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천의 과학자의 서재 - 최 교수의 달콤쌉싸름한 독서 레시피 >




  • 희망의 밥상
    - 지은이 : 제인 구달, 게리 매커보이, 게일 허드슨
    - 레시피에 넣는 이유 : 제인 구달 선생님의 강의를 듣지 않고도 지구환경을 살리려는 그분의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므로.
  • 오래된 연장통
    - 지은이 : 전중환
    - 레시피에 넣는 이유 : 우리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인간 본성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끌어내어 진화심리학, 나아가 과학의 재미를 한껏 맛보게 해주니까.
  • 마지막 거인
    - 지은이 : 프랑수아 플라스
    - 레시피에 넣은 이유 :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잔인함과 자연의 고귀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므로.
  • 이중나선
    - 지은이 : 제임스 왓슨
    - 레시피에 넣은 이유 : '과학'이란 말만 들어도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에게 흥미진진한 과학의 세계를 열어주니까.
  • 찰스 다윈 평전 1,2
    - 지은이 : 재닛 브라운
    - 레시피에 넣은 이유 : 인류 문명의 방향을 바꾼 위대한 혁명인 진화론을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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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려준 가장 큰 재산은 독서습관

어쨌든 우리 부부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수많은 책을 읽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듣고 자란 녀석은 글자를 깨우치자 우리가 읽어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도 많은 책을 읽었다. 그 아이가 중 고등학교 시절 성적은 완벽하지 못했는데 대학은 잘 간 이유가 바로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내 생각에 녀석은 대학교 가기 전까지 적어도 1,000권은 읽은 것 같다.

그 덕에 좋은 대학에 가긴 했지만 대학에서도 역시 학과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나를 닮았는지 학교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또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즐기면서 살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학에서 쫓겨나지 않는지 궁금하기까지 하지만, 내가 비슷한 과저을 거쳤기 때문에 그다지 흠잡지 않는다. 아니, 나의 경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난 아들에게 훈계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난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아들 역시 타인이지 나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아들은 그다지 찌들지 않은 고교 시절을 보내고도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에 가서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 녀석은 자신이 아는 것은 거의 책을 통해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독서습관 하나는 확실하게 심어준 것 같다. 무척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일곱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그 녀석에겐 미국이 고향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리를 하더라도 방학이 되면 미국으로 여행을 가 한 달 이상 머물다 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번잡스럽게 지내는 건 아니다. 여행계획 같은 것도 없다. 우리 셋 다 시끄러운 곳은 싦어하기 때문에 친구를 통해 조용한 지역의 잠시 비어 잇는 집을 빌려 주로 거기서 책을 읽으며 지낸다. 셋이 각각 도서관에서 빌려 오거나 산 책들을 읽고 지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 부부는 일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가끔은 외출을 하기도 한다. 놀이동산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고 바닷가나 호수를 찾는다. 하지만 그런 곳에 머무는 시간은 짧고, 외출의 마지막 코스는 꼭 서점이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우리 셋은 각자 관심 분야의 코너로 흩어져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아내는 음악과 문화에 관한 책, 아들은 어린이들이 읽는 책, 나는 생물학이나 자연과학, 심리학 등에 관한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내가 두 사람을 찾아내야 배도 채우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나다. 아내와 아이는 책을 집어들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끼니는 내가 챙겨야만 한다.

그리고 나올 때는 반드시 각자 몇 권씩의 책을 산다. 내가 제동을 걸어봐야 들은 척도 안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책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한다. 문제는 방학이 끝나가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생긴다. 짐을 쌀 때마다 책 때문에 가방이 부족해 늘 골칫거리다. 그때즘 되면 내가 대놓고 잔소리 좀 한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아마존이라는 인터넷 서점이 생겨서 그런 불편은 덜게 됐다. 미국 서점에서 직접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신청해놓고 돌아오면 책이 먼저 와 있곤 했다.

우리 집 거실은 한마디로 서재다. 아니 거실만이 아니다. 집 전체가 서점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하고 많은 수의 책이 있다. 대부분의 집 거실에 자리 잡고 있는 텔레비전은 없고 허리 높이로 벽을 따라 쭉 이어지게 책장을 만들어놓아 책들을 다 꽂아두고 있다. 거실뿐만 아니라 벽이 있는 곳은 다 책장을 만들어놓았다. 책꽂이로 집안의 빈 벽면을 다 채워버린 것이다. 거기다 책을 다 꽂고 그 위에는 꽃병이나 조각품 같은 것을 놓으면 삽시간에 최고의 실내장식이 된다.

책 읽기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어느 부모든 자시게게 책을 읽으라고 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런데 자신들은 거실에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라. 독후감을 써라" 하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을 때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것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부모들이 책을 읽으면 된다. 우리 부부가 가장 잘한 교육이 바로 그것인 것 같다.

