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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지난주 코엑스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창비의 [창작과 비평]을 정기구독하게 되었다. 정기구독을 하면 창작과 비평 뿐 아니라 창비에서 출판된 책을 한 권 준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분좋은 것은 구독 기간 중에 창비에서 간행된 책이 무조건 50% 라는 사실이다. 그 때, 한 권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날 때면 나는 항상 감사한다. 지금까지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을 보고 읽어도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의 차이는 바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한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위의 그림처럼 겉표지는 다들 웃는 모습의 일러스트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이 그림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저렇게 다들 웃고 있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표지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들은 책 내용 속에 등장하는 소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반대인 다수에 의해서 침혜되는 소수의 권리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 책의 이야기는 진행되어 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의 내용을 기반으로 내용이 전개되다 보니 조금 더 흥미롭게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고 읽는 내내 이상하게 내 자신이 부끄럽고 그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 역시 인권침해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침해되는 소수의 사례는 어떠한 경우가 있는가? 나 역시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대상들을 잠깐 소개하려 한다.

[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 표지 처럼 밝지만은 않은 주제들이다. 각각의 소주제들 안에서도 여러가지 생각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 그냥 읽어내려가면서 무언가 나를 건드린 내용에 대해 잠깐 정리해보려 한다.

사람잡는 우생학 히틀러는 영화[300]의 스파르타인들이 꿈꾸었던 '우월하고 건강한 인종의 지배'를 과학적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건강한 아이들에게 제3제국의 미래가 있다고 믿었던 히틀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아이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만이 아리아인의 승리를 위한 필수적 요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찌 의사들에게 치료 불가능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모두 안락사시키도록 지시했고, 1939년부터 이들에 대한 등록이 시작되었다. 1940년에서 1941년까지 약 5천~ 2만 5천명의 독일인 장애아들이 살해되었고, 최소한 27만 5천명의 성인이 같은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말이 안락사지 대부분은 가스에 의해 살해되었고, 더 효율적인 살해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박스 안에 집어넣고 폭탄을 터뜨리는 참혹한 학살이 자행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27만 5천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도 점령지구 내에서 훨씬 잔혹하게 살해된 비독일인 장애인들을 제외한 순수 독일인만의 수치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적장애인만 살해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차 대전에 종군하여 부상을 입은 장애인들도 희생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전쟁 수행에 비생산적인 사람은 모두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장애에 대한 각종 편견에 맞서 켐프가 쟁취하려고 했던 것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정상이라는 인식이었습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은 언제나 장애인이 정상인에 비해 뭔가 '비정상적'이며 '불완전'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상적이고 완전한 상태를 먼저 정의한 후,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모두 비정상으로 정의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장애인을 드는 것이지요. 에범 켐프를 비롯한 장애인 운동가들은 장애인도 정상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도 최대한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정상 또는 비정상이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결국 그 대상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개입된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불타오르는 나무 위에 흑인젊은이가 목매달려 있고, 그 주변에 백인 군중들이 모여 있는 사진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1930년대의 린치 장면입니다. 죽어가는 흑인남성은 불에 타서 옷이 그슬리고 온몸은 상처투성이며 얼굴은 피가 철철 흐르는 상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백인 남성, 여성, 어린아이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넘쳐흐릅니다 .플래시가 터진 사진 프레임 안에는 기껏 수십명이 있을 뿐이지만, 어둠 속에 보이는 보자들의 그림자로 미루어 볼 때 훨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르완다 제노싸이드에 대해 흔히 90만명이 사망한 하나의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오해합니다. 하지만 제노싸이드는 하나의 사건이 아닙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르완다 제노싸이드는 한 명이 죽은 살인사건이 90만개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고, 죽음을 맞이한 상황도 모두 다르며, 지역에 따라 학살의 모습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제시한 것은 위의 여러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 중 장애인과 인종갈등에 관련된 몇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 책의 표지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사람은 한 명, 한 명 모두 하나의 우주이다. 세상의 어떤 일 보다 내 생각이 존재하고 사유할 수 있는 내가 존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나의 상실은 바로 모든 것의 끝이요. 우주의 소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감히 누가 그러한 우주를 마음대로 건드린단 말인가! 정말 무섭다. 이런 일을 바로 다수라고 불리우는 평범한 나같은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다. 소름끼친다.

