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들이 보인다. 그 중 한 사람이 '다자이 오사무' 다. 국내의 많은 소설가들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 내가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은 대표작인 《인간실격》 이다. 이 작품은 1948년 7월에 출간된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가 스스로 삶을 정리하고 한 달 후에 발표된 그의 삶이 짙게 배인 자전적 소설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인간실격》을 읽고 정리한 글을 보니 슬프거나 깊이 가라앉을 때 그 반대되는 작품들을 읽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더 깊숙히 가슴 속 심해를 들여다보듯이 깊이 슬퍼하거나 아파할 수 있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그러하다라고 적혀있다. 그 당시까지 읽었던 작품 중에서 가장 어두웠던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의 거의 마지막 작품을 먼저 접하고 나서 창작집 《만년》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작품은 반대로 그의 첫 창작집으로 1936년 6월, 27살의 나이에 발간된 책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첫 창작집이 발간되기 이전에 세 번의 자살 시도를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런 그의 경험은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반영되고  《인간실격》으로 이어진다.

 

어떤 여자와 함께 동반 자살을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으나 혼자 살아남게 된 후 요양원에 있게되는 이야기를 담은 단편 <어릿광대의 꽃>과 스스로 삶을 정리하려고 시도하려다 마음을 바꾼 단편 <고겐의 신>은 그의 삶을 토대로 쓰여진 작품이다.

창작집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단편들은 자살이라는 소재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역시 그것으로 삶을 정리했다.


과연 다자이 오사무에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다 읽고 나서 작품 해설을 찾아서 읽었다. 거기에는 삶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을 한다. 그것을 읽고 너무 비약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편으로는 그가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하는 조금의 위안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최근에는 단편소설에 관심이 생겨서 단편들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중 하나는 작품 속에 작가가 곧잘 등장한다는 점이다. 흔히들 1인칭, 3인칭이니 하면서 주인공 혹은 제3자를 통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고들 하는데 작품 속에서 스스로 작가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게 때로는 묘미다. 그 외에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의 단편 속에 들어있는 독특한 매력과 색깔이 있다. 그리고 배경을 색으로 표현하라 한다면 이번 작품은 회색으로 표현하고 싶다.


이런 작품을 읽고 나서 해설을 보면 역시 평론가가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 느낀다. 내가 읽으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을 잘 집어낸다. 느꼈던 점은 《인간실격》을 읽을 때는 정말 깊이 침체되어 읽은 기억이 있다. 이것 역시 색으로 표현한다면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소재가 있는 단편도 분명히 있는데 《만년》에서는 그렇게 깊이 침체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직 젊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속에는 항상 꺼지기 쉬울지라도 작은 촛불이 항상 비추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 작은 빛이 미묘하게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잎>의 시작 부분이다.

죽을 작정이었다. 올해 설, 이웃에서 옷감을 한 필 얻었다. 새해 선물이었다. 천은 삼베였다. 쥐색 잔 줄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이건 여름에 입는 거로군.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마음 먹었다.


<고겐의 신> 마지막 부분에서 다자이의 분신인 주인공이 마음을 바꾸어 먹는 장면이다.

저승사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건 그렇고 담배란 참 맛있는 놈인걸. 대가가 되지 못해도 좋고, 걸작을 쓰지 못해도 좋다. 좋아하는 담배를 자기 전에 한 대, 일을 마친 후에 한 대, 숨길 게 뭐 있어. 그런 부끄럽지만 달고 단 소시민의 생활이, 내게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20대 후반에 이런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니 하는 존경어린 시선과 함께, 이런 예술가의 삶은 과연 무엇일까? 마치 스스로 작품을 위해서 그렇게 인생을 살아갔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해본다.

