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메아리가 퍼지듯이 남는 한 편의 짧은 이야기,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읽은 다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짧은 중단편 소설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 이해되고 해석되는 측면이 다양하고 흥미로워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었나 곁눈질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필경사 바틀비』(1853년 作) 는 복사기가 없던 당시에 필사를 하고 글자 수대로 돈을 받던 직업이었던 필경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바틀비의 이야기다.  어느날 변호사 사무실에 바틀비가 필경사로 들어오게 된다. 변호사는 성실하고 업무에 충실한 바틀비를 마음에 들어한다. 하지만 필경의 일 외에 서류를 검증하는 일을 하자는 변호사의 말에 바틀비는 말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변호사는 당황스럽고 놀랍니다.


나는 충격받은 감각기관들을 추수르며 잠시 완벽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곧 내가 잘못 들었거나, 바틀비가 내 말뜻을 완전히 잘못 알아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어조로 요구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만큼 분명한 어조로 그 전과 같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p29)


바틀비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나중에는 필사 자체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을 자신의 거처로 정하고 잠을 자고 생활을 한다. 하지만 어떤 요구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이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이러한 태도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는 듯 보이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면서 내적갈등을 겪는다. 결국 변호사는 이사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바틀비는 여전히 기존의 사무실과 건물을 떠나지 않고, 결국은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구치소에 보내지게 된다. 그리고 구치소에서 음식을 거부하고 결국은 죽음을 마주한다.


이야기 자체는 모순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왜 바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왜 필경사가 필경을 하지 않고 변호사 사무실에 무단 거주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바틀비의 죽음은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가? 라는 질문도 하게 된다. 이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말'에 보면 이 책은 보기에 따라 고립과 소외, 산업화된 일터와 본질과 계급투쟁, 노동운동, 형제애, 정신질환, 허무주의, 메시아론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읽었는데, 읽는 이들마다 생각하는 관점이 달랐다. 어떤 이는 바틀비를 우울증 환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바틀비가 그렇게 되기까지 변호사가 취하는 애매모호한 태도에 대해서 지적한다. 다른 관점으로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상징하는 유산계급과 필경사라는 직업이 대변하는 무산계급을 언급하며 계급투쟁에 대해서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필경사 바틀비』를 읽으면서 계속 떠올랐던 책이 있었다. 바로『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또 다른 책인 『시민불복종』이었다.『시민불복종』에서 소로우는 인두세를 내라는 경관의 요구에 거부한다. 그는 노예제도를 암암리에 인정하고 멕시코를 침략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서슴지 않는 미국 정부를 지지할 수 없고, 그런 불의를 저지르는 정부를 유지하는 세금을 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이 책에 대해서 알았을 때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상당히 신선했다. 남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기를 들 수 있는 힘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필경사 바틀비』에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시민불복종』은 1849년 작품으로 1853년 출간된 『필경사 바틀비』와 같은 시기 그리고 미국이라는 장소적 배경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두 작품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점이라 생각한다.


중단편의 길지 않은 글이라서 두 번을 읽었다. 우선 내용 자체가 대단히 흥미로워서 읽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식이 아니고,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와 내적갈등을 통해서 그려지기에 읽는이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읽히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책 내용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기분이 아니고 모호하고 애매하게 남기는 하지만 그런 모호함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생각을 남기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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