 우리 인간들은 DNA가 99.95%가 동일하고 단, 0.05% 만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이 0.05% 라는 이 사소함이 99.95%를 과감히 배척하고 차별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단 말인가! 얼마 전, 신문에 'SKIN'이라는 책 소개를 보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역사가 바뀌었고 인종간의 살육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피부색은 단지 햇빛에 노출될 경우 피부를 보호하기위해 멜라닌 양이 서로 다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 라고 생각하고, 서로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한 사람이 모두 하나의 우주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직도 인권은 이 시간에도 유린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우선 사람은 살고 보아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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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삶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과연 어디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가? 어떤 이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정말 삶에서 중요한 질문이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이러한 중요한 질문 앞을 피해간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바쁘단 말인가? 이런 중요한 질문에 대한 생각없는 바쁨이란 과연 필요한 걸까? 라는 계속적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많은 책들이 항상 강조하는 것이 바로 진정안 나를 찾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정말 이것이 이상적인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많은 것을 읽어보았는데 아직도 그것을 찾지는 못한 것 같다. 이렇게 계속해서 나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인 듯 하다.
이제 서른 한 살의 나이가 되었고 아주 조금씩 나를 찾아가는 것 같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좀 더 깊이 나와 대화해보고, 세상과 부딪히면서 넓게 경험해보고자 한다. 이 순간이 바로 내가 찾는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남들이 가르쳐주거나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닌, 내 스스로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라.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남의 뜻'에 이끌려 살지, '내 뜻'으로 이끌고 살지, 그걸 결정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나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또 무엇을 하면서 의미를 느끼는지 스스로 찾아서 그것을 해라.


 이제 더 이상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아니면 친구들이 많이들 하니까
 피라미처럼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니고 하지 말아요.
 내 주관을 세우고
 스스로 독창적인 트렌드세터가 되세요.
 기존의 패러다임을 당신이 뒤집으세요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떤 업무적인 성과나 목표했던 것을 달성했을 때도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행복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는 가족과 함께할 때, 오랜 친구들과 이런 저런 농담을 하면서 이야기할 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처럼 바로 누군가와 함께할 때이다.

이렇듯,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를 찾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다.
바로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이 자아를 찾는 것 이상으로 힘들 수도 있고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너무나도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불문율이 있다. 바로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대접해주라' 이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조금 손해보더라도 이해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관계의 정립에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관계라는 것은 또한 둘 이상의 인격체가 있고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와 소통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바로 상대방이 나와 다르더라도 이해하며, 서로 진심으로 소통을 하고 주고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정말 말은 이렇게 쉽게 한다. 바로 이런 삶을 살아가려고 하루하루 노력하는 것이 수양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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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책인데, 오늘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났다. 책을 보니 여기저기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내용은 바로 아래의 내용들이었다.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되새겨보고자 이렇게 적어본다. 책의 첫번째 안 표지에 그 당시 읽고 난 다음에 적은 듯한 글이 있다.
 "공부도둑이라는 책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할까! 그 이유 중 하나는 70세의 나이에 쓴 책, 책 내용에 그 깊이를 느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항상 '앎'을 추구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
 그 당시 읽고 나름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책이었던 것 같다. 책 읽는 스타일이 기존에 읽은 것을 잘 보지 않기는 한데 이렇게 갑자기 끌리는 경우가 있다. 장회익 선생님의 공부도둑 오늘 자기 전에 내 머리를 맴돌게 한다.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더구나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솜씨를 원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우리는 심오한 이론을 접하게 될 때 마치 단순한 용어나 수식에 걸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우리는 모두 좋은 칭찬과 격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공적 자체에 아주 적절한 것이 아니라면 효과가 별로 없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아무리 칭찬해 주어야 칭찬받는 사람은 이미 그것이 과장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기분은 북돋울지 몰라도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배움을 위해서라면 나이 어린 자식에게 배우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학구적 자세가 그것이다. 남 앞에 머리 숙이고 배운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자신이 직접 수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리학 전체에 대해, 그리고 이와 연결해 개별과목에 대해 그것이 담고 있는 핵심적 내용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고 그 잠정적 결론을 자기 언어로 서술하라. 그리고 학습이 진행되는 대로 이것에 대한 수정, 보완을 수행해 나가되 그 핵심은 반드시 유지하라. 이렇게 할 경우 설혹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핵심은 항상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학점 관리를 해나갈 수 있다.