 

도서출판b의 다자이 오사무의 전집은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 이 책들도 앞으로 하나씩 다 찾아서 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한가지 고민거리는 출판사 열림원에서 《무진기행》의 저자인 소설가 김승옥 선생이 기획하여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한 권씩 출간할 예정이라 해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 하는 선택의 갈등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추천사를 남긴 배우 신하균과 가수 요조의 글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만약 다자이 오사무를 연기한다면 가장 적합한 인물이 신하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수 요조는 《인간실격》의 주인공인 요조를 따라서 이름을 지은 가수다. 소설 속에서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만 자기도 모르게 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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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몰랐었다. 가끔 이유없이 제목에 끌려 세계문학접집 중 몇 권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눈에 들었다. 어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번 <인간실격>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파격적이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왔다. 소설 속에는 따뜻함이 없다. 읽는 내내 침울하고 취해있고 무기력하고 안타까웠다. <인간실격> 제목 그대로 주인공 요조가 '인간 실격자'가 되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책을 읽고 나서 '다자이 오사무'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작가에 대한 소개가 <인간실격>의 내용이었다. 이건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작가의 자전적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소설 속 요조의 삶 속에서는 희망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과연 어떻게 저렇게 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작가가 그랬다. 아마 다자이 오사무의 유일한 삶에서의 탈출구가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자 소설 속 요조의 삶은 어떠했을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군 카나기무라에서 대지주 쓰시마 가문의 11남매 중 10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유모, 숙모, 보모의 손에 자라면서 정서불안을 얻게 된다.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해 귀족원 의원에 올랐던 지방 유지인 아버지로 인해 가문에 대한 경멸을 느끼면서도 유복한 환경을 누리며 독립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순적 태도에 내적 불화를 겪게 된다.


그는 학창시절 전교 1등을 차지하는 우등생이었으며 프랑스 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겨으로 도쿄제국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했으니 금세 흥미를 잃고 제적당한다. 대신에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좌익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요ㅗ)는 술과 마약에 빠져 여자들과의 문란한 사생활에 자주 구설에 올랐다. 대학 시절에는 술집 종업원 출신 내연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하다가 혼자 살아남게 되면서 자살방조 혐의를 받고 기소유예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후에는 동거녀의 외도에 충격을 받아 시도했던 자살 역시 실패하게 된다. 자신과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점차 염세주의자가 되어갔고 약물중독에도 벗어나지 못해서 강제 수용되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며 4번의 자살시도를 거듭했던 그는 1948년 6월 13일, 도쿄 미타캉의 타마강 상수원지에서 내연녀와 함께 투신자살하여 39살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글로써 무엇인가를 표현하면 글쓴이가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속의 깊은 내면의 부끄럽고 챙피하고 치욕스러운 것을 다 뱉어내어 표현해버리면 응어리진 것들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자이 오사무의 삶의 유일한 탈출구도 글 쓰는게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비관적인 현실인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무의미함을 표현하는 글귀가 많이 눈에 띈다.


P36

나한테는 재난 덩어리가 열 개 있는데, 그중 한 개라도 이웃 사람이 짊어지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충분히 치명타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일도 있습니다.


P62

저 백치 창녀들 품 안에서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었던 느낌하고는 또 완전히 다르게 이 사기범의 아내하고 보낸 하룻밤은 저한테는 행복하고 (이런 엄청난 말을 아무 주저없이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이 수기 전체에서 두 번 다시 없을 것입니다.) 해방된 밤이었습니다.


P82

저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했지만 '우정'이라는 것을 한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었고 (호리키처럼 놀 때만 어울리는 친구는 별도로 하고) 모든 교제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어서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느라 오히려 기진맥진해지곤 했습니다.


남의 집 대문은 저한테는 저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문 이상으로 으스스했고 그 문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용 같은 비린내 나는 짐승이 꿈틀거리는 기척을,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느꼈던 것입니다.


P134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요조(남성이지만 자꾸 여성이 떠오르게 된다.) 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가면을 쓴 인격인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세상 사람들 모두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지만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페르소나로 부터 얻게되는 피로함과 고통을 덜게 합니다. 하지만 요조에게, 다자이 오사무에게는 그게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 실격>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인간 실격자'라고 했지만 요조 자신에게, 다자이 오사무 자신에게 아쉬움이 남고 위로를 해주고 싶어하는 듯 하다.


P138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인간실격>은 어쩌면 삶이 힘든 사람, 처절하게 아픔을 겪는 사람이 읽으면 오히려 치유가 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픔을 겪는 이에게는 그저 행복만을 내세우는 위로보다는 읽을수록 아프고 안타까운 이런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질문을 하고 아픔을 모두 드러내고 다시 치료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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