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읽은 책인데, 오늘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났다. 책을 보니 여기저기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내용은 바로 아래의 내용들이었다.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되새겨보고자 이렇게 적어본다. 책의 첫번째 안 표지에 그 당시 읽고 난 다음에 적은 듯한 글이 있다.
 "공부도둑이라는 책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할까! 그 이유 중 하나는 70세의 나이에 쓴 책, 책 내용에 그 깊이를 느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항상 '앎'을 추구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
 그 당시 읽고 나름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책이었던 것 같다. 책 읽는 스타일이 기존에 읽은 것을 잘 보지 않기는 한데 이렇게 갑자기 끌리는 경우가 있다. 장회익 선생님의 공부도둑 오늘 자기 전에 내 머리를 맴돌게 한다.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더구나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솜씨를 원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우리는 심오한 이론을 접하게 될 때 마치 단순한 용어나 수식에 걸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우리는 모두 좋은 칭찬과 격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공적 자체에 아주 적절한 것이 아니라면 효과가 별로 없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아무리 칭찬해 주어야 칭찬받는 사람은 이미 그것이 과장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기분은 북돋울지 몰라도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배움을 위해서라면 나이 어린 자식에게 배우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학구적 자세가 그것이다. 남 앞에 머리 숙이고 배운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자신이 직접 수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리학 전체에 대해, 그리고 이와 연결해 개별과목에 대해 그것이 담고 있는 핵심적 내용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고 그 잠정적 결론을 자기 언어로 서술하라. 그리고 학습이 진행되는 대로 이것에 대한 수정, 보완을 수행해 나가되 그 핵심은 반드시 유지하라. 이렇게 할 경우 설혹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핵심은 항상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학점 관리를 해나갈 수 있다.

책 한 권만 잘 읽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120퍼센터 이해하고 했다. 여기서 120퍼센트라는 것은 저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20퍼센트까지 더 얹어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자기가 주체가 되어 학습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후 내 학습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더 이상 역사는 열정만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지성만으로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목숨을 아끼지 않을 열정과 함께 역사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그 일을 감당할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성을 함양시켜 왔는가? 그리고 이것을 통해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가?
아직도 그는 내 속에서 부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그의 얼굴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외치고 있다. 나를 부활시키라.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나는 무슨 학문을 하겠다. 어떠한 문제를 풀어보겠다 하고 생각한 뒤 학문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연한 흥미에 따라 학문을 시작하고 보니 자기가 하고 있는 학문의 내용이 점점 명확해지고 또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문제도 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계획을 미리 하고 싶어도 학문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으면 계획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학문을 해나가면서 물음을 던지는 일 자체가 이미 학문에 크게 한 걸음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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