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22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도 한다. 그릇은 그릇 자체보다도 무엇을 담느냐가 더 중요하다. 똑같이 생긴 그릇이라도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된다. 하지만 보통 그릇이 똑같이 생기지 않고 담을 내용물의 특성에 따라 모양이 제각각이다. 밥그릇은 좁고 오목하지만, 국그릇은 좀 더 넓고 납작하다. 때로는 접시처럼 아주 납작한 그릇도 많이 쓰인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물 자체보다는 그 건축물에 사는 사람의 특성과 삶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삶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삶을 담는 그릇의 의미로 본다면 사회적 교감이 잘되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적 감정과 감각까지도 충분히 표현되고 발휘될 수 있도록 건축이 도와야 한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눈으로는 보아야 하고, 입으로는 먹어야 하고, 코로는 맡을 수 있어야 하고, 귀로는 들을 수 있어야 하고, 피부로는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것이다.

p167
시각장애인에게는 평소 위험요소가 많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만 살펴본다. 첫째는 '볼라드'라고 하는 차량이 보행로로 들어오지 못하게 설치해놓은 일종의 방해물이다. 자동차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볼라드는 대부분 화강석 돌덩이나 콘크리트로 제작한 뭉툭한 모양이다. 일반인은 그 사이로 아무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지만, 시작장애인에게는 그야말로 '지뢰'와 같은 존재이다. 대부분 걸려서 넘어지기 딱 좋은 무릎 높이인 것도 그 위험을 더하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볼라드를 둥근 파이프로 허리 높이까지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원래 목적인 차량의 보행로 진입을 막을 수 있고 사람이 무심결에 볼라드에 부딪히더라도 배 부분에 닿기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일 없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p226
우리나라 건물과 유럽 건물 사이에는 왜 수명 차이가 날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지역에 속해 있다. 따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분명해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다고 말하지만, 건축물 처지에서 보면 정말 견디기 어려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무더운 여름에는 40도에 가까운 더위를 이겨야 하고 추운 겨울에는 지방에 따라 영하 20도가 넘는 곳도 있으니 온도 차는 무려 50~60도를 넘나들게 된다.
우리나라 건물의 수명이 짧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름에는 건축물이 더위 때문에 팽창하고 겨울에는 추워서 잔뜩 수축하니 제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졌어도 수축과 팽창을 몇 십년 반복하면 오래 버틸 재간이 없다. 소위 건물이 골병이 든다 할 수 있다.

p228
일반적으로 건물을 이야기할 때 남방형, 북방형으로 나눈다. 남방형이란 더운 나라의 가옥형태를 의미하고 북방형이란 추운 나라의 것을 말한다.

타이를 비롯한 동남아의 주택들과 적도 인근에 있는 나라의 주택형식은 모두 남방형이다. 이들의 주택은 더울수록 지면에서 위로 올라가 마루를 설치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마루' 라는 말에는 '높다'라는 의미가 있다. 더운 지방에서 마루를 두어 바닥을 높게 설치하는 이유는 지면에서 멀어질수록 복사열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지면에서 아주 먼 곳에 있는 높은 산들의 만년설이 녹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지면에서 방사되는 복사열이 산 정상까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과 얼음이 녹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바람을 통해 열을 식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따. 마루 위의 열은 바람을 통해 식혀지고, 마루 아래의 다습한 공기 또한 바람의 영향으로 제거되는 효과를 보게 되어 시원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추운 나라의 주택일수록 지면과 가깝고 오히려 땅속으로 파고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바람의 영향을 덜 받고 추위도 피할 수 있다. 온돌을 비롯한 난방장치를 설치해서 추위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주택형식을 '북방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한옥은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인 높은 '마루'와 낮은 '온돌'을 같은 높이로 채택한 세계 유일의 주택 형식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시원한 마루인 대청에서 주로 생활하고 겨울에는 구들을 들인 온돌방에서 생활 했다.

p235

액체나 기체가 온도 차로 움직이는 것을 대류라고 하는데, 이 대류로 바람이 저절로 생긴다. 액체 또는 기체의 성질상 온도가 따뜻한 물질이 위로 상승하는데, 목욕탕 안의 물이 아래쪽보다 위쪽이 더 뜨거운 것은 대류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공기도 마찬가지이다. 공기가 데워져서 온도가 높아지면 따뜻한 공기는 대류현상으로 위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원래 공기가 있던 자리는 밀도가 희박해졌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다른 차가운 공기가 저절로 끌려오게 된다. 이러한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바람'이 생긴다.

한낮에 똑같이 햇빛을 받더라도 물질의 성질에 따라 온도가 다르다. 육지를 구성하고 있는 흙이나 바위, 모래 등은 빨리 데워지고 빨리 식는다. 그렇지만 바다를 구성하는 물은 천천히 데워지고 천천히 식는다. 그래서 한낮에는 빨리 데워지는 육지의 온도가 높고 바다의 온도가 낮으며, 반대로 밤에는 바다가 낮에 받았던 태양열을 육지보다 천천히 발산하기 때문에 바다의 온도가 육지보다 높다. 온도가 높은 곳의 공기가 위로 상승하게 되면 그곳의 공기가 희박해지므로 주변의 차가운 공기를 끌어들이는 작용을 하게 되면서 낮에는 온도가 높은 육지 쪽으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밤에는 온도가 높은 바다쪽으로 육지에서 바람이 불게 된느 것이다. 더 크게 보면 여름철에는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철에는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찬바람이 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겨울철 계절풍인 북서풍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지형의 특성상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1면만이 육지에 접해 있다. 이렇게 접해 있는 1면의 방향은 북서면에 비스듬히 있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 큰 대륙이 북서쪽에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게 바로 이유가 되어 여름철에는 바다 쪽에서 남동풍이 불고 겨울철에는 육지 쪽에서 북서풍이 불어온다. 만약 우리나라가 대륙에 접한 위치가 지금과 다르다면 바람이 부는 방향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반응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