우리는 아들에게 어떤 책을 꼭 읽으라고 특별히 권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 아기 때부터 다양한 책을 읽어주었고, 나이가 좀 들고 나서는 스스로 골라 읽었기 때문이다. 대신 어렸을 때 동화나 소설 외에 나의 전공에 가까운 자연과학 책들과 인문학, 사회과학 쪽 책들을 사서 책꽅이에 꽂아두긴 했다. 그 책을 읽고 안 읽고는 아들 마음이었다. 그런데 제 엄마를 닮아서인지 다양한 책을 읽는 걸 좋아해서 그 책들을 다 읽었다. 그리고 나는 한 권을 손에 들으면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을 못 읽는데, 아내와 아들은 읽던 책이 있어도 갑자기 관심 가는 책이 나타나면 새 책부터 읽곤 한다.

아기 바구니에 담겨 있을 때부터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 눈에 늘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아이도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생에 큰 자산이 되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아이에게 이미 엄청난 재산을 물려줬다고 자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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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줬지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지만, 서로 바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결혼한 지 9년째인 1989년에 아이를 낳았다. 내게 문제가 있어 아이를 못 낳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듣다가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겠는가?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기로 약속했고 실천했다. 그런데 내 어머니도 아내의 어머니도 안계시는 타국 땅에서 아무런 경험도 없이 아이를 기르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우리 부부는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서로 의논해가며 아이를 키워야 했다. 아내는 워낙 학구적인 사람이라 영어로 된 육아 관련 서적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아이가 백일도 되기 전의 일이다. 저녁때가 되었는데 애를 겨우 재우고는 둘이 소파에 그냥 늘어지고 말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얼마 후 깼는데 그때야 비로소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났다. 어른 둘이 아이 하나를 돌보느라 온종일 굶다니, 초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진을 빼는 상황이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서툴렀고, 잘하고 싶었던 만큼 힘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아내는 교회에서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거기서 알게 된 미국인 노부부가 우리 아이를 보러 오셨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재미있고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두분은 이제 겨우 백일 정도밖에 되지 안 된 아이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 해주시는 것이었다. 어제 동네 가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뉴스 시간에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말이다.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우리 부부에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좀 이상하게 보이나 보네. 아기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지, 아마? 하지만 그렇지 않아. 아기는 우리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고 있어. 그러니까 아기에게 "까꿍!" 이런 것만 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줘. 너희가 학교에서 겪었던 이야기, 읽은 책 이야기, 그냥 서로에게 하듯 해주렴. 그러면 아이는 다 듣고 자란단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렇게 하는거야."

할머니 말씀에 우리 부부는 큰 지혜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까지 우린 그저 아기가 울지 않게 하려고 먹이고 재우는 데만 온 신경을 썼다. 아직 아기가 아닌가. 게다가 잠이 들면 혹시 깰까 봐 까치발로 살살 다니고 그랬을 뿐이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아이 옆에 있는 동안 번갈아 그날 이었던 이야기를 해주고,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를 위한 책만이 아니라 우리가 읽는 전공 책이나 논문도 아이 옆에서 소리내어 읽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 하버드대학 기숙사 중 하나인 엘리엇하우스에서 사감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태어난 아기는 우리 아이가 유일했다. 병원에서 데려오는 날 기숙사 시계탑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앨런 하이머트 학장님의 배려였다. 기숙사 학생들에게도 아기는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였다. 우리가 아기를 안고 식당으로 내려가면 학생들이 전부 와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오늘 아침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무슨 기사가 났니?"라고 묻곤 했다. 그중 어떤 친구는 우리에게 "이 아기 표정을 보면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우리는 그게 우리가 아기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읽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축하며 살짝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가 두세 살이 되자 우리는 상상력을 키우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책들로 골라서 틈날 때마다 읽어주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몇 권을 읽어도 밤이 늦도록 아이가 잠이 들지 않아 곤란하기도 했다. 아이가 빨리 자야 우리도 일을 하는데 말이다.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여전히 말똥말똥한데 오히려 읽어주는 내가 잠이 오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두 권만 읽어줄게"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러면 아이가 "네 권!" 이라고 협상을 해와 세 권으로 조절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아마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 말쯤이었을 것이다. 그날 따라 많이 피곤했던지 내가 그만 책을 읽어주다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결에 누군가 책을 읽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데 실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었다. 하도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라 외워서 말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놀랍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스스로 책을 읽게 하는 것도 좋지만, 글을 모르는 아기 때는 물론이고 글을 알고 난 뒤에도 부모가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게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내 무덤을 스스로 판 것도 있긴 하다. 책을 읽어줄 때 덤덤하게 읽은 게 아니라 성대모사를 해가며 구연동화처럼 읽어 주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그렇게 읽어주지 않으면 "아빠, 그건 도널드 덕의 대사잖아? 도널드 덕처럼 말해야지"라며 제공을 걸었다. 피곤해서 대충 읽어주려고 해도 어림없었다. 

                                                                                                - 과학자의 서재 (p258~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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