를 갑니다. 그의 삶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파티에서 돌아온 도리언은 초상화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림의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됩니다.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자신이 아닌 그림의 외모를 변하게 만든다는 것을. 도리언은 그 후, 점점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듯이 유미주의에 빠져들고, 작중 헨리의 영향으로 쾌락으로 짙게 물듭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아파하죠. 그의 감춰진 초상화는 점점 더 흉측하게 변해만 갑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환상 소실입니다. 소재 자체도 그리스신화나 판타지 소설에 등장할 만 합니다. 소재는 이렇게 허구적이지만, 내용 속에서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19세기 초반 영국의 사회상을 보여주고,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적인 요소들이 드러납니다. 도리언, 배질, 헨리를 통해서 오스카 와일드 자신을 표현해냅니다. 그 속에서 배질과 헨리가 도덕과 쾌락으로 갈등하는 모습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합니다.

"나이 마흔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 그들의 삶이 드러난다는 말이겠죠. 사람들의 얼굴은 그들의 삶의 조각조각들이 켜켜이 쌓여 올려지면서 나타납니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10년 후의 제 모습은 어떨까 상상해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질문을 해봅니다.
"기도 한 번으로 내가 늙어가는 대신 다른 무언가가 대신 늙어간다면 그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제가 사는 대로 얼굴에 반영되면서 늙어가고 싶습니다. 이해인 수녀, 법륜 스님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샛길로 빠져 봅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거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태어나자 마자 고통받는 어린 아이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타인의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가족을 떠나는 이들의 삶은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운명으로 미루어두어야 할까?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나 혹은 우리 가족이 아니니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는 우연으로 닥칠 수 있습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내일을 잘 모릅니다. 그렇다고 허무주의로 빠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면서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게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용서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리언처럼 추하게 변한 자신의 초상화를 숨기려 애쓰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 거울 속의 제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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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공상과학 소설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상을 철저하게 풍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약 80여 전에 쓰인 작품이라기 하기엔 너무나 현실성이 있어보이는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과 지금의 현실에도 반영시킬 수 있는 공상과학소설이자 풍자소설이라는 점이다.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던 소설과 영화가 있다. 소설은 얼마 전에 읽은 조지 오웰의 <1984>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이다. 두 소설과 영화는 맥락을 같이 한다. 하나의 체제, 사회가 있고, 이것은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철저한 규칙과 통제하에 운영되어 진다. 처음에 그런 사회와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힘이 들고 많은 갈등이 있었겠지만 어느덧 정착이 되고 세대가 거듭될 수록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집에서 채집용 큰 통에 달팽이를 키운다. 큰 달팽이들은 다른 곳에 있다가 왔으니 변화에 대해 감지를 했을 것이다. 얼마 후 달팽이들의 알에서 새끼 달팽이가 태어났다. 아마도 그 새끼 달팽이에게는 그 좁은 공간이 하나의 세계로 인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나타는 어떤 물체(사람의 손)은 하나의 신이 되어 먹이를 주고 물을 뿌려주는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누군가에 의해 사람들의 삶은 통제되어 진다. 어쩌면 태어날때부터...

<멋진 신세계>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계급이 정해집니다. 마치 음식을 만들 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듯이 각 계급에 따라 투여되는 것이 다르고 이에 따라 몸집의 크기에서 부터 지적역량에 이르기까지 다르게 태어납니다. 엡실론 계급, 감마 계급, 델타 계급, 알파 계급이 이렇게 다른 계급들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철저하게 조건반사적 교육이 진행되어 집니다. 뜨거운 곳에서 일하게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는 뜨거움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이는 나치 시대의 우생학과 어린 아이에게 세뇌교육을 시키는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다.


