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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通)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주역 사상의 핵심입니다.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려 있으면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

양적 축적은 결국 질적 변화를 가져오며,

질적 변화가 막힌 상황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열려 있을 때만이 그 생명이 지속됩니다.

부단한 혁신이 교훈입니다.



정체성의 기본은 독립입니다

국가의 경우든 개인의 경우든

정체성의 기본은 독립에 있습니다.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아픈 역사와 현실을 자부심으로 껴안는 

치열한 독립의지가

정체성의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관해난수 (觀海難水)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합니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자유

자유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습니다.

첫째, 만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자신을 두기 때문입니다.

셋째, 다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이 가로 막으면 돌아갑니다.

분지를 만나면 그 빈 곳을 가득 채운 다음 나아갑니다.

마음을 비우고 때가 무르익어야 움직입니다.

결코 무리하게 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허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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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p49
슬픔이나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해주는 기쁨, 작은 기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까닭도, 진정한 기쁨은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약 물(物)에서 오는 것이라면 작은 기쁨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어렵겠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믿어도 좋다. 수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p65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할 것이라고 믿는다.

p75
'부모의 일생'이란 결국 아들딸을 길러서 어디에다 빼앗기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척에서 조석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치마 끝에 매달리는 어린 시절과는 달리, 점차 장성해서 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부모의 영향권을 벗어나버린다는 점에서 이 경우 역시 아들을 빼앗긴 것과 벼로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p90
제가 어머님께 바라고 싶은 것은 젊은 사람한테 자꾸 배우시라는 것입니다. 옛날 같지 않아 이제는 점점 젊어가는 노인이 되셔야 합니다. 진정 젊어지는 비결은 젊은이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p92
가는 척 하던 겨울이 과연 역습해왔습니다.
겨울의 심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기다리던 사람을 맞이하듯 조금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p105
저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p117
역마살은 떠돌이 광대넋이 들린 거라고도 하고 길신이 씌운 거라고도 하지만,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꿈 찾아나서는 방랑이란 풀이를 나는 좋아합니다. 하늘 높이 바람 찬 연을 띄워놓으면 얼레가 쉴 수 없는 법. 안거(安居)란 기실 꿈의 상실이기 쉬우며 도리어 방황의 인고 속에 상당한 분량의 꿈이 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헤미아의 맑은 수정(水晶)' 은 멀고 먼 유랑이 키워낸 열매라고 믿고 싶습니다.

p136

개개인이 각자 자기 완결적인 덕성을 도야해가는 개인주의적 결백성보다는 나는 이것을, 너는 저것을 갖추어 혼자로서는 비록 인격적으로 빈 곳이 많을지라도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연대성의 든든한 바탕에 인격의 뿌리를 내림으로써 사회적 미덕 속에서 개인적 덕성을 완성해가는 쪽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의 성격적 결함을 두호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p147
'아름다움'이란 바깥 형식에 의해서라기보다 속 내용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규정되는 법임을 확인하는 심정입니다.
서도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자획의 모양보다는 자구에 담긴 뜻이 좋아야 함은 물론 특히 그 '사람'이 훌륭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작품과 인간이 강하게 연대되고 있는 서도가, 단지 작품만으로 평가되는 인간 부재의 다른 분야보다 마음에 듭니다. 좋은 글씨를 남기기 위하여 결국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상식이 마음 흐뭇합니다. 인간의 품성을 높이는 데 복무하는 '예술'과 예술적 가치로 전화되는 '인간의 품성'과의 통일, 이 통일이 서도에만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근묵자의 자위이겠습니까.

p157

이번 여름 패연히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다가 문득 창문 가득히 물씬 풍기는 흙내에 깜짝 놀랐습니다. 2층에서 보는 빗줄기는 더욱 세차고 길어서 장대같이 땅에 박혀 있었고 창문 가득한 흙내는 그 장대 빗줄기 타고 오는 - 맑은 날 뭉게구름 되려고 솟아오른 흙내였습니다. 지심(地心)의 깊음에 비하면 얼룩진 땅 한 켜야 종이 한 장 두께도 못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뱀을 죽이면 반드시 나무에 걸어두었습니다. 흙내를 맡으면 다시 살아나서 밤중에 이불 속으로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흙내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p174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경우,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그릇 가운데를 비움으로써 생긴다.
'없음'[無]으로써 '쓰임'[用]으로 삼는 지혜. 그 여백 있는 생각, 그 유원한 경지가 부럽습니다.

p182
오늘은 손님이 오신다고 아침 일찍 화단을 가꾸었습니다. 싸아한 풀냄새 흑냄새에 묻혀본, 실로 오랜만의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맨드라미, 채송화, 창포, 팬지, 하국 등 그리 잘나지도 못한 꽃들이지만, 뚱딴지, 쇠비름, 클로버, 가라지 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이루어내는 자연스러움은, 빼어난 꽃들이 주는 경탄과는 달리, 규칙과 인공의 질서로 인해 각이 진 마음들을 포근히 적셔줍니다.