책 한 권만 잘 읽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120퍼센터 이해하고 했다. 여기서 120퍼센트라는 것은 저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20퍼센트까지 더 얹어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학습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후 내 학습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더 이상 역사는 열정만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지성만으로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목숨을 아끼지 않을 열정과 함께 역사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그 일을 감당할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성을 함양시켜 왔는가? 그리고 이것을 통해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가?
아직도 그는 내 속에서 부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그의 얼굴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외치고 있다. 나를 부활시키라.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나는 무슨 학문을 하겠다. 어떠한 문제를 풀어보겠다 하고 생각한 뒤 학문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연한 흥미에 따라 학문을 시작하고 보니 자기가 하고 있는 학문의 내용이 점점 명확해지고 또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문제도 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계획을 미리 하고 싶어도 학문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으면 계획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학문을 해나가면서 물음을 던지는 일 자체가 이미 학문에 크게 한 걸음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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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012년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는 과연 어느 나라일까?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나라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나라이다. 궁금하다. 이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은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의 이해를 도와주는 책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의 탄생은 나는 몇 가지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콜럼버스, 영국, 청교도, 노예무역, 흑인, 인디언 이런 단어로 미국의 시작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인들의 인도를 찾기 위한 신대륙 탐험을 시작으로 서인도제도가 발견이 되고, 아메리카가 유럽인들에게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당시 삼각무역 즉,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아메리카로 데려간다.
당시, 영국에서는 종교개혁의 바람으로 카톨릭과는 다른 교리로 개신교가 등장한다. 그리고 카톨릭의 탄압으로 그들은 아메리카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메리카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곳은 이미 토착민인 인디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인도에 도착한 줄 알고 그들을 Indian이라고 부른 것도 우스운 일이다.
 유럽인들은 장티푸스, 홍역등의 전염병과 잔인한 학살로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같은 방식으로 점령한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아메리카로 데려와 개척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러가지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본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통해 미국이라는 신생국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개별적인 책들을 통해 역사에 관해 이해하게 되면, 그 많은 책들이 서로 연결되어 진다. 바로 미국의 역사를 통해서 아프리카의 역사를 들여다보게 되고 이를 통해 당시의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포괄적인 세계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하게 된다. 미국사 산책은 10권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유럽에 대한 역사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듯이, 유럽의 연장선상에 있는 미국의 역사 역시 미국사 산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 17세기 말 경 존 바봇은 황금해안 (Gold Coast)에서의 노예우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노예들이 내륙 지방에서 피다(Fida)로 끌려오면 해변 근처의 칸막이방이나 감옥 같은 곳에 수용된다. 유럽인들이 그들을 인수하려고 하면 그들은 넓은 평지로 끌려나와 노예선 의사들에 의해 남자든 여자든 모두 발가벗겨져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몸을 샅샅이 검사당한다.  우량하고 건장하다고 인정되면 한쪽으로 분리되어 빨갛게 달구어진 인두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회사 마크를 가슴에 찍힌다. 그런 다음 낙인찍힌 노예들이 다시 칸막이 방에 수용되어 배에 실려갈 때까지 대개 10일 내지 15일 정도 기다리게 된다."

노예선의 공간은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노예들은 캄캄한 곳에서 서로 사슬로 엮이고, 배 밑바닥의 습기에 젖고, 배설물의 악취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당시의 문서들은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높이가 어깨보다도 낮았기 때문에 그 불행한 인간들은 주위를 돌수도 없고 돌아누울 수 조차 없었다. 더구나 목과 다리가 갑판에 사슬로 묶여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절망감과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공포감 때문에 흑인들은 광포해진다."

 

▶ 1760년 식민지의 흑인 인구는 약 25만 명이었느데, 노예무역이 성행함에 따라 급증하기 시작했다. 1795년까지 영국 리버풀 항구에는 노예를 운반하는 배가 100척이 넘었고 그것은 전 유럽 노예무역의 절반에 달하는 것이었다. 1800년까지 1000만명 내지 1500만명의 흑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로 붙잡혀 왔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잡힌 노예들의 3분의 1에 해당된다. 근대 서구문명이 시작된 시기에 아프리카는 5000만명을 죽음과 노예매매로 잃었으며, 이게 바로 아프리카의 저발전의 이유가 되었다.

