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이야기에 빠져서 소설책만 읽어왔다. 이제는 조금 다른 장르의 책을 읽을 때가 온 듯 하다.

그래서 이번에 선택한 장르는 바로 '과학'이다. '과학'에 관련해서는 거의 지식이 전무해서 어느 정도 필요성도 느낀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예전에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이 떠올랐다. 

바로 196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의 『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다.


이 책은 리처드 파인만이 쓴 책이지만 과학에 대해서 논한 책이라기 보다는 파인만의 회고록이다. 그런데 물리학자의 회고록이 너무나 유쾌하다. 1,2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번에 읽은 1권에서는 어린시절과 MIT대학생활, 프린스턴대학에서의 대학원 생활, 그리고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리학자의 회고록이기에 중간중간 물리학이나 생물학 관련해서도 다루지만 이 책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해도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읽으면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데는 성공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에 관련한 책을 읽기를 원하지만 부담스러워 하는 초심자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파인만의 천재성에 감탄하기도 하고, 동시에 이렇게 그의 유쾌한 모습에 저절로 끌리게 된다. 이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과학자는 아닌 듯 하다. 분명 옆에 있으면 끌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권에서 다루어지는 부분 중에 파인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라디오를 고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그마한 창고에 자기만의 실험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고장난 라디오를 고치기도 하고, 자기 나름의 이런저런 실험을 한다. 벌써부터 평범하지 않다. 어렸지만 그의 라디오 수리 실력이 알려져서 사람들에게 수리 요청이 들어온다. 그 중 한 곳의 라디오는 처음에 라디오를 켰을 때 소음이 나다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파인만은 생각만으로 왜 그런 원인이 발생했는지 걸어다니면서 생각만을 하다가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고 바로 수리를 한다. 그래서 생각만으로 라디오를 고치는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p25) 나는 한 번 의문나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덮어둘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친구가 <그만 둬,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야>라고 말했다면 나는 너무 약이 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도까지 손을 댔으면 끝장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알아낸 뒤에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끝내 원인을 찾아서 그 라디오를 고치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태도가 나중에 그를 노벨물리학상까지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일하는 분야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되면 그것으로 그치는 경향이 크다. 그 일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끝까지 파고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원리를 알고 근본적인 문제 발생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실제로는 대부분 어느 정도만 이해되면 이 정도면 됐어하고 혼자 멈추어버린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염두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다른 재미있는 부분은 금고를 여는 장면인데, 파인만은 누군가에게 자물쇠를 여는 법을 배우고 나서, 나중에는 스스로 금고를 여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맨하튼 프로젝트의 중요한 문서들이 있는 금고들도 손쉽게 풀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동료의 어떤 문서가 필요하면 파인만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럴때마다 파인만은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게 혼자 들어가서 금방 열어두고 잡지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 뒤 동료들에게 어렵게 풀었다는 듯한 행동을 한다. 

리처드 파인먼,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p202) 대령은 공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메모를 보냈다. <파인만씨가 방문했을 때, 사무실에 들어왔거나, 근처에 있었거나, 사무실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메모가 전달 되었다. <금고 번호를 바꾸시오!>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핵실험에 처음 성공했을 때 동료 밥 윌슨과의 대화도 인상적이었다.

궁금하기도 했다. 핵을 만든 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그들도 알고 있었을까?


(p187)시험이 끝나고, 로스앨러모스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모두들 파티를 했고, 우리 모두 뛰어다녔다. 나는 지프 끝에 앉아서 드럼을 쳤다. 그러나 한 사람은 앉아서 울상을 하고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밥 윌슨이었다.

내가 말했다. 「왜 울상이지?」

「우리가 만든 것은 흉악한 거야」

「하지만 당신이 시작했잖아. 당신이 우리를 끌어들여 놓고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시작했고, 열심히 한 덕분에 성공했고, 이것은 즐거운 일이고,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냥 멈춘 것이다. 밥 윌슨은 그 순간까지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얼마 뒤에 나는 코넬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문명으로 돌아왔다. 그 때 내 첫인상은 아주 이상했다. 지금은 이 느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당시에는 아주 강렬했다. 예를 들어, 뉴욕의 레스토랑에 앉아서 창 밖의 건물을 보면서 생각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의 파괴 반경이 얼마였던가. 여기에서 34번가까지 얼마나 멀지? 이런 건물들이,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릴 텐데> 


어쩌면 파인만과 같은 과학자들은 그저 자신들의 연구와 실험에 충실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 원자폭탄이라는 것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축하하며 그들은 파티를 하고 드럼을 쳤다. 그런데 얼마 후 그것은 사망자 21만명을 포함해 인명피해가 70만명으로 추정되는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멍에를 남겼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핵전쟁의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다.


이 책은 파인만의 회고록이기에 이런 원자 폭탄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잠시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가치 판단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나중에나 깨달았을 것이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물리학자가 쓴 책인데 이렇게 재미있게 쓸 줄 몰랐다. 지루함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파인만은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런데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실험해보고 관찰해보고 궁금한 것은 악착같이 해결해나갔다. 퇴근 길에 이 책의 마지막을 읽었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줄 돋보기를 두 개 샀다. 아이들에게 밖에서 돋보기로 개미를 찾아보자고 했다. 왠지 아이들에게는 파인만씨 처럼 호기심을 길러주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파인만씨는 '과학'에 물꼬를 틀어주었다. 

이제 2권이 남았다. 이 감동이 가시지 않게 늦지 않게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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