<1984>에서는 곳곳에 붙어 있는 텔레스크린과 곳곳에 숨겨지 있는 사상경찰관에 의해 사람들이 철저하게 감시 당한다. <설국열차>에서도 열차의 뒷칸으로 갈수록 계급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바퀴벌레로 만든 묵을 식량으로 삼고 있다.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철저하게 나뉘어진 모습, 그들만의 규칙과 통제로  나뉘어진 계급대로 영원히 그 사회가 돌아가기를 바라는 강자, 지배자들의 논리가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베어난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이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를 통제하고 개인의 주체성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얼마 전에 읽은 <커피는 원래 쓰다>에서 아랍에서 처음 유행한 커피하우스는 술탄 왕조에 의해 금지되었었다고 한다. 이유는 사람들이 그곳에 보여서 사회, 정치이야기를 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정치개혁에 대한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커피가 사람들을 생각하게 각성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강자와 지배자들에게 가장 큰 적은 약자와 피지배자들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그것을 바꾸어보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처음 들어온 계기 중에 하나가 전두환 시절에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정치계에서 큰 이슈를 덮기 위해서 연예인 관련 대형 스캔들을 터뜨린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려고 할 때, 자극적이고 생각하지 않고 관심을 확 끌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대로 그곳에 매몰되어 버리는 법이다. TV같은 경우도 어쩔 때는 멍하니 보고 있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아무런 개인의 노력없이 시선을 고정해서 생각을 없게 만들기에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광고는 나도 모르게 세뇌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지만, 절대로 획일성에 빠져버려서는 안된다. 한 예로 명품 가방을 만드는 나라가 아닌 소비하는 나라인 우리나라는 수십, 수백만원에 이르는 가방이 국민 가방이라는 말이 돌기도 한다. 예전에 배낭 여행할 때 프랑스의 루이비통 매장을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공사를 한다는 안내가 한국말로 씌어져있고 직원 중 상당 수가 한국인이거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명품 가방 소비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이들이 걸어 놓은 덫에 생각하지도 않고 빠지지를 않기를 바란다. 여러 이유를 고려해서 선택은 할 수 있지만, 항상 '생각'이라는 필터는 항상 한 번쯤은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멋진 신세계>로 돌아가 본다. 작품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시험관에서 태어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이들의 세계로 온 야만인이 '멋진 신세계'의 총통이 나눈 대화가 등장한다.


p305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추슬렀다.

"마음대로 하게"하고 그가 말했다.


작중 야만인은 불편함을 원한다. 유토피아를 가장하는 이들이 사는 디스토피아에서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경우에는 '소마'라는 알 약을 먹는다. 어렸을 때 드래곤볼 만화를 보면 선두콩 한 알만 먹어도 일주일이 배고프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정말 이런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음식이라는 것은 힘든 노동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해줄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사랑과 정성을 담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약속을 잡을 때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한다. 여기서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저 허기를 달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유대를 확인해고 함께 살아가는 힘을 서로에게 불어넣어주는 것들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전원주택을 원하면서 불편함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전원주택의 경우 잠깐 밖에 나와 신발을 신고 걸을 수도 있는 법이고, 겨울에 따뜻하게 하고 반팔을 입는 것이 아니라 추우면 내복을 입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원 주택에 살면서 아파트의 혜택도 원한다. 


우리는 어쩌면 사회와 체제가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런 노력없이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매체가 아닌 자신이 직접 노력을 기울이는 창작활동과 독서활동 거기에 이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듯 하다. 어떤 갈등을 겪게 될 경우에는 불편하더라도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잘못됐다고 판단될때까지는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두 아들을 키운다. '뭐 하지 마라. 뭐 하지 마라'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한 번 말하고 나서 아이들이 정말 항상 다 고치고 내 말을 따른 다면 어쩌면 그게 더 나에게 걱정일지 모른다. 내 아이들이 후에 커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살기를 원하듯이 나 역시 이 사회에 매몰되어 있지 않으면서 나만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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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듯 합니다. 최근에 이런 저런 사정으로 책을 읽을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는데, 다시 읽으려 하니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잘 보지 않는 TV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고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내 취향의 책이 아닌지, 제 상태가 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지 몰라도 몇 권의 책을 앞 부분만 잠깐 읽고 미루어두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부서에서 하는 봉사활동으로 수원 영통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도서관의 지하 보존서고에 있는 책을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도서관의 지하 보존서고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였습니다. 아마 이런 기회가 아니면 들어가보지 못했을 장소지요. 도서관 직원과 함께 보존서고에 들어 갔습니다. 문이 열리면서 가장 먼저 저를 자극한 것은 '정말 진한 책 냄새' 였습니다. 아마도 당분간 잊지 못할 기억을 주는 냄새일 거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책들의 종이냄새와 살짝 곰팡이 냄새도 섞인 듯 하고 먼지 냄새도 한 스푼 정도 포함되지 않았나 하는 냄새였습니다.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진한 책 냄새로 감동받았습니다. 아마 한 동안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5시간 정도 책 정리를 하고 나니, 이런 내 서재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많지 않은 책들을 정리하고 새로 산 책들에 책 도장도 하나씩 꾸~욱 눌러주었습니다. 이제 무언가 정리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잊혀진 관성의 법칙을 되살리는 것이 남았네요. 어제는 퇴근 후, 아내와 두 아들과 치킨을 시켜서 맥주와 함께 먹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1마리로 가능했지만, 이제는 한마리 반을 시켜서 먹습니다. 조만간 두 마리가 되겠네요. 술도 좀 먹고 저녁에는 집중도 잘 안되어 아이들을 재우면서 식구들이 모두 저녁 9시라는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습니다. 알람을 새벽 3시에 맞춰두었습니다. 저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새벽 3시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기 전까지인 6시 30분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그 동안 잃어버린 관성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오랜만에 긴 시간을 가지면서 읽는 시간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잠깐 졸릴 때는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방과 거실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읽었습니다. 역시 저에게 힐링은 이런 것인 듯 합니다.

