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현상학이라는 단어가 계속 들려왔다. 도대체 현상학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간단하게라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서 '현상학'이라는 세 글자를 입력하고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을 선택했다.

그리고 선택되어진 책이 바로『후설&하이데거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이다.


이 책은 스승과 제자 사이인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각각 설명하며 어떻게 서로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았지만, 책을 덮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그래서 도대체 현상학이 뭔데?'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만들었다. 현상학은 무엇일까? 아직 한 권의 책으로는 정의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에는 단순히 물꼬를 튼 것으로 생각하고,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위주로 글을 정리하려 한다.


우리가 보통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동일한 현상과 사건에 대해서 서로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태도가 객관적인 태도인가?  어떤 방식이 올바른 방식인가? 


가장 근본적인 방식은 바로 우리가 마주하는 어떤 현상의 의미는 늘 다를 수 있음을 자각하는 태도, 즉 하나의 대상이 각 관점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의미현상'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후설은 이러한 태도야말로 참된 의미의 객관성이라고 말한다. 어떤 현상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의 관점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고, 문제의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객관적인 태도라는 것이다.(p72)


'사태 자체'란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어떤 현상을 '있는 그대로'보는 것이 가능할까? 비록 우리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자!'고 말은 하지만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일이다. 후설 역시 그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니 후설 스스로도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는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포함해서 어떻게 해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태가 왜 다른 의미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일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대답은 바로 그 사태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 즉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의식이 해답의 열쇠를 쥐고 있다.(p73)


어떤 현상을 과연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는가?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바라 볼 수 있는가?

분명 쉽지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현상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주관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겠지만 주관적인 시선에 더불어서 다른 이들의 시선에 대해서 항상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신과 충돌되는 지점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문을 던지고 서로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해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 사태가 벌어졌다는 현실은 단지 모든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되었다는 것뿐이다. 물론 그 현실을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문제의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사태가 현실적으로 벌어졌다는 제약에서 우리의 의식을 풀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p84)


현재 내 앞에서 벌어진 상황이라던가 눈 앞에 있는 사물들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동일한 현실이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실제 일어난 현실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몫이 더 큰 법이다. 사건이 벌어졌다는 현실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는 여러 가능성의 하나라는 점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 세계 속으로 던져진, 혹은 상황에 내맡겨진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계 속에 '던져져 있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우리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현존재는 세계 속에서 단지 혼자 존재하는 존재자가 아니다. 언제나 그 무엇 혹은 그 누군가와 함께 존재하는 존재자다. 이 '더불어 있음'은 현존재, 즉 실존의 또 다른 존재방식이다. 우리가 세계 속에서 더불어 있다고 할 때, 그 '더불어 있음'의 주체가 누구인지 물어보자.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나와 타인이 함께'일 것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만약 우리가 그 점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더불어 있음'의 주체는 제3자를 뜻하는 '그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는 '그들'이라는 익명의 주체를 참된 의미의 실존이 아닌, 일종의 타락한 실존이라고 본다. '타락한 실존'이라는 말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매 순간 자신의 결단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시류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한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더욱 민감해진다. 그것이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이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민감해질수록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로써 나는 내 행동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내 삶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두고 어떤 결단도 내리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 속에 숨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p109)


하이데거에게 중요한 것은 박제화된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철학적 사색, 혹은 사유다. 오직 철학적 사색만을 가장 중요한 일과로 삼은 그의 단조로운 삶이 보여주듯 사유함이야말로 철학의 주제다.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를 물음을 통해 비로소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철학의 전기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문제의식이기도 한 물음은 무엇보다 은폐된 것을 열어젖히는 역할을 한다. 은폐된 것이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것, 즉 '탈은폐'가 바로 하이데거에게는 진리였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하이데거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이른바 '이성'을 통해 세계를 규격화된 틀 속에 집어넣어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일, 즉 은폐를 걷어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존재론은 존재를 존재자처럼 다룸으로써 은폐해온 종래의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역할을 떠맞게 된다.(p122)


하이데거 부분에서 인상적인 두 부분이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방법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내면에 집중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물음'이다.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에 부족하다는 자신의 판단으로 숨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열어젖혀서 탈은폐를 시켜야 한다. 닫힌 부분을 치료하려면 우선 살이 째는 고통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스스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감히 탈은폐 시켜서 본래의 모습을 찾게 해야 한다.


이 책만으로는 현상학의 정의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후설과 하이데거가 언급한 부분 중에 어떤 부분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고 어떤 부분이 의견의 차이가 있는 부분인지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똑같은 현실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가오는 부분이 많았다.


1) 어떤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은 수많은 가능성과 의미를 내포한 현실 중 그 가능성, 의미 하나가 나에게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

2)  객관적으로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주관을 전제로 타자의 주관을 인정하는 태도이며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라는 점.

3)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온전한 삶이라는 것은 스스로 성찰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이 내린 판단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4) 사유의 방식은 감춰두었던 의문, 문제 등을 과감히 탈은폐 시킴으로써 은폐를 시켰던 이유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그 본질을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점, 이것이 곧 사색이라는 점


특히 하이데거의 관점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아서 그의 저작들을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저작 중에 <존재와 시간>, <사유란 무엇인가>이 있는데 과연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사유란 무엇인가>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니 일단 이건 다음에 미뤄야 겠다. 예전에 니체의 그 책을 읽다가 도무지 이해가 안가서 아직도 먼지가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하이데거 책을 바탕으로 국내 저자들이 다시 풀어낸 2차 도서를 중심으로 읽어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이 출판사 김영사의 <지식인마을> 시리즈인데 하나의 주제 대해서 두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체가 40권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이 책 한 권을 보더라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이 책을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된 시리즈인데 관심가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권 한 권 책을 채워가는 재미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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