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본형 작가의『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를 읽었다.

중고서점에서 살짝 빛바래고 표지가 살짝 얼룩졌지만 '구본형'이라는 이름 하나로 선택한 책이었다.

이 책의 부제에는 '1시간에 읽는 구본형의 자아경영' 이라고 적혀 있다.

150 쪽 정도의 얇은 책이지만 한번 쯤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다는 차원에서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어제 집에 오는 길에 아내의 핸드폰을 보았다. 내가 '남의 편'으로 저장이 되어있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왜, 남의 편이라고 저장이 되어 있어? 이거 아니었잖아."

아내 曰, '요새 자기가 너무 예민하게 굴어서 속상해서 그렇게 저장했어."

나도 조금 느낀 부분이다. 최근에 이상하게 살짝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밖에서는 딱히 풀 때도 없고, 혼자 시간을 가지려 해도 쉽지 않고 하다보니 가장 편한 아내에게 싫은 소리, 짜증을 유난히 부렸던 거 같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역설적이게도 그러다보니 가장 소홀해진다. 


이렇게 예민해진 시점에서 무언가 조금 나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차분하고 조용히 생각하기, 그러면서 풀리지 않은 일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이게 내 방식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생각의 정리 시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고 우연찮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최근 몇 년 간은 정말 '책'에 흠뻑 취해 있었다.

책이라는 것은 보통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 이지만, 얼마 동안은 그것 자체가 나에게는 목적이 되어 버렸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회사에서는 '책'을 읽는 이미지로 서서히 자리잡히고, 싫지는 않지만 단지 그것으로 표현되는 내 모습이 싫어졌고, 내가 만들어낸 틀 속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아왔다.


이제는 다시 새롭게 생각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예전부터 느낀 것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여행', '독서'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고, 방안 구석에서 책을 읽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이제는 조금 더 다양하게 나를 풀어놓아보려 한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어보기도 하고, 낯설은 거리를 걸어다니며 그 낯설음에 어색해보기도 하며, 인생과 인생의 만남이라는 다른 사람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보고 싶다.

책을 통해 배우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지는 않게 할 것이다. 

여전히 꾸준히 읽어나갈 테지만, 행동으로 바뀌지 않고 단순히 내 고집을 유지시키기 위한 책은 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렇게 차분히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조금씩 생각이 정리가 된다. 구본형 작가의 책은 이렇게 한 번씩 나를 돌아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찌보면 흔히들 말하는 자기개발서 같지만 작고하신 구본형 작가의 책에서는 그분의 철학이 느껴지고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불편하지 않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의 마지막으로 추석이 지난 다음 날 새벽 글을 마친다.


##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될 때, 그리하여 한없이 처량하고 무기력해질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충고를 진심으로 따라보는 것도 좋다.

첫째,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둘째,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 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셋째,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즐겨라.

넷째, 부탁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마라.
늙은이의 기우와 잔소리로 오해받는다.

다섯째,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 마라.
로미오가 한 말을 기억하라.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버려라."

여섯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약간의 심미적 추구를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늙어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가엾어 보인다.
몇 번 들어주다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덟째,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 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다가 분노 속에서 죽게 될 것이다.

아홉째,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인류의 역사상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로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까지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다.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좋은 인생 아닌가. 마지막 순간에 살 한 점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닳고 닳은 뼈와 질긴 가죽 하나 달랑 남기고, 새털처럼 가볍게, 바람에 날리듯,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으면 참 괜찮은 인생 아닌가. 먼 길을 가야 하는 저승사자도 그 그벼움에 짐을 덜어 고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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