 



읽은 책은 조지 오웰의 <1984> 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지만, 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조지 오웰의 책은 이전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동물농장>은 읽었는데 이 책은 예전에 사두고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있었습니다.. 내용은 워낙 유명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습니다. <1984>의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빅브라더(Big Brother) 일 겁니다. 문예출판사의 책을 읽었는데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빅브라더가 아니고 대형(大兄)이라고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민음사의 번역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네요. 다음에는 민음사 책을 한 번 접해봐야 겠습니다. 


1949년 작이기에 아직은 고전의 반열에 들기에 이르지만, 전후 시대에 쓰여진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분명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두고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많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윈스턴이 하는 일은 과거의 모든 기록을 현재를 기준으로 모두 바꾸는 작업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중요치 않습니다. 불과 얼마되지 않은 일들도 당이 추진하는 것과 다르다면 철저히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사람들도 자연스레 자신의 기억은 외면해버리고 당이 바꾸어 놓은 기록만을 볼 뿐입니다.


작중에 과거(역사)에 대한 당의 슬로건이 등장합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당은 현재를 지배하고 있으면서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철저하게 왜곡하고 그렇게 현재와 미래를 지배합니다. 과거를 통한 반성이라던가 뒤돌아보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당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이 바라 보는 현재 뿐입니다.


이중사고라는 개념도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중사고는 두 개의 상반된 내용을 모두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입니다. 2 더하기 2는 분명 4입니다. 하지만 당에서는 2더하기 2가 5라고 합니다. 빅브라더가 대표되는 당은 절대적입니다. 그러기에 2 더하기 2는 5가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답은 4입니다. 윈스턴은 4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5도 받아들입니다.  과연 제 자신은 4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중국의 진나라때 환관 조고가 사슴을 황제에게 받치며 "말입니다." 라고 하자 황제 호해는 "어찌 사슴을 말이라 하는가?"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이미 조고의 권력에 겁을 먹은 신하들은 모두 나서서 말이라고 했습니다. 황제 호해는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면서 정사에서 물러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중사고를 어쩌면 이렇게 권력의 힘이 두려워 스스로 하고 있는게 아닌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런 적이 없는지 생각해봅니다. 분명 제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권위에 밀려서 그저 순응하지는 않았을까, 빅브라더에 의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제 생각과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짜 놓은 판에 그들이 정해놓은 룰을 그저 아무생각 없이 따라야할까요?
작품의 마지막은 쓸쓸하고 아쉽습니다. 국가 또는 이데올로기라는 큰 무엇인가에 대항하는 개인의 마지막은 항상 이래야만 할까요? 너무 현실적이라 씁쓸하게 책을 덮습니다. 현실의 빅브라더가 누구일까 궁금해집니다. 윈스턴이 제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p331 마지막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Big Brother)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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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책이다. 나 역시 너무나도 예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이지만 정작 지금까지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으로 숨어 지내면서 작성한 안네 프랑크의 일기라는 것 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안네가 그 당시 생존에서 전쟁 후의 평화로운 삶을 살았는지 그러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었다. 조금 너무하긴 한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 페이지 "<안네의 일기> 그 후" 를 읽으면서 멍한 기분과 함께 분노가 일어났다. 책의 내용을 모르고 있었기에 이러한 소녀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책을 읽어오면서 계속 생각했기 때문이다.