 

▶ 아메리카 대륙에서 독립전쟁이 터졌을 때 조선에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이렇다 할 큰 사건은 없었는데, 1776년 9월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설립해 '혁신정치의 중추'로 삼았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규장은 '군주가 지은 글'을 뜻하는 바, 규장각은 본래 왕들의 친필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왕실 도서관이다. 그러나 정조의 혁신의지에 따라 서얼 출신의 실학자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해 신분과 당파를 초월해 선발된 규장각관료들은 탕평책을 추진하는 주요세력이 되었다. 이런 혁신이 좀더 오래 추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새삼스럽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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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를 낳겠다고 결정했다면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니면 3년은 휴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아기를 업고 직장에 나가세요. 무엇보다 아이를 우선해야 합니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할 수 있을 때 아이를 낳고,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안 낳아야 합니다. 3년까지만 아이를 잘 키우면 과외 안 시켜도 괜찮고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애를 낳아서 잘못 키워 놓으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반드시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가정에서 이것이 첫째입니다. 

둘째, 애 때문에 남편을 떼어 놓고 서울로 이사 가는 사람, 애를 데리고 미국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세 살 때까지만 애를 우선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애기는 늘 두 번째로 생각하세요.

대학에 떨어져도 신경 쓰지 마세요. 남편이 다른 곳으로 전근 가면 무조건 따라가세요. 돈도 필요 없습니다. 아기가 학교 몇 번 옮겨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살편 아이들은 전학은 열 번 다녀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자랍니다. 그런데 애를 중심에 놓고, 오냐 오냐 하면서 자꾸 부부가 헤어지고 갈라지면 아무리 잘해 줘도 아이를 망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오늘부터 정신 차리고 제 얘기를 선물로 받아 가십시오.

이렇게 해야 가정이 중심이 서고 화목해집니다. 가정을 화목하게 한 다음에는 내가 사는 세상에도 기여를 해야 합니다. 나만 잘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자식만 귀엽게 생각 말고 이웃집 아이도 귀하게 생각하세요. 또 내 부모만 공양하지 말고 이웃집 노인도 공경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식이 좋은 것을 본받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자식에게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합니다. 매를 들고 애를 가르칠 필요 없이 내가 늘 부모를 먼저 생각하면 자식이 저절로 효자가 됩니다. 애를 키우다 나중에 '저게 누굴 닮아 저러나' 하지 마세요. 누굴 닮겠습니까? 제 부모를 닮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좋은 인연을 지으세요. 처음에 조금만 노력하면 나중에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러면 돈이 없어도 행복하고, 비가 새는 집에 살아도 재미가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셔도 인생이 즐거워 집니다. 즐겁자고 사는 거지 괴롭자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부부는 이것을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 스님의 주례사 (법륜스님) 3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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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의 청년 싯다르타는 부귀한 가정을 버리고 오직 진리를 찾아 고행의 길을 떠나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이 책의 겉표지에 써 있는 글이다.

나 역시 싯다르타의 고행의 길을 마치 같이 걸어간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어내려가며 나 역시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 과연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나, 자아를 위한 삶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나에게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 자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아직까지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듯 하다. 아마 1년 후, 2년 후, 그리고 세월이 지나갈 때 마다 다시 읽어도 새롭게 다가올 것 같다. 싯다르타가 사문의 길과 속세의 길을 모두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었듯이 나 역시 세월의 경험이 쌓아지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아마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매년 한 번씩 읽어 내려가며 나를 찾아보자.라는 말을 홀로 해본다.

책을 읽고 메모장에 몇 자 적어 논 것이 있다. 그냥 단어의 나열이지만 더이상 단순한 단어가 아니었다.

