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내가 공부하는 이유,  사이토 다카시 지음, 오근영 옮김, 걷는 나무



사내 블로그에서 한 블로거가 서평으로 남긴 책이다. 

평소 독서, 책, 공부와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진 터라 그 내용이 궁금했다.

어느 정도는 어떤 이야기를 할 지 예상이 되는 목차였지만,

한 번 씩 마음가짐을 상기시켜주는 차원으로 읽기에는 좋은 책이었다.

그 동안 독서와 글쓰기에 한 참 게을러져 있었는데, 

다시 한 번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본다.




책을 읽고 나서 엽서에 적어 놓은 글귀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물음이 유난히 크게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평범한 글귀이지만 어느 순간 찌릿! 하면서 다가오는 순간.

그 순간의 찰나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비로소 우리의 삶이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이 두 질문은 수시로 물어야 한다.

질문없이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일상에 매몰된다.

하루 하루 흘러가는 일상이 어떻게 보면 같은 것이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며,

그 물음의 답을 가지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자.

그 대답으로 사소한 실천과 행동들을

일상이라는 것에 녹여내고, 습관으로 만든다면,

그 일상은 소중한 담금질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스스로 그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된 한 구절을 적어 본다.

평소에 독서의 궁극적 목표를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와 비슷한 글귀가 있어서 그 글로 갈무리한다.


세계관이 하나인 사람은 세상을 하나의 방향으로만 이해한다.

그런데 잘못하면 내 생각에서 벗어나거나 조금이라도 다른 것들을 전혀 표용하지 못하는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다양한 나무가 자란 숲'을 키운 사람은 

그 안에 괴테라는 나무도 가지를 뻗고 도스토옙스키 나무, 플라톤 나무도 자라고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 주의와 기독교가 함께 살 수도 있다.

물론 전공이나 취향에 따라 숲의 기반이 되는 주종은 있겠지만

그 외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많이 자라 

내면에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하나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내면에 다양한 나무가 자란 숲을 키운 사람은

자신과 다른 생각도 진지하게 듣고

'그런 사고방식도 있구나.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와는 다른 생각도 있구나' 하고

자신을 더욱 확대하고 심화시키기 위한 공부로 받아들인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니체였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자기 내면 안에 있는 생각의 틀을 여러 개 꺼내보면서 이리저리 비교해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애쓴다.

한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겠는가?


- 내가 공부하는 이유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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