15살이라는 소녀가 쓴 하루 하루의 일기이지만, 책의 뒤로 갈수록 그 생각하는 주제와 깊이는 너무나 철학적이고 자신과의 진지한 대화를 할 줄 아는 그런 진지한 내용들이 있었다. 꿈이 많은 아이였고 항상 긍정적인 아이였다. 2년 동안의 그 갇힌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배움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세상을 살다 보면 신을 의심하게 되고, 운명이란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자주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경우도 그 중 하나이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채 타인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삶,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테러 등에 대해서 가엾은 삶을 잃어버려야 하는 이들, 항상 생각해보는 일이지만 아마 답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한 소녀의 하루 하루의 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어찌보면 하루하루의 일과일 뿐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내고,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재치있게 묘사하고, 타인의 감정과 모습을 묘사하면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승화되었다. 또한 이는 개인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 줌을 의미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항상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말뿐이다. 나 역시 글을 쓰는 방법이나 기술은 잘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방법과 기술은 나 자신과의 진지한 대화와 함께 어쩌면 부끄러울 정도로 나에 대해서 드러냄으로써 나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한 단계 글쓰는 방식이 달라질것이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와의 끊임없는 진지한 대화와 내 삶에 대한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한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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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에 의하면,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합리의 욕망이 있는 까닭에 세계의 뜻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세계는 인간이 알아볼 만한 아무런 뜻도 없다. 인간이 가진 '합리의 욕망'과 세계의 '몰합리'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것, 이러한 이율배반으로부터 생기는 모순, 그것이 바로 카뮈의 부조리이며, 인간이 피하지 못할 숙명,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누구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졸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습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상생활의 쳇바퀴를 돌며, 인생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문제삼지 않는다. 그처럼 졸고 있으면 존재자의 의식일 수 없으므로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부조리를 명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의 인식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부조리와 직면하여 모순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 '반항'이다.

책의 마지막 표지를 보고, 작품설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카뮈가 29세 때, 지금 나보다 젊은 시절에 발표한 <이방인> 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삶의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라 하고 실존주의 문학이라 평한다. 그런데 부조리라는 말도 실존주의라는 의미도 나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실존주의 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인 것일까?
존재의 이러한 불가사의를 끝까지 질문하는 철학이 실존주의 철학이다.
실존주의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지만 그 공통점은
인간의 존재, 그것도 단독적인 개체인 나 자신의 존재에 계속 관심을 갖는 방법적 태도이다.

이방인은 한 번 읽어보려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이방인이라기 보다는 카뮈를 한 번 접해보고 싶어서였다.
이방인을 읽는 내내, 나는 그냥 무표정인 듯 했다. 왠지 주인공 뫼르소는 작가 카뮈를 닮고 항상 무표정으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고,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아랍인을 죽이고, 재판을 받고, 그리고 사형대에도 그 무표정으로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있는 그대로 <이방인> 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살인을 한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사건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다루어진 셈이었다.
나를 참여시키지도 않고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문득 나는 귀를 기울였다. "제가 사람을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하고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그는 그런 투로 이야기를 하며, 나에 관해서 말할 때마다 '나는'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우 놀랐다. 나는 간수에게로 몸을 굽혀 그 이유를 물었다 ......... 나로서는 그것 또한 나를 사건으로부터 제쳐놓고, 나를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고, 이를테면 그가 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방인> 의 내용의 진행과정을 보면 어머니의 죽음에서 부터 뫼르소 자신의 사형 구형이 있기까지 철저하게 뫼르소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에 자고 싶어하는 뫼르소, 장례식 다음날 여자와 관계를 갖고, 재판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들 속에서 철저히 뫼르소 자신에 대한 생각을 나타낸다.

이렇게 철저히 자신의 존재만을 집중하는 것이 실존주의인가? 그렇다고 이러한 것이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확히 카뮈는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던 것일까? 아직도 내 머리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누가 설명해줄 수 있는 분 얘기해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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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의 청년 싯다르타는 부귀한 가정을 버리고 오직 진리를 찾아 고행의 길을 떠나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이 책의 겉표지에 써 있는 글이다.

