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무엇인가? 우선 정의부터 찾아보자.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형설출판사의 《서양철학 일반》에 나온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1) 철학은 자기 자신의 앎의 문제를 탐구하는 사유의 학(學)

2) 철학은 난해한 학문이나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종합적인 학문

위에서 말한 그대로 철학은 사람인 나 자산과 나를 둘러싼 세계 바로 우주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살다보면 혼자 생각으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나에게 벌어질 지 궁금하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관을 찾는다. 그곳에서는 "그 남자 만나면 안돼", "올 해 조심해야 겠어.", "그 문서 잡아." 등등 믿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얘기를 하고 5만원, 10만원을 뚝딱 챙긴다.

이것도 철학이긴 하다.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서 타인을 통해 배우는 것이기에.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면 거짓이든) 그런데 철학관에서 말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네" 하고 듣기에는 궁금증이 더 많고 알고 싶은 게 많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철학을 공부하나 보다.


 '철학' 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숨이 탁 막힌다. 이건 딴 세계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가까이 두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 궁금한 점을 찾고 찾다 보면 결국은 과거의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을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이제는 옛날 사람들이 생각해서 잘 정리한 글들을 읽으면 된다. 그런데 읽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읽는 연습을 차근 차근 해보려 한다. 


처음에는 맹목적으로 '그들이 이런 말을 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나도 언젠가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태어날때 부터 사방이 벽으로 되어있는 곳에서 태어나 그것이 세계의 전부인 양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벽을 넘어서면 분명 새롭고 분명한 세상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지는 않을까?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면 그 벽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된다.


어쩌면 지루한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차근 차근 정리해본다. 현암사에 출간된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 라는 책을 바탕으로 서양철학의 기초부터 밟아갈 예정이다.


우선 오늘은 철학의 시작과 자연철학가들 그리고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까지 살펴보려고 한다.

철학 여행이 순항이 되길 바라며 돛을 올린다.

 


□ 들어가며

탈레스(BC624?~BC546?)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하며 기존에 신이 만물을 만들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철학이 시작된다. 그리고 탈레스의 제자들과 그 당시의 철학자들을 바탕으로 만물의 생성원리에 대해서 논하는 자연철학이 생겨난다. 

BC400년경 그리스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움트고 있었으며, 당시 시민들에 대한 계몽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일군의 무리들이 있었으니 바로 소피스트들이었다. 그들 중 하나였던 프로타고라스(BC487~BC420)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 했다. 이는 바로 소피스트들이 기존의 자연을 중심으로 생각을 해왔던 것에서 인간과 사회로 그 관심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피스트들은 모든 것은 변한다며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하였다. 당시에 이들의 생각에 반대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소크라테스(BC470~BC399)였다. 그는 몇몇 규범은 절대적이고 보편 타당한 것이 있다는 의견을 펼친다.

 

□ 철학의 시작과 자연철학가들


탈레스(BC624?~BC546?)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하면서 철학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존에 만물은 당연히 전능하신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탈레스는 생각의 방식이 달랐다. 이를 시작으로 초기 철학이 싹 트기 시작한다. 그리스 식민지이던 밀레토스, 엘레아, 그리고 소아시아에서 각각 밀레토스학파, 엘레아학파, 에페소스학파가 생겨났고 그 외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밀레토스 학파의 대표적 인물은 탈레스(BC624?~BC546?), 아낙시만드로스(BC610~BC546), 아낙시메데스(BC570~BC526)이 있었다. 탈레스는 당시 이집트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했고, 기원전 585년의 일식을 계산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에 말했던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들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은 '무한한 어떤 것'에서 생겨나 다시 그것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으며, 아낙시메데스는 대기(공기)가 만물의 근원이라 하였다.

엘레아 학파의 대표적 인물은 파르메니데스(BC540~BC480)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늘 존재하던 것으로 감각은 이성적 설명과 부합하지 않는 그릇된 세계상을 전해준다고 생각했다.

에페소스 학파의 헤라클레이토스(BC540~BC480)는 "모든 것은 흐른다."며 자연의 기본 특성을 지속적인 변화로 생각했다. 그는 세계는 지속적인 여러 대립쌍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 하지만 그 속에서 통일성과 전체성을 보고 만물의 바탕에 어떤 것 '신' 또는 '로고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 주요 철학자로는 엠페도클레스(BC494~BC434), 아낙사고라스(BC500~BC428), 데모크리토스(BC460~BC370)을 들 수 있다. 엠페도클레스는 자연은 모두 네 가지 원소(흙, 공기, 불,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자연에는 서로 다른 두 힘 (사랑과 미움)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힘은 사물을 겹합시키고, 미움의 힘이 사물을 분리시킨다고 생각했다. 아낙사고라스는 자연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작은 소립자로 조립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물을 더 작은 소립자로 분리할 수 있지만 가장 작은 소립자도 그 속에 전체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자연은 원자들과 빈 공간만이 유일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을 믿는 유물론자였다. 는 자연 속의 모든 것은 흐른다는 헤라이클레이토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흘러가는 모든 것 뒷면에는 절대 흘러가지 않고 영원 불변하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원자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인 힘들의 현존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영혼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우리의 관심사는 초기 철학자들이 어떤 해답을 발견했느냐보다는 어떤 문제를 제기했고, 어떤 해답 방식을 추구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즉, What이 아니라 How 를 통해 초기 철학에 접근해야 한다.

 

□ 아테네 철학 -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앞서 소개한 자연철학자들은 신화적 세계로부터 참된 절연을 시도함으로써 철학에 관한 한 단락을 마련했다. 이제는 관심의 대상이 자연에서 인간과 사회로 바뀌었다. BC400년대는 아테네에서 갓 피어난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 계몽이 필요했다. 당시 직접민주정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아테네에서는 시민들을 상대로 말을 하고 설득하는 수사학을 잘 구사하는 게 중요했다.


이때 등장하는 이들이 소피스트 들이다. 일종의 사설철학강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BC487~BC420)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했으며 이 말은 옳고 그름, 선과 악은 늘 인간의 필요와 관련해서 평가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유랑하던 이 소피스트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적인 규범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테네 도시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생각에 반대해서, 실제로 몇몇 규범은 절대적이며 보편 타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한 철학자가 등장하니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BC470~BC399)는 전체 철학사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그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지만 유럽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소크라테스의 생애는 그의 제자인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의 저작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문답법'이다. 그는 맨 먼저 문제만을 제기하고선,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대화를 진행하면서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 생각의 허점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상대를 궁지로 몰고가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깨닫도록 했다고 하니 정말 이런 고수가 어디있겠는가.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철학의 문제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철학적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후대 철학자인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불러 내려, 각 도시와 집집마다 보금자리를 틀게 하고, 사람들이 인생과 윤리, 선과 악에 대해 깊이 생각도록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는 달랐다. 그는 소피스트들 처럼 가르치고 돈을 받지 않았으며 자신을 참된 철학자라고 칭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했다.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 인식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인간의 이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간의 이성을 강하게 믿었던 명백한 합리주의자였다. 그는 올바른 인식은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만이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릇된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므로 우리가 지식의 폭을 넓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아주 분명하고 보편 타당한 개념 정의를 내리는 것을 무척 중요시 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그의 사상 활동이 아테네 법을 위반한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그는 사면을 청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죽음을 맞이 했고, 죽은 뒤에는 숭배와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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