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제목 부터 보면 '이 책 제목 참 못 지었네.' 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에 관련된 책은 너무나도 많이 나와 있고, 어쩌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무분별하게 소비가 된다.

'행복' 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 특별하지만 일상이 되어버렸고, 추구해야 하지만 꺼리고 싶은 '행복'이 되어 버렸다.

모두들 '행복', '행복' 이라 하다보니 피로해졌고, 그들이 말하는 방식은 거의 유사하다. 그렇기에 더욱더 '행복'에 대해서 말하는 책들은 쉽게 손이 잡히지 않았다.


얼마 전에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읽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 놓았다. 그러면서 언급된 책이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라는 문구를 보고 나서 과연 어떤 근거로 저런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은 '행복'에 관련된 다른 책들과는 달리 개인적 경험과 감성적인 방법의 '행복'이 아닌 과학적인 실험과 근거를 바탕으로 행복을 논한다 했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제목 『행복의 기원』을 만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2천년 동안 사람들에게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내재되어왔다. (삶의 목적 = 행복)

(삶의 목적 = 행복)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공식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본 이 책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삶의 목적을 정의한다. 바로 (삶의 목적 = 생존)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우리가 행복해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새로운 접근이 마음에 든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p64)


다시 행복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생존하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행복은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인가?


우리는 흔히 행복이라고 하면 로또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얻는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물질적인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는 답은 행복과 관련된 것은 '사람'이다. 우리들이 결국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 교수 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p84)


미국 다트머트 대학의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저면한 뇌과학자로 꼽힌다. 최근 그는 자신의 책에서 큰 질문을 하나를 던졌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 (p85)


약 10여 명의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정글을 나와 초원 생활을 하며 집단의 크기는 150명 정도로 커졌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하게 됐다. 이처럼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는 타인의 존재였다는 것이 최근 널리 각광받는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 가설'의 핵심이다. (p86)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원인은 달라도 기능은 같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다. "너 아직도 TV보니? 당장 나가서 여자친구 붙잡아!" 사회적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다. (p87)


우리의 뇌는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동일하게 받아들인다.

책에서도 언급된 흥미로운 실험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진통제로 많이 먹는 타이레놀을 사회적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먹을 경우 육체적 고통을 겪을 때 완화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고통이라는 우리의 생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요소로 뇌는 그 위협을 먼저 판단해서 전달하고, 그 위협을 막으려 한다.


그런데 대단히 안타까운 견해가 있다.

바로 행복은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만약 행복이 노려글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원래 행복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있다면 어떨까? 가뜩이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게다가 플라스틱수저 라는 말까지 도는 상황에서  행복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면. 갑자기 힘이 쭉 빠지고 나는 행복유전자를 받고 태어났기를 하는 개인적 이기심으로 돌아간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그래도 행복에 있어서 유전적 개입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


학계의 정설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덜 알려진 사실이 바로 행복과 유전의 관계다. DNA가 행복을 완전히 결정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학자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다른 통계적 수치지만, 학계의 통상적인 견해는 행복 개인차의 약 50%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p133)


여기서 행복과 관련된 유전적 개입은 '외향성'이라는 특성이다. 외향성 즉, 서은국 교수가 말하는 '사람쟁이'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타인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결국 외향성이 행복을 만드는 구나.

이렇게 또 다시 내향적인 나같은 사람은 또 다시 좌절해야 하는가? 다시 이 책을 덮고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Quiet』로 돌아가야 하는가.


책에서도 내향적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두둔하는 것 같지 않다. 단순히 어색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고 권한다. 보통 책들을 이렇게 얘기하면서 '그래도 유전적인 것을 극복하고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라는 탈출구를 하나 만들어 놓는데 이 책은 이런 말을 남길 뿐이다. 시크하지만 밉지 않다.


P145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한다. 어색함 대 즐거움.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새로운 만남이 주는 즐거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래된 연인과의 데이트를 택하지만, 실제 경험을 측정하면 낯선 이성과 식사한 후의 즐거움이 더 크다. 그러니 내향적인 사람들이여, 어색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볼 필요가 있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책인데 좋은 책을 읽고 리뷰를 하다보니 말하고 싶은 것이 많다. 지금까지 언급된 부분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다.


■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

■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우리의 뇌도 그런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사실

■ 행복은 외향성이라는 유전자를 통해서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다는 사실


이외에 다른 흥미로운 부분이 몇 부분이 더 남아있다.

이 책은 리뷰가 두 번으로 이어져야 겠다.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런 책, 좋은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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