나 역시 싯다르타의 고행의 길을 마치 같이 걸어간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어내려가며 나 역시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 과연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나, 자아를 위한 삶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나에게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 자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아직까지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듯 하다. 아마 1년 후, 2년 후, 그리고 세월이 지나갈 때 마다 다시 읽어도 새롭게 다가올 것 같다. 싯다르타가 사문의 길과 속세의 길을 모두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었듯이 나 역시 세월의 경험이 쌓아지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아마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매년 한 번씩 읽어 내려가며 나를 찾아보자.라는 말을 홀로 해본다.

책을 읽고 메모장에 몇 자 적어 논 것이 있다. 그냥 단어의 나열이지만 더이상 단순한 단어가 아니었다.

자아, 경청, 만물, 관심, 사랑
본래 모든 것에는 해결책과 답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냥 그것을 찾을 뿐이다. 그리고 비판적 시각을 가져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과 피에타의 성모 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찾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p55
 '대체 가르침에서, 스승이게서, 네가 배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냐? 너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준 그들이 지금까지 네게 가르쳐줄 수 없었던 것이란 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그는 찾아내었다.
 '그것은 자아(自我)였다. 그 의미와 본질을 나는 알고자 했다. 그곳에서 내가 빠져나오려 했던 것, 극복하고자 했던 것, 그것은 자아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극복할 수는 없었고 다만 기만할 수 있었을 뿐이다. 다만 그것에서 도망쳐서 그 앞에서 숨을 수 있었을 뿐이다. 실로 세상에서 이 자아만큼 내가 생각에 몰두하게 만든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살고 있다는 이 수수께끼, 나는 싯다르타라는 수수께끼처럼 나의 생각을 사로잡는 물건은 없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나 싯다르타에 대하여서만큼 나 자신이 거의 알지 못한 물건도 없다!'

p186
 '그의 행위와 삶이 그의 말씀보다 가치있으며, 그의 손의 움직임이 그의 의견보다 가치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나는 말씀이나 사상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행위 속에서, 삶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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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중성을 파헤친 명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p115
나는 어쩐지 이 두 개의 인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인격은 기억력만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을 뿐 다른 능력은 모두 정반대였다. (선과 악이 혼재된 인격인) 지킬은 감수성이 예민한 부분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하이드가 하는 행동을 계획하고 거기서 오는 기쁨을 함께 나누는 탐욕스러운 성향도 있었다.

그러나 하이드는 지킬에게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산적들이 몸을 숨기는 동굴처럼, 쫓기는 자신을 숨기는 데 도움이 되는 존재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지킬이 하이드에게 여느 아버지 이상으로 관심을 가졌다면 하이드는 여느 아들보다 더욱 심한 무관심으로 지킬을 대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책을 이제야 읽었다. 지금까지 책의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서른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 자신에게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그 이야기는 길지 않지만 그 속에 내용들이 응집되어 있고 한 편의 추리 소설처럼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러한 재미속에서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사람들이 표현하지 않는 것들을 표현해 내고 있다.

아마 이제껏 많은 사람들은 지킬 박사처럼 선과 체면 등을 이유로 자신들에게 숨어있는 하이드에 대해서는 표현해내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읽어내려 가며 예전 뉴스 기사들이 생각이 났다.

어떤 한 직장인은 고학력,가족, 그리고 자녀들이 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평판도 좋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연쇄 성폭행을 저지른 범인이었다.

항상 점잖고 조용한 학식있는 교수, 의사가 지킬박사가 하이드로 변할 때 마시는 물약처럼 술을 마시면 평소와 다르게 상스러운 욕설을 하거나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지금 글을 쓰는 나에게도 있을 것이며, 모든 사람들의 욕망 속에서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예전부터 화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런 것은 참고 참았던 화 때문에 발생하는 병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중성을 어떻게 다스리냐가 바로 자신의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도덕과 양심을 통해서 하이드의 욕망을 없애고, 때로는 여행, 운동 등 다른 방법으로 하이드의 욕망을 대체하는 것이 그러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과연 나는 내 안의 하이드를 잘 다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번 쯤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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