자아, 경청, 만물, 관심, 사랑
본래 모든 것에는 해결책과 답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냥 그것을 찾을 뿐이다. 그리고 비판적 시각을 가져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과 피에타의 성모 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찾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p55
 '대체 가르침에서, 스승이게서, 네가 배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냐? 너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준 그들이 지금까지 네게 가르쳐줄 수 없었던 것이란 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그는 찾아내었다.
 '그것은 자아(自我)였다. 그 의미와 본질을 나는 알고자 했다. 그곳에서 내가 빠져나오려 했던 것, 극복하고자 했던 것, 그것은 자아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극복할 수는 없었고 다만 기만할 수 있었을 뿐이다. 다만 그것에서 도망쳐서 그 앞에서 숨을 수 있었을 뿐이다. 실로 세상에서 이 자아만큼 내가 생각에 몰두하게 만든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살고 있다는 이 수수께끼, 나는 싯다르타라는 수수께끼처럼 나의 생각을 사로잡는 물건은 없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나 싯다르타에 대하여서만큼 나 자신이 거의 알지 못한 물건도 없다!'

p186
 '그의 행위와 삶이 그의 말씀보다 가치있으며, 그의 손의 움직임이 그의 의견보다 가치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나는 말씀이나 사상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행위 속에서, 삶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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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의 자기혁명 (p304)

 

글쓰기의 방법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시선을 고정하고 응시하여 나만의 색깔로 대상을 분해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시인과 작가의 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의 글이 더 가슴에 와닿기도 한다. 철학자의 시선은 대상을 분해할 뿐 아니라 그 너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는 먼저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충분히 숙고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단 '나는 ......' 이라고 무조건 시작해놓고 보는 습관이다. 무언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떠밀려 글의 주제와 줄거리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반드시 기승전결의 얼개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고 시작해야 한다. 글을 쓰기 전에 '시선'을 먼저 가다듬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어떤 형식으로 쓸 것인지를 생각해 결정한다. 나의 시선이 분해한 프리즘의 색깔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은 기교다. 언어를 다루는 능력, 즉 기교를 어떻게 익힐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모든 예술행위가 그렇듯 모방에서 출발할 수 있다. 미래의 대가는 현재 대가의 작품을 모사함으로써 공부를 시작한다. 화가는 아그리파를 데생함으로써 내딛고, 음악가는 베토벤을 들으면서 꿈을 키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모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생각하기와 말하기가 다르듯, 읽기와 쓰기는 다르다. 해석과 창작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쓰는 연습으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좋은 글이 아닌 잘 씌어진 글을 필사하는 것이다. 글이 내공을 담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글쓰기 연습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을 다루는 능력이지 작가의 영감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학적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즉 소설가, 카피라이터, 에세이스트 등을 꿈꾼다면 문학가의 글이 좋다. 이를테면 오정희 선생의 단편 같은 것 말이다. 오정희의 단편은 실로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능력이 극점에 달해 있다. 적절한 템포, 절제, 무형의 것을 묘사하는 구성과 묘사력은 단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황석영의 글은 이야기 능력이지 필사의 대상은 아니다.

 반면 칼럼니스트가 되고자 하거나 타인을 설득하고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좋은 칼럼을 골라 필사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 과거 <이규태 코너>를 필사한 적이 있는데, 요즘의 글쓰기 트렌드와는 좀 어긋나는 면이 없지 않다. 필자의 글이 무겁고 현학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필사를 할 때는 열 번 이상 반복해서 그대로 베껴써야 한다. 키보드를 이용해도 좋고 연필을 쥐어도 좋다. 앞으로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글을 쓸 작정이라면 굳이 연필을 잡지 않아도 된다. 특정 글을 이렇게 열 번 이상 반복해서 쓰면 어느 순간 대상의 문제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이때 글을 써보면 그 문체가 내 글에서 배어나오고, 어느 순간에는 그의 어법이나 문장을 흉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 순서는 개작이다. 소위 청출어람의 단계인 셈이다. 필사의 대상으로 삼은 글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 고쳐 써보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고쳐 쓴 글이 원작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고쳐 쓰는 것이다. 특히 불필요한 문장이나 단어를 삭제하고 글을 축약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실제로 글을 써보면 대개는 중언부언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래서, 따라서 등의 남발은 앞선 문맥을 지키려는 일종의 콤플렉스다. 이런 말들은 가능한 한 생략하고 적절하지 않은 문장이나 단어를 삭제한 다음, 그 자리에 나의 글을 가필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반복하다보면 글의 맛을 알게 되고 글과 말의 차이를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내가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필사하고 다음에는 축약과 삭제와 가필을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쓰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세 개의 글이 나란히 놓이게 된다. 필사한 글, 내가 고쳐쓴 글, 내가 새로 쓴 글, 이 가운데 내가 새로 쓴 글이 가장 훌륭하거나 최소한 그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글을 다루는 훈련은 얼추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진짜 마지막 단계는 통합이다. 나의 프리즘에 비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을 선정하고 그 맥락을 머릿속으로 그림으로써 주장을 더욱 선명히 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이때 약간의 기교는 필요하다. 글을 쓸 때는 초두효과, 최신효과 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글쓰기에서 가장 유효한 수단은 초두효과다. 인용문, 사례 등을 글의 앞에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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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책 재미있을 것 같네. 관심있는 역사 관련 책을 집어서 조금 읽다보면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이름을 살펴본다. 이런 또 이덕일 작가가 쓴 글이다.
이제는 그의 책 목록을 살펴보고 하나씩 하나씩 모두 읽어내려 갈 예정이다.
그러면 아마 조선의 중, 후기에 대한 나름의 맥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최선의 역사 공부는 이덕일의 책 속에 빠져드는 것이라 혼자 생각 되었다. 하지만 편협하지 않은 시각으로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려 한다. 작가 이덕일이 새롭게 접근했던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등이 궁금했다.
과연 왜 그들이 그런 것에 집착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300~400년 전의 조선의 정치 현실이 지금의 정치 현실과 너무나 흡사하게 진행되는 것 같은 아쉬움이 무엇보다도 크게 남았다.

