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마지막에 읽은 책은 천명관의 『고래』다.

안타깝게 자주 참여하지는 못하는 책모임에 선정된 도서로 이미 책꽂이 한 켠에 천명관 작가의 다른 책들과 같이 꽂혀있는 『고래』를 다시 손에 잡았다. 고래를 한 번 읽었는데 언제 읽었나 살펴보니 2012년에 처음으로 읽은 책이었다. 읽기 전에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해보려 애썼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정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은 있는데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야기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천명관의 『고래』는 출간 당시에도 이전의 다른 작가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으로 문단에 주목을 받았다. 2012년에 개인적으로 남겨 둔 기록을 보니 그 해에 정유정의 『7년의 밤』도 읽었는데 그 두 책의 이야기 흡인력은 다른 책들을 압도한다라고 적혀있다. 즐겨듣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이 두 권을 엮어서 프로그램을 편성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2000년대의 대표적인 국내 소설로 평하고 있었다.


천명관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시나리오를 썼다. 다른 작가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인 마흔살에 등단한 그의 작품은 그동안 읽은 다른 국내 소설과는 분명 다른 점을 느낀다. 


문학동네소설상에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은희경의 평을 잠시 소개한다.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인물 성격, 언어 조탁, 효과적인 복선, 기승전결 구성 등의 기존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약간 거창하게 말한다면, 자신과는 소설관이 다른 심사위원의 동의까지 얻어냈다는 사실이 작가로서는 힘있는 출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은희경(소설가)


최근에 장편소설은 잘 읽지는 않았다. 가끔 한 번씩 소설 책을 읽으려고 몇 권을 손에 잡았었지만 중간에 다시 다른 책을 읽었다. 이런 책이 상당히 많았다. 한참 동안 다른 분야의 책을 읽었다. 그래서 다시 손에 잡은 『고래』의 압도적인 이야기에 고마울 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다른 작품이 있었다. 수많은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의 이야기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었다. 마술적 사실주의(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이런 기법이 천명관의 『고래』에서도 엿보인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수많은 남자들과 인연을 맺는 '고래'를 경외하는 금복, 금복이 코끼리 외양간에서 낳은 통뼈를 가지고 말을 하지 못하는 딸 춘희, 금복과 어떻게 인연이 이어지나 궁금하게 했던 너무나도 못생긴 추녀의 이야기, 추녀는 한 양반가의 반편이 아들로 부터 씨를 받고, 그녀에게 태어난 딸은 추녀가 꼬챙이로 눈을 지져 애꾸가 되고 벌을 키우는 이에게 팔아버리는데, 후에 벌을 데리고 나타나는 추녀의 딸의 이야기도 대단히 흥미롭다.


이제는 금복의 남자 흥미로운 남자 인연들을 살펴보자. 금복이 그녀가 사는 곳을 처음 떠날 대 만나게 되는 생선장수, 힘으로는 비할데 없지만 생각은 조금 부족한 걱정이, 한때 야쿠자일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6개의 손가락을 잘랐던 칼잡이, 그리고 금복의 어렸을 때 친구 약장수까지 등장인물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그들의 삶이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에 대한 구성과 함께 이야기 전체를 감싸는 커다란 줄거리인 벽돌로 연결되는 흐름도 흥미롭다. 북쪽의 나라를 다녀온 후 그쪽의 극장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남쪽에는 더 멋진 극장을 지어야한다는 지시로 만들기 시작한 극장 그리고 이를 위해 한 건축가가 찾아나선 벽돌 그리고 그 벽돌에 연결되는 춘희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 구성 역시 참신하기 그지 없다.


중간 중간에 작가가 말해주는 말들이 있다 . 바로 '~법칙' 이라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별도로 표시를 해두지 못해 누군가 정리해 놓은 것을 보니 참으로 다양하다.


관성의 법칙, 생식의 법칙, 화류계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거리의 법칙, 금복의 법칙, 무의식의 법칙, 습관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세상의 법칙, 이념의 법칙, 거지의 법칙, 흥행업의 법칙, 그라의 법칙, 진화의 법칙, 유언비어의 법칙, 만용의 법칙, 자본주의의 법칙, 알코올의 법칙, 플롯의 법칙, 감방의 법칙, 신념의 법칙, 토론의 법칙, 춘희의 법칙


이런 법칙들은 아마도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절묘하게 이름 지어진 이런 법칙이 튀어나올 때 마다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2015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었다. 2012년『고래』를 통해 천명관 작가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인연이 되어서 『고령화 가족』,『나의 삼촌 부르스 리』,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까지 그의 책들을 읽어나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천명관의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좋다. 때로는 너무나 긴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나는 기꺼이 천명관의 긴 작품에는 시간을 내어줄 것이다. 그의 새로운 장편이 2016년에는 출간되기를 그를 아끼는 독자로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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