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3년 전에 한 번 읽어본 책입니다. 소설은 한 번 읽고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그녀의 언니 '샬롯 브론테' 덕분에 다시 한 번 『폭풍의 언덕』을 잡게 되었네요. 지난 여름에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매력적인 인물인 제인 에어의 삶 속을 함께 거닐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고 자신의 진정한 내면에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사랑과 삶을 선택해나가는 모습에 빠져 있었지요. 당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의 삶을 알고 나면 『제인 에어』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알게 됩니다. 보통 한 작품을 읽으면 그 작가의 다른 책으로 뻗어 나가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렇다면 그녀의 동생은 어떤 작품을 썼을까가 궁금했습니다. 희미해진 기억을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폭풍의 언덕』으로 들어갔지요. 


『폭풍의 언덕』은 액자구조 입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것이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히스클리프에게 세를 얻어서 드러시크로스에 사는 '록우드' 라는 인물이 '넬리 딘' 이라는 하인에게 이야기를 듣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워더링 하이츠와 드러시크로스라는 두 공간적 배경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복수라는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 등장인물 관계도


언쇼 어른은 어느 날 리버풀에 다녀오면서 부모없이 떠돌던 한 남자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예전에 죽은 아들의 이름인 '히스클리프'라고 지어줍니다. 언쇼의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게 됩니다. 반면에 딸인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언쇼가 죽으면서 상황에 변하기 시작합니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학대하고 집안의 하인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캐서린은 린튼 집안의 에드거와 결혼하게 되죠.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납니다. 그러던 어느날 모든 것이 변한 히스클리프가 나타납니다.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죠.


■ 이야기 속의 시대는?


『폭풍의 언덕』을 지금의 시각으로 읽다 보면, 이해가 잘 안되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1847년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소설 속에서 상당히 불편했던 점은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의 아내가 된 후 워더링하이츠에 데리고 왔을 때의 모습, 이사벨라가 죽은 후 린튼이 아버지 히스클리프에게로 가는 순간, 캐서린(에드거의 딸)이 린튼과 결혼하자 히스클리프가 며느리를 데려가야 한다고 하는 장면입니다. 아내, 자식, 며느리가 되는 순간에 철저하게 위계가 생기며 모든 것이 남자의 권한으로 넘어옵니다. 그래서 그 사회적 틀에 의해서 히스클리프에게 억압되는 인물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를 보게 되면 결국 언쇼 집안과 린튼 집안의 재산을 모두 그가 차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상속'이라는 방법을 택합니다. 즉 자신의 아들인 린튼을 캐서린(에드거의 딸)과 결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드거가 사망했을 때 재산은 캐서린의 것이 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캐서린의 남편인 린튼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도 지금과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인물 관계도를 보면 캐서린(에드거의 딸)은 린튼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린튼, 히스클리프가 죽은 후에는 아마도 헤어튼과 결혼을 하게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를 보면 린튼은 캐서린의 이종사촌이고 헤어튼은 고종사촌입니다. 이건 뭐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는 왕족과 귀족들은 혈통을 유지한다는 명목과 상속과 같은 금전적 요소들 때문에 근친혼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합스부르크 가에서는 합스부르크 립(주걱턱이라 불리는 하악전돌증)과 같은 유전병도 등장을 한 것입니다. 


■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복수와 아동 학대

▲ 윌리엄 와일러 『폭풍의 언덕』, 1939


어쩌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과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비극의 씨앗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히스클리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집요합니다. 그가 원한을 품었던 이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까지 복수의 대상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자신의 아들까지 이용을 합니다. 이런 부분은 읽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힌들리가 죽은 후, 히스클리프는 여러 수단을 통해서 워더링하이츠를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을 철저하게 세뇌교육을 시킵니다. 헤어튼은 분명 여러 재능이 있지만, 육체적인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죠. 소설 속 이야기지만 가장 화났던 부분은 비록 사랑하지 않은 여자 사이에서 낳은 아이지만 자신의 아이를 철저하게 자신의 계획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린튼은 자신의 아버지의 행동, 목소리 하나하나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속의 악함을 드러내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히스클리프의 아들이긴 하구나 하면서 동정심이 확 떨어지기는 합니다.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에드거의 딸)을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기 위해 가둬두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캐서린이 소리지르고 화를 내자, 히스클리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며 캐서린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가 가장 속으로 화가 많이 났던 거 같습니다.


아마 히스클리프가 캐서린과의 사랑을 이루었다면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제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그가 있어서 『폭풍의 언덕』 이라는 소설 속으로는 깊이 빠져들었지만, 현실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폭풍의 언덕』


이 작품은 『모비딕』,『리어왕』 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힙니다. 그리고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싯 몸은 세계 10대 소설의 반열로 이 작품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감은 팽팽하게 유지됩니다. 가계도를 그리면서 까지 읽을 정도로 서로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갈등을 읽어내려고 했습니다. 히스클리프의 악마적인 모습에 치를 떨면서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 하지만, 그것이 다른 계기가 아니라 히스클리프의 죽음이 원인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남기는 합니다. 해피엔딩을 꿈꾸는 독자의 일 인이거든요.


         ▲ 1834년 브론테 자매의 남동생 브란웰이 그린 초상 (왼쪽부터 앤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샬롯 브론테, 가운데는 브란웰인데 그가 지운 것으로 보임)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 도 상당히 인상적이며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 국교회 목사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세 살때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는 언니들과 함께 비용이 싼 기숙학교에서 생활을 했는데 두 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 후 아버지는 살롯과 에밀리를 데리고 오지요. 1942년에는 언니 샬롯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어학을 배우고 같은 해 돌아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샬롯, 에밀리, 앤을 우리는 브론테 자매라고 합니다. 이들은 이례적으로 자매들 모두 문학적 성과를 얻어서 후대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발표한 다음 해인 1848년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시달리다가 폐병으로 세상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동생인 앤 역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언니인 샬롯 브론테도 1855년에 서른 아홉살의 나이에 임신한 상태에서 사망을 하게 됩니다. 그녀들은 모두 후대에 기억되는 훌륭한 작품을 남기지만, 정작 그 삶은 안타까움이 짙게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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