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이나 서평을 쓰고, 가끔 하루 일과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어떤 때는 그냥 어떤 단어 하나를 가지고 혼자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내려가기도 했다. 나는 작가나 기자처럼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물론 그들처럼 글을 쓰지도 못한다. 그런데 왜 나는 혼자 이렇게 글을 쓰는 걸까? 어떤 이유 때문에 내가 이렇게 글을 남겨두는 것일까?


하루를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과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항상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서 일을 하거나, 개인적인 업무 처리 그리고 홀로 생각할 시간은 스마트폰에 빼앗긴지 오래되었다. 잠시 생각해보니 어떤 날은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깊이 한 적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사는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시간이 많았다.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생긴다. 이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그리고 동시에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내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예전에 내가 경험했던 내용이나 관련된 삶의 흔적들이 내면에 감춰진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오고, 어린 시절로도 가보고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공감할 수 있는 요소에서 함께 감응하기도 한다. 그런데 글쓰기는 그 퍼져나가는 정도가 더 넓고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이가 더 깊숙하다. 그래서 글쓰기는 세속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수양의 길이요, 성찰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P22

작가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수전 손택은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원래부터 작가라서 지식인의 본분으로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작가라는 뜻으로. 그래서 작가가 되기는 쉬워도 작가로 살기는 어렵다. 엄밀하게 말하면 작가라는 말은 명사의 꼴을 한 동사다. 작가는 행하는 자, 느끼는 자, 쓰는 자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언어로 세공하고 두루 나누면서 세상과의 접점을 넓혀가는 사람이다. 세상과 많이 부딪치고 아파하고 교감할수록 자기가 거느리는 정서와 감각과 지혜가 많아지는 법이니, 그렇게 글쓰기는 존재의 풍요에 기여한다.


p199

한 사람의 독특한 말과 행동을 통해 그를 가늠한다. 직업과 취향, 인생관을 파악한다. 긍정적으로 사는지, 부정적으로 사는지를 단어와 말투로 짐작한다. 그러니 어떤 단어를 주로 쓰는지, 욕설을 자주 하는지, 간결한 화법을 좋아하는지, 말끝마다 부연설명을 붙이는지, 심지어 문법적으로 수동형을 좋아하는지, 능동형을 좋아하는지, 사투리를 쓰는지, 말끝을 흐리는지 그대로 전하는 게 좋다. 또한 무의식적인 몸짓과 행동마저도 성격을 보여주는 단서다. 말을 하면서 헛기침을 해대는지, 여럿이 걸을 때 앞서 걷는지. 뒤로 처지는지, 아시다시피나 사실, 가령 같이 자주 사용하는 말버릇이 있는지 그러한 디테일을 살리면 글의 생생함을 더할 수 있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유쾌한 농담에서 진지한 토론까지 하나도 놓칠 게 없다.


글을 쓰다 보면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이 글의 재료이다. 글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내용들을 적어내려가야 한다. 바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스펙트럼이 글의 재료가 된다. 그러다보니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감정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좀 더 자세히, 남들이 보지 못하는 숨은 부분까지도 바라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관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 더 살펴보게 된다. 여기서는 항상 휴머니즘의 전제가 필요하다.


책을 읽고 남기는 개인적인 독후감을 쓰고 나서 어떨 때는 홀로 뿌듯할 때가 있다. 무언가 내 글에 대한 자아도취의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대부분 형식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경험했던 내용, 개인적으로 고민했던 내용을 풀어내는 경우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거나,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에는 어쩐지 글을 쓸 때 감정이 제대로 스며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내가 내 이야기를 쏟아낼 때는 그 만큼 힘이 생기고 글에도 탄력이 붙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p62

"예술에서 최악은 부정직하다는 것이다. 문학은 저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대한 정직한 표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글쓰기는 용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소설가 김연수는 글 쓰는 일이 "아랫도리 벗고 남들 앞에서 서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는데, 용기가 충만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글을 써내는 과정에서 문제에 직면하면서 용기가 솟아난다는 말일 것이다.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다 보면 '글이란 본디 자기 능력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고 했다.' 라는 말이 나온다. 글을 쓰다 보니 색다른 시선으로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 다정하게 이야기하듯이 읽는 내내 마음도 차분해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부러웠다.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을까. 시기심이 발동한다. 그런데 글이란 본디 자기 능력보다 잘 쓸 수 없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상처가 되는 말이지만 반대로 내가 한 만큼은 보상해준다하니 위로가 되기도 한다.


글이 '자기 능력' 보다 잘 쓸 수 없다고 할 때, 그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독서와 사색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고, 만나지 못하는 인물들의 내면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삶의 직간접 경험을 되새김질 하듯이 끊임없이 곱씹으면서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능력이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p81

대학교 3학년 때 신춘문예에 당선된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의 어머니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스물여덟 살에 청상이 되어 삯바느질로 삼형제를 키우던 어머니가 순천 시내 서점 주인에게 "우리 아들이 읽고 싶은 책은 마음대로 읽게 하고, 사고 싶은 책은 그냥 가져가게 하면 월말에 들러 값을 치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승옥은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책이란 책은 거의 다 읽었고 그것들이 글을 쓰는 바탕이 되었다며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독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글쓰기에 대한 많은 책이 내 책꽂이에 서로 기대어 꽂혀있다. 잘 쓰고 싶은 욕심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그들이 특별한 해답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고 '그저 써야 한다'가 진리임을 알게 된다.

『글쓰기 최전선』의 표지의 윗 부분에 쓰인 짧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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