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려준 가장 큰 재산은 독서습관

어쨌든 우리 부부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수많은 책을 읽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듣고 자란 녀석은 글자를 깨우치자 우리가 읽어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도 많은 책을 읽었다. 그 아이가 중 고등학교 시절 성적은 완벽하지 못했는데 대학은 잘 간 이유가 바로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내 생각에 녀석은 대학교 가기 전까지 적어도 1,000권은 읽은 것 같다.

그 덕에 좋은 대학에 가긴 했지만 대학에서도 역시 학과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나를 닮았는지 학교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또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즐기면서 살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학에서 쫓겨나지 않는지 궁금하기까지 하지만, 내가 비슷한 과저을 거쳤기 때문에 그다지 흠잡지 않는다. 아니, 나의 경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난 아들에게 훈계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난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아들 역시 타인이지 나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아들은 그다지 찌들지 않은 고교 시절을 보내고도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에 가서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 녀석은 자신이 아는 것은 거의 책을 통해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독서습관 하나는 확실하게 심어준 것 같다. 무척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일곱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그 녀석에겐 미국이 고향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리를 하더라도 방학이 되면 미국으로 여행을 가 한 달 이상 머물다 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번잡스럽게 지내는 건 아니다. 여행계획 같은 것도 없다. 우리 셋 다 시끄러운 곳은 싦어하기 때문에 친구를 통해 조용한 지역의 잠시 비어 잇는 집을 빌려 주로 거기서 책을 읽으며 지낸다. 셋이 각각 도서관에서 빌려 오거나 산 책들을 읽고 지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 부부는 일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가끔은 외출을 하기도 한다. 놀이동산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고 바닷가나 호수를 찾는다. 하지만 그런 곳에 머무는 시간은 짧고, 외출의 마지막 코스는 꼭 서점이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우리 셋은 각자 관심 분야의 코너로 흩어져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아내는 음악과 문화에 관한 책, 아들은 어린이들이 읽는 책, 나는 생물학이나 자연과학, 심리학 등에 관한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내가 두 사람을 찾아내야 배도 채우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나다. 아내와 아이는 책을 집어들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끼니는 내가 챙겨야만 한다.

그리고 나올 때는 반드시 각자 몇 권씩의 책을 산다. 내가 제동을 걸어봐야 들은 척도 안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책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한다. 문제는 방학이 끝나가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생긴다. 짐을 쌀 때마다 책 때문에 가방이 부족해 늘 골칫거리다. 그때즘 되면 내가 대놓고 잔소리 좀 한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아마존이라는 인터넷 서점이 생겨서 그런 불편은 덜게 됐다. 미국 서점에서 직접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신청해놓고 돌아오면 책이 먼저 와 있곤 했다.

우리 집 거실은 한마디로 서재다. 아니 거실만이 아니다. 집 전체가 서점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하고 많은 수의 책이 있다. 대부분의 집 거실에 자리 잡고 있는 텔레비전은 없고 허리 높이로 벽을 따라 쭉 이어지게 책장을 만들어놓아 책들을 다 꽂아두고 있다. 거실뿐만 아니라 벽이 있는 곳은 다 책장을 만들어놓았다. 책꽂이로 집안의 빈 벽면을 다 채워버린 것이다. 거기다 책을 다 꽂고 그 위에는 꽃병이나 조각품 같은 것을 놓으면 삽시간에 최고의 실내장식이 된다.

책 읽기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어느 부모든 자시게게 책을 읽으라고 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런데 자신들은 거실에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라. 독후감을 써라" 하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을 때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것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부모들이 책을 읽으면 된다. 우리 부부가 가장 잘한 교육이 바로 그것인 것 같다.

우리는 아들에게 어떤 책을 꼭 읽으라고 특별히 권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 아기 때부터 다양한 책을 읽어주었고, 나이가 좀 들고 나서는 스스로 골라 읽었기 때문이다. 대신 어렸을 때 동화나 소설 외에 나의 전공에 가까운 자연과학 책들과 인문학, 사회과학 쪽 책들을 사서 책꽅이에 꽂아두긴 했다. 그 책을 읽고 안 읽고는 아들 마음이었다. 그런데 제 엄마를 닮아서인지 다양한 책을 읽는 걸 좋아해서 그 책들을 다 읽었다. 그리고 나는 한 권을 손에 들으면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을 못 읽는데, 아내와 아들은 읽던 책이 있어도 갑자기 관심 가는 책이 나타나면 새 책부터 읽곤 한다.

아기 바구니에 담겨 있을 때부터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 눈에 늘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아이도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생에 큰 자산이 되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아이에게 이미 엄청난 재산을 물려줬다고 자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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