잠깐 역사적인 시점과 사건에 대해 살펴보자.

◆ 인조반정
- 1623년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 종(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
-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당론의 폐해를 통감하고 이를 초월하여 좋은 정치를 해보려고 애썼으나, 자신이 대북파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당론을 초월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등 명망높은 인사를 조정의 요직에 앉혀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였으나, 이이첨, 정인홍 등 대북파의 무고로 친형 임해군과 이모제 영창대군을 죽였으며, 또 계모인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폐륜을 자행하였다. 이와 같은 광해군의 실정이 계속되어 기강이 문란해지자 서인 이귀, 김자점, 김류, 이괄 등은 반정을 모의, 1623년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모든 계획을 추진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 조금 다른 관점
: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임진왜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너무나 힘들어지고, 대외적으로는 조선이 상국으로 받들던 명의 국운이 다해가고 새롭게 청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광해군으로서는 조선의 운명을 쇠퇴해가는 명나라 만을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명과 청 사이에서의 중립외교를 하면서 조선을 지켜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러한 현실적인 대응 방식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정치적, 논리적 뿌리인 명나라 만을 붙잡고 있어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 제1차 예송논쟁
- 1659년 효종이 죽자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의 복상을 서인의 뜻에 따라 기년(만1년)으로 정했는데, 이에 대해 남인 허목, 윤휴 등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일어난 사건. 이들은 효종은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나 다름 없으므로 3년(만2년)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는데 비해, 송시열 등 서인은 효종은 인조의 둘째 왕자이므로 장자의 예로 할 수 없다고 반박했고, 결국 서인의 주장이 받아 들여졌다.

◆ 제2차 예송논쟁
- 현종 15년(1674) 효종의 비가 죽자, 다시 조대비 복상을 몇 년으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이에 대해 서인은 대공(8개원) 설을 주장했으나 남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현종은 예조에서 대공복제를 채택한 것은 결국 효종을 차자로 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여 잘못 적용된 예제라 판단, 이 후 송시열 계의 서인 세력을 정계에서 축출한다.

◆ 예송논쟁의 의미는 무엇일까?
- 예송논쟁은 단순히 상복을 얼마나 입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왕과 사대부들간의 힘싸움이다.
서인들의 주장은 왕도 사대부와 마찬가지의 기중이 적용되어야 하는 입장이고 남인들은 왕은 사대부와는 다른 절대권자로서 그 기준을 뛰어넘는다. 라고 맞서고 있다. 당시, 서인은 그 정치적 세력이 이미 왕권을 능가할 정도라고 여겨질 정도로 그 힘이 대단했다. 그리고 왕권과 남인의 대응 방식이 바로 이 예송논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 예송 논쟁의 두번째 의미는 청에 인질로 살다가 돌아온 장자 소현세자(인조가 사사했다고 의심이되어짐..)가 죽자 그 다음 왕위 계승을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효종을 왕권으로 세운 것에 대한 정통성 문제가 달려있다. 바로 효종의 정통성을 인정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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