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회사에 일이 많아져서 개인적인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경쓰는 것도 많아져서 인지 입 안에 생기는 아구창도 벌써 몇 달째 달고 사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5시간 정도만 자도 충분히 풀렸던 피로가 이제는 7시간을 자도 몸이 예전처럼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일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아쉬웠습니다. 어찌보면 고용이 불안한 지금 시기에는 사치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이럴 때 일수록 저의 긴장을 풀어주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게 해주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책이 다시 답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명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러 효용이 있습니다.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도 있을 것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느끼는 가장 큰 효용은 삶의 위안을 준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읽은 김연수 작가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의미가 깊은 책입니다. 11편의 단편이 수록된 책인데, 아침 출근 전에 한 편을 읽기도 하고, 회사를 오고 가는 버스와 점심먹고 잠깐 시간나는 사이에 몇장 씩 읽어가면서 또 한 편을 읽었습니다. 졸린 눈을 감기싫어서 책을 잡고 있다가 손에서 떨어져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본 책은 그의 수필인『청춘의 문장들』뿐이었습니다. 사실 너무나 유명한 『청춘의 문장들』을 예전에 읽고 나서 감흥이 별로 없어서 그동안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지 않았죠. 최근에 서재에서 어떤 책을 다시 읽어볼까 고르는데 『청춘의 문장들』이 눈에 들었습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짧게 구성된 글들을 읽는데 이번에는 다가오는 문장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역시 같은 책이라도 읽는 이와 또 시간, 분위기에 따라서 다가오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연수 작가의 책들을 찾아 보았고, 그 중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소설 집을 선택했습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그렇게 제 손으로 들어왔습니다.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제목들을 한 번 열거해 보겠습니다.

벚꽃 새해

깊은 밤, 기린의 말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일기예보의 기법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동욱

우는 시늉을 하네

파주로

인구가 나가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이 책을 읽으면서 심적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김연수 작가의 글은 따뜻한 인간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내렸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의 말을 보니 이런 글귀가 적혀있네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 곳이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끝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여기 실린 소설들을 쓰는 2008년 여름부터 2013년 봄까지 5년 동안만은 It's OK. Baby, please don't cry. (작가의 말 中)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가는 데, 처음에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이야기 속의 중심 인물은 화자가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어떤 인물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많이 전개가 되었습니다. 잊지 못하는 옛 연인, 돌아가신 아버지, 실종된 어머니 등 단편마다 잊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을 보다 보면 입을 벌리고 눈을 깜박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애써 입을 꽉 다물고 참다보니 눈물이 가득 맺혀 저절로 떨어지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읽은 느낌을 다시 표현하자면 '애써 담담한 눈물을 참는 깊은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으로 실린 단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그렇게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에서 바다 보면서 3개월 남짓 살았어. 함석지붕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p89)


이 한 권의 책으로 김연수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으로 포함되었네요. 이제는 그의 전작을 찾아보고 한 권씩 찾아 읽는 새로운 재미가 생겼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을 덮으면서 그의 다른 단편집인 『세계의 끝 여자친구』도 이어서 구매했습니다. 올 해 제 독서의 큰 수확 중에 하나가 김연수 작가를 만나게 된게 아닐까 벌써부터 생각이 드네요. 

당분 간은 위로 받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을 거 같습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그런 책일지 아니면 김연수 작가의 새로운 색깔을 보여줄 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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