p190
문자를 구하는 지혜가 올바른 것이 못됨은, 학지어행(學止於行), 모든 배움은 행위 속에서 자기를 실현함으로써 비로소 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항시 당면의 과제에 맥락을 잇되, 오늘의 일감 속에다 온 생각을 가두어두지 않고 아울러 내일의 소임을 향하여 부단히 생각을 열어나가야 함이 또한 쉽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p199
사람들은 누구나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는 법이지만 어제와 오늘의 중간에 '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큼직한 가능성, 하나의 희망을 마련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p200
문학서적은 고전을, 과학서적은 최신판을 읽으라.

p202
사람의 아름도움도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그 사람의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 내밀한 인격이 되어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첩경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과 권부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p212
과연 역사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살아 있는 대화이며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실감압니다.

p217
군자성인지미(君子成人之美), 군자는 타인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며,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순조롭기가 흡사 물고 같다.

p243
상처가 아물고 난 다음에 받은 약은 상처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기에는 너무 늦고, 도리어 그 아프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기가 엇갈려 일어난 실패의 사소한 예에 불과하지만, 남을 돕고 도움을 받는 일이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되기는 커녕 더 큰 것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p264
갑오농민전쟁은 그 참담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아시아 민족운동의 큰 봉우리로서, 그리고 그 이후 한국근대사의 골간을 이루는 의병투쟁, 독립전쟁의 선구로서 찬연히 빛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누가 프랑스혁명을 실패로 끝났다고 하는가?"라는 앙드레 말로의 노기 띤 반문을 상기하게 됩니다.

p271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 -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 합니다. [논어] 옹야편에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知者 不如樂之者)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하여 '지'(知)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好)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로 보는 데에 비하여 '낙'(樂)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고 있는 경지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p277
실천과 인식이라는 두 개의 다리 중에서 '실천의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천활동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를 다시 실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진실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실천은 인식의 원천인 동시에 그 진리성의 규준이라 합니다.
이처럼 '실천 -> 인식 -> 재실천 -> 재인식' 의 과정이 반복되어 실천의 발전과 더불어 인식도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갑니다. 그러므로 이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결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것은 곧 인식의 좌절, 사고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고, 발전하지 못하는 생각이 녹슬 수 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p281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p310
우리는 삶의 어느 터전에 처한다 하더라도 자기 몫의 일에 대하여, 이웃의 힘겨운 일들에 대하여 결코 무력하거나 무심하지 않도록 자신의 역량과 심정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p315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햇빛 한 줌 챙겨줄 단 한 개의 잎새도 없이 동토(凍土)에 발목 박고 풍설(風雪)에 팔 벌리고 서서도 나무는 팔뚝을, 가슴을, 그리고 내년의 봄을 키우고 있습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겨울을 지혜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p325
도울 능력은 있되 만남이 없는 관계와 만남이 있되 도울 힘이 없는 관계에 대하여 그날 밤 늦도록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의 의미에 관하여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만 그때의 아픈 기억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p366
치열한 생존경쟁이 없어지고 나면 폭력과 비리와 패륜도 흡사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무력해지고 이빨 빠진 맹수처럼 무해한 것이 되어버리는가 봅니다. 생존을 위한, 또는 치부(致富)나 허영을 위한 과도한 추구가 모든 폭력과 비리의 근거가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p372
물을 거울로 사용하던 옛날의 이야깁니다만 무감어수(無鑑於水)라 하여 물에다 얼굴 비춰보지 말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이는 외모나 말이나 현재를 보지 말고, 외모 속의 실체와 말 이후의 실천과 현재가 잉태하고 있는 미래를 직시하라는 뜻이며, 그도 그 시대의 역사적 당위에 준거하여 비춰야 한다는 뜻이라 믿습니다.

p374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유지매미와 참매미는 수명이 6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인 6년 가운데 5년11개월을 고스란히 땅 속에서 애벌레로 살아야 합니다. 땅 속에서 나무뿌리의 즙을 먹으며 네 번 껍질을 벗은 뒤 정확히 6년째 되는 여름, 가장 날씨 좋은 날을 택하여 땅 위로 올라옵니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힘은 엄청나서 곤충학계에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왔다는 기록도 보고되어 있을 정도라 합니다. 땅을 뚫고 나온 애벌레는 나무등걸을 타고 올라가 거기서 다섯번째이며 마지막인 껍질벗음을 합니다. 이 순간 애벌레는 비로소 한 마리의 날개가 달린 매미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미는 화려하지만 지극히 짧은 생애를 끝마치도록 운명지어져 있습니다. 불과 4주일 후에는 생명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매미 중에는 이 짧은 생애를 위하여 무려 17년이나 땅 속에서 사는 종류도 있다고 합니다. 긴 인고의 세월에 비하여 너무나 짦은 생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매미가 노래하는 것은 즐기기 위한 유희가 아니라 종족보존을 위하여 암매미를 부르는 것이라 합니다. 그것도 집단으로 줄기차게 울어제껴야 암매미가 날아올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겨레의 번영을 갈구하는 아우성인 셈입니다. 약육강식의 자연계에서 더욱이 새들의 맛있는 먹이이며 비무장인 매미가 저처럼 요란 합창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당당히 소리치는 매미들의 사랑과 용기야말로, 수많은 수목들과 날새들과 짐승들은 물론, 한 포기 풀이나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든 살아 있는 생물들에 대한 힘찬 격려이며 생명에의 예찬입니다. 맴-맴-찌-찌. 매미들의 아우성 만세.

