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토요일에는 선릉역으로 출근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뉴스속보가 나왔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그 당시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이었다. 정치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더욱 무지했다.
군대 복무 기간을 줄여준다하여 훈련소에서 투표를 했었다. 같이 식사를 하시던 직장 상사분들은 너무나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충격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 후에야 알았다. 무관심 속에서 살아오다가 그제야 알았다. 어떤 삶을 살아왔던 분인지를.
이제는 더 안타깝고, 솔직히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망설여진다. 왠지 모르겠다. 이렇게 그것을 텍스트로 담아도 되는지도 몇 번을 생각해보았다.
즐겨듣는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8년간 직접 보고 들은 대통령의 글쓰기에 관한 책이란다. 그냥 듣고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서점에 주문을 했다. 다음날 부터 읽기 시작했다. 글쓰기 책은 맞는데 몇 번 울컥했다. 책 속에서 소개되는 두 대통령의 글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처음에 글을 쓰는 것을 망설이다가 무엇인가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정리해서 잘 담아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났다.
오늘은 왠지 긴 글이 예상된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故노무현 대통령의 글과 말에 대해서 보여준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아픈 글이다.
P243
1981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은 부림사건 변론에서 기득권을 내려놓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돈 잘버는 변호사의 길을 버리고 인권 변호사의 가시밭길을 택한 것이다. 그 이후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게 한 그의 생각과 외침은 다름아닌 이것이었다.
"우리 아들 딸들이 이런 세상에 살게 해서는 안됩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외친 단호한 그 한마디는 또 어떤가
"이의 있습니다."
용기있는 말이다.
여기서 용기라는 말은 故김대중 대통령이 자서전에 잘 나타난다
"우리는 아무리 강해도 약합니다. 두렵다고, 겁이 난다고 주저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리 약해도 강합니다."
말과 글은 바로 말하고 쓰는 그 사람을 뜻한다.
故노무현 대통령은 위와 같은 글을 남기고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인지 나타나지 않는가.
이 책의 저자인 강원국은 8년 동안 두 대통령을 모시면서 최고의 공부를 했다고 한다.
두 대통령은 최고의 문필가이자 연설가였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중 청와대에서 연설문에 가장 관심이 많았으며 자신들이 직접 참여해서 글을 쓰고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킨 분들이다. 많은 연설문을 연설비서관들이 직접 글을 쓴다. 하지만 두 대통령은 자신들의 생각과 글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수용하지 않는다. 말과 글이 곧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아래 글을 읽다보면 故노무현 대통령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그가 남긴 말과 글에 그가 묻어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비서관들에게 자신의 연설문에 대한 글쓰기 지침을 자주 주었다고 한다. 저자가 그 지침들을 정리한 글이다. 그답다. 그립다.
<2001년 12월 대선후보 출마 연설>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고 패가망신했다.(중략)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2007년 6월 제8회 노사모 총회 축하메시지>
“민주주의에 완성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합니다. 우리 민주주의도 선진국 수준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 관용, 통합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민주주의 완전한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나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같다’는 표현은 삼가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한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을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치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치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사람들은 뒤를 잘 안 보네. 단락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곳에서 응집력 있게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29.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멋있는 글을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것도 안 되네.
30.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1.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잇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2.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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