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름 석 자 '손석희' 그대로 언론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손석희 라는 말에는 신뢰라는 단어가 실과 바늘처럼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그리고 1956년 생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동안을 유지하는 '손석희', 어찌 그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예전부터 그와 관련된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언론비평과 인물비평에 탁월한 '강준만' 교수의 『손석희 현상』 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는 언론인 '손석희'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아마 12년 정도 전인 걸로 기억한다. 그가 내가 다니는 대학에 특강을 온적이 있었다. 장소 자체가 많은 인원을 채울 수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학생들이 계단에도 모두 앉고,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서서 그의 특강을 들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그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었다. 그 때의 특강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한 기억이 하나가 있다. 누군가 질문을 했다. "혹시 나중에 정치 쪽으로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 때 그의 대답은 "자신은 정치라는 것이 언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희미해지는 옛 기억이라 이런 말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예전에 홍준표 의원이 손석희 앵커에게 정치를 할 거냐고 묻는 질문에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 라고 재치있게 대답한 것과 비슷한 말이 아니었을까.




2013년, 손석희는 JTBC 보도총괄 사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며 종편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당시에 수 많은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그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으며, 왜 그가 그곳을 향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과연 그가 삼성과 관련된 보도를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주목했다. 그리고 손석희는 <JTBC 뉴스룸> 을 통해서 다시 앵커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뉴스는 달랐다. 아마도 그가 지금까지 언론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생각했던 많은 점들을 그곳에 녹여놓은 게 아닐까.


박성호 : 그래서 텔레비전 뉴스가 시청자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군요.


손석희 : 네, 텔레비전 뉴스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제가 요즘 뉴스를 분석적으로 보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건 있을 것 같아요.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스토리만 있고 히스토리가 없고 텍스트는 있는데 콘텍스트는 없고. 그게 가장 뼈아픈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계속 쫓아가면서 현상에 대해 보도는 하지만 그에 대해서 콘텍스트를 시청자들이 모르고 히스토리를 알 수가 없다면 시청자가 그 뉴스에 대해 깊이 알기도 어렵고 평가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는 여전히 백화점식 보도, 1분 30초짜리 보도거든요. 거기에 무슨 히스토리가 있고 콘텍스트가 살아남겠어요? 스토리와 텍스트만 살아남는 것이지. 현재 텔레비전 뉴스는 낮에 다 본 걸 화면과 기자 목소리로만 전달하는 것뿐이잖아요. 볼 필요가 없어진단 이야기지요. 더군다나 젊은 세대들이 TV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자기가 선택한 뉴스도 아니고, 자기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콘텍스트나 히스토리에 대해서도 인터넷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서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 그냥 1분 30초 동안 보도해주는 것에 대해서 무슨 매력을 느끼겠어요. 안 느끼지. 그럼 안 보는 겁니다. 그런 데서 오는 약점 아닐까요? 


- <손석희 현상> 中, p116 - 


손석희는 2015년 9월 21일 서울 동대문플라자에서 열린 중앙 미디어네트워크 창립 50부년을 기념하는 '중앙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행한 '뉴스룸의 변화' 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도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미디어 시장에서 언론사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정보 가운데서 중요한 정보를 고르고 이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석희는 어젠다 키핑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로 '소비자'를 꼽았다. 초기에 뉴스 소비자들은 단순히 '뉴스를 보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보를 제공하는 존재'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화두를 던지면 시청자들은 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네트워킹을 하게 된다"며 "이것이 JTBC 뉴스룸이 지향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지루하다는 인식도 있어서 반성하고 있다. 물론 손해 보는 상황도 발생한다. 시장에서 손해는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젠다 키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빨리 바뀐다고 해도 저널리즘이 미래적 가치로 지켜야 할 것이 어젠다 키핑"이라고 말했다.


- <손석희 현상> 中, p190 - 

그는 지금의 뉴스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세상은 변해가고, 수 많은 매체의 등장과 변화를 통해 뉴스 소비자들의 소비방식은 변해가는데 뉴스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토리에서 히스토리로,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로,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기사가 아닌 지속적인 화두제시로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된 방식의 뉴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대중에게 통했다.

나 역시 <JTBC 뉴스룸> 2부에 시작하는 앵커브리핑을 따로 모아서 보기도 했으며, 엔딩곡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는 딱딱한 뉴스에 사람 냄새를 진하게 묻어나게 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인터뷰에서 쉽게 보기 힘든 유명인들도 그에게 선뜻 시간을 내주며 팬이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차가운 시선으로 뉴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사람에게는 지극히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이기에 인터뷰를 꺼리는 사람들, 그리고 뉴스를 외면했던 이들이 그가 진행하는 뉴스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가 진행하는 앵커브리핑에서 몇 번이나 울컥했나 모른다.



작년 11월 어느 날의 앵커 브리핑이다.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단원고 기억교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멈춰야 했던 그 교실이 안산 교육청 건물로 임시 이전해

문을 열었습니다.

교실엔 오늘도 수업이 진행되는 양 온기가 느껴지고 책상위엔 소소한 낙서의 흔적이 남아있군요.

또래 친구들은 작년에 수능을 보았을 테고 재수를 한 친구들은 며칠 전 수능을 마쳤을 테지요.

그리고 ... 김관홍 잠수사.

세월호의 민간잠수사였다가 몸과 마음을 다쳤고 지금은 저세상으로 가버린 사람.

차가운 바지선 위에서 담요 한 장에 의지해 잠을 잤고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아이들을 두 팔로 끌어안고 나왔던 사람.

잠수사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은

"뒷일을 부탁합니다" 였습니다.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는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변호인이 이야기한 '여성의 사생활' ...

우리는 그것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사사로운 모든 관계를 끊고, 가족을 만나지 않고, 1분 1초도 쉬지 않고 일한다 했지만...

오히려 개인의 사생활과 사사로운 친분관계, 이것은 대통령이라고 해도 결코 예외가 아닌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행복한 대통령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17살의 아이들이 기울어져가는 그 배에서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있어야 했던 그 시간에,

비록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강변이 나왔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했어야만 했던 

그곳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었는지를 궁금해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잊지 않으려 오늘도 질문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뒷일을 부탁'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삼십대 중반의 나이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이제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다니는 회사에 선배 뿐만 아니라 후배도 하나 둘씩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연 나는 아이들과 후배에게 어떤 아빠, 선배인지 모르겠으나, 

항상 누군가를 보고 나도 조금씩 닮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사회에서 그런 분이 이제는 한 명은 분명히 생겼다는 것에 대해 고맙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굳은, 곧은 의지와 변함없는 신념,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항상 중립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 자세,

집요하고 불합리한 것에 대해서 냉정해 보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도 따뜻해보이는 모습.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한 번 나도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20년 뒤, 30년 뒤의 나는 과연 어떠할까. 조금씩 이렇게 배우다 보면,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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