p388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도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p394
고비 사막에서 이는 황진이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고 서해를 황해로 만들고 다시 우리 눈에까지 날아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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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의 달걀]
콜럼부스의 달걀은 발상전환의 전형적 일화입니다.
발상의 전환 없이는 결코 경쟁에 이길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메시지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예찬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했지만 콜럼부스는 달걀의 모서리를 깨트림으로써 쉽게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상 전환의 창조성이라고 하기보다는 생명 그 자체를 서슴지 않고 깨트릴 수 있는 비정한 폭력성이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감히 달걀을 깨트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둥근 모양인 것은 그 속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모 지지 않고 둥글어야 어미가 가슴에 품고 굴리면서 골고루 체온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원형의 모양으로 만들어 멀리 굴러가지 않도록 하거나, 혹시 멀리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 한 것 모두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고뇌의 산물입니다. 그러한 달걀을 차마 깨트리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것을 서슴없이 깨트려 세울 수 있는 사람의 차이는 단지 발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간성의 차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콜럼부스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것을 천재적인 발상전환이라고 예찬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콜럼부스가 도착한 이후, 대륙에는 과연 무수한 생명이 깨트려지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생명이 무참하게 파괴디는 소리는 콜럼부스의 달걀에서부터 오늘날의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자유]
자유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관해난수 觀海難水]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합니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팽이가 꼿꼿이 서있는 때를 일컬어 졸고 있다고 하며
시냇물이 담을 이루어 멈출때 문득 소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묵언은 선한 것을 위하여
자리를 비우는 내성의 고요함이며 겸손함입니다.

[중지동천 衆志動天]
"많은 사람들의 뜻이 모이면 하늘도 움직일 수 있다."
중지가 곧 하늘의 뜻이라고 읽어야 옳습니다.
왕보다는 사직이, 사직보다는 민이 더 중하기 때문입니다.

[한 발 걸음]
우리 방에서 가장 빠른 20대의 청년과 50대의 노인이 달리기 경주를 했습니다.
청년은 한 발로 뛰고, 노인은 두 발로 뛰는 공평한 경기였습니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50대 노인이 거뜬히 이겼습니다.
한 발과 두 발의 엄청난 차이를 실감케 해준 한 판 승부였습니다.
징역살이에서 느끼는 불행의 하나가 바로 이 '한 발 걸음'이라는 외로운 보행입니다.
실천과 인식이라는 두 개의 다리 중에서 실천의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천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갖게 되며
이 인식을 다음 단계의 실천에 적용하고,
그 실천 과정에서 인식의 진리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실천은 인식의 원천인 동시에 그 진리성의 규준이 됩니다.
이러한 실천이 배제된다는 사실은 곧 인식의 좌절, 사고의 정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의 양심]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받은 충격은 차라리 허탈에 가까운 것입니다.
인간의 양심에 대한 최후의 신뢰가 무너지는 허탈감입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자행한 만행이라는
일회적 사건에 대한 분노나 충격을 넘어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좌절이라고 해야 합니다.

[통 通]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주역 사상의 핵심입니다.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려 있으면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
양적 축적은 결국 질적 변화를 가져오며,
질적 변화가 막힌 상황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열려 있을 때만이 그 생명이 지속됩니다.
부단한 혁신이 교훈입니다..

[정체성의 기본은 독립입니다]

국가의 경우든 개인의 경우든
정체성의 기본은 독립에 있습니다.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아픈 역사와 현실을 자부심으로 껴안는
치열한 독립의지가
정체성의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간디의 물레]
진보는 단순화입니다. Progress is Simplification.

[충무공 이순신 장군]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는 충무공 동상 속에는
이순신 장군이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무거운 구리 옷을 벗어 버리고 한산섬 앞바다에
서 있었습니다. 바람에 옷자락 날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인간 이순신의 생환입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우상은
사람들을 격려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합니다.
진정한 천재와 위인은 사람들의 한복판에 서 있어야 합니다.
가장 강한 사람이란 가장 많은 사람들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며,

가장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릇을 깨트리고]
성공은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성공은 가득히 넘치는 물을 즐기는 도취임에 반하여, 실패는 빈 그릇 그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입니다. 저는 비록 그릇을 깨트린 축에 속합니다만,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는 자주 그 사람이 커진다는 역설을 믿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는 법이지만
어제와 오늘 사이에
밤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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