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 심리학 그리고 나, 스스로 용기를 얻는 법

 

아들러 심리학이 서점가에서 열풍을 불고 있다. 한 마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원래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일단 그 뒤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고, 왠지 쉽게 다가가지 않는 게 내 성향인데,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서는 나 역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학시절 때 읽은 책을 보면 거의 자기개발서였다. 취업에 대한 고민과 성공에 대한 갈망,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되돌아보기 위해서, 남들은 어떻게 했나 하는 관음증, 조금 편하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방법을 따라 가다 보면 무엇인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자기개발서에 손을 내밀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개발서에 손을 끊었다. ‘결국 뻔한 소리하는 거잖아.’ ‘그런 소리는 나도 하겠다.’ 하는 생각에 제목이 자기개발의 냄새를 내는 것은 거의 반사적으로 외면했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은 <미움받을 용기>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이 두 권을 접했다. 어떻게 보면 이 책들도 자기개발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왜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모든 중심에 개인을 두었다는 점이다. 분명 사회 속에서 몸을 담그면서 살다 보면, 개인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개인에 의하기 보다는 각종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어떤 기제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사실 이러한 점도 아들러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모두 인생의 거짓말일 것이다. 아들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주체성을 강요하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한 원인론이 아닌 앞으로 자신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목적론을 지향하면서 삶에 지친 이들을 위로 한다.

 

그리고 가볍지 않게 접근한다. 내가 자기개발서라고 부르기 싫어하는 작가의 책이 있다. 그 작가는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자칭 변화경영전문가라고 부르는 구본형 작가이다. 이분의 책에서는 진지한 고민이 엿보였다. 그래서 가벼운 자기개발서에 지친 나에게 때로 위로를 해주곤 했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 역시 이처럼 가볍지 않다. 그리고 논리를 체계적으로 이어간다.

과제 분리’,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 ‘공동체 감각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이들 간의 관계를 서로 연결시키면서 전체적인 틀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곁에 가볍게 생각하지 않은 철학적인 고찰이 이루어졌을 거라는 신뢰가 엿보인다.

 

이런 접근 방식에서 나 또한 위로를 받는다. 아들러 심리학을 용기의 심리학이라고도 하는데, 분명 표현할 수 없는 용기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항상 나는 주체적이고 무엇이든 닥치면 잘 할 수 있어!’ 라는 자신감은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개인적인 신뢰 상실, 아들러가 말하는 모든 문제는 인간 관계에서 온다는 듯이 가끔씩 뒤돌아보게 되는 나는 과연 타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라는 고민과 갈등으로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럴 때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했듯  인생의 의미는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떠 올리고, 지금의 나 자신을 충분히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을 해본다. 그렇게 차분해진다. 아니 차분해져야 한다고 혼자 깊은 숨을 들이 쉰다.

 

 

책갈피

 

일반적으로 주어진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없다. ‘인생의 의미는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며 어떤 일에 대해 가능성이라는 여지를 남겨두려 하지 마라. 평생 그 일을 유보하게 될 것이다.

 

자유롭게 인생을 산다는 것은 그것에 동반하는 책임까지 짊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진로를 선택했기에 그로 인한 결말을 스스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이라면이라는 조건을 붙여 과제에서 도망치려고 하기 일쑤다. 이처럼 인생의 과제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우리가 늘어 놓는 구실들을 아들러는 인생의 거짓말이라 부르며 일축한다. 인생의 과제에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나서야 한다. 그렇게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내어놓는 모든 구실들은 인생의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주장을 전달하지 않고 누군가 알아차려주고 배려해주길 바랄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낙천주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낙관주의는 항상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바로 그 현실에서 출발하는 태도다.

 

아들러 심리학은 수직적인 인간관계가 정신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라 지적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평범해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먼저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바로 자기 수용이다.

 

아들러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는지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이다.” 라고 말했다.

 

공동체 감각이나 협력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아들러는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내게 아무런 관심이 보이지 않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죠?”

이에 대해 아들러의 대답은 단순명료했다.

누군가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설사 다른 사람이 협력적이지 않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내 조언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협력적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말고요.”

 

나는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서 멀어져서 공동체나 인류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상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는 개인이 모인 집합 그 이상이지만, 개인을 벗어나 공동체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객관적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읽어 보기

■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자녀교육)  
   http://zorbanoverman.tistory.com/491


■ 미움받을 용기  - 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인플루엔셜

   http://zorbanoverman.tistory.com/479

 

 

반응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