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테네 학당> 중 일부, 플라톤(左)과 아리스토텔레스(右)


플라톤(BC424~BC347)에 이어 등장하는 철학자는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 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정치철학의 고전기를 장식하는 철학자로,

한 때는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드로스(BC356~BC323)의 가정교사이기도 했다.

그의 업적을 하나 들자면 도덕, 미학, 과학, 논리학, 정치학, 형이상학 등 다양한 학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양학문의 길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이라는 책에서 보면 수도원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는데

그 배경에 숨어있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미학을 공부하다가도, 소설을 보다가도 적지 않게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 번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정리해볼 만하다.

중세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해서는,

후에 중세편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그럼, 자연철학자 - 소피스트 -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로 그리스의 고대 철학을 다시 밟아가보자.               

 

■ 이전 글
1. 철학의 시작 ~ 소크라테스 (http://zorbanoverman.tistory.com/568)
2. 플라톤 편                      (
http://zorbanoverman.tistory.com/569)


 ■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과 감각

플라톤이 이성에 의지해 살았다면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에도 의지했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모든 것의 질서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말(馬)의 형상을 생각해볼 때 말의 '이데아'는 우리가 몇몇 말을 눈으로 본 뒤에 만들어낸 개념 뿐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말의 '이데아'는 말을 경험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플라톤과는 반대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플라톤은 우리 주변의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이데아 세계 및 사람이 영혼 속에 존재하는 원형적 존재의 반영이라고 간주하였는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정반대로 사람의 영혼 속에 있는 것은 자연적 대상의 반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우리에겐 선천적 이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든 감각적 표현을 서로 다른 무리와 종류로 정리 정돈 할 수 있는 천부적 능력을 타고난 것인데, 그 능력을 통해 '돌'과 '식물', '동물'과 '사람'등과 같은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성이 사람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색이며 우리가 아무것도 지각하지 않으면 이성은 완전히 빈 채로 있으므로 우리에겐 어떤 본유 관념도 없다고 생각했다.

 

■ 삼라만상의 존재와 변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서 생기는 모든 변화는 질료의 가능성의 상태에서 현실성의 상태로 변형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닭과 달걀을 생각해볼 때, 달걀은 닭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달걀은 닭이 되기 전에 오믈렛이나 후라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달걀이 거위가 되지는 않는다. 달걀이 거위가 될 가능성은 달걀 안에 없는 것이다. 즉, 사물의 형상은 사물의 가능성과 아울러서 사물의 한계도 표현해준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에는 합목적성이 있다고 믿었고, 가능성의 상태에서 현실성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만족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목적원인', '질료원인', '작용원인', '형상원인'이다. 
'비가 왜 내릴까?' 라는 의문을 통해서 위에 언급된 원인들을 살펴본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목적은 식물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다. 라고 정의한다면 식물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가 '목적원인'이 된다. 하지만 목적원인만으로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의 재료인 수증기가 대기가 차가워졌을 때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인 '질료원인' 그리고 질료에 무언가 작용되어 지는 것 즉 수증기를 냉각하는 일이 '작용원인'이 되고 땅에 떨어지는 것이 물의 본성이라는 '형상원인' 합쳐져서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다.


■ 학문적 업적과 신에 대한 생각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럽문화에서 갖는 의미 중 하나는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수많은 학술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여러 학문을 기초했고, 계통을 세운 위대한 체계조직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나치리만큼 정확한 질서를 추구했다. 그는 우리가 쓰는 개념 또한 체계적으로 하려 했고 이런식으로 논리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현상을 여러 다른 무리로 구분했을 때 구분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사물의 특성(할 수 있는 일과 능력)이었다.
그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사람은 자연의 온전한 삶을 사는 존재였다. 인간은 식물적 특성과 동물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특별한 성질인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때 이성은 '신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저서의 여러 대목을 보다 보면 그는 자연활동을 주관하는 유일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자연의 사다리 맨 위에는 신이 있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중세시대 기독교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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