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설 속에는 누아르가 아주 진하게 담겨 있다. '누아르'는 흔히 '어두운 분위기의 범죄 영화 장르'를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한다. 이기호 작가의 《차남들의 세계사》에는 지금은 초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한 때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았던 누아르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그와 그의 하수인들이 등장하면서 정말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심지어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들은 이야기로 끝내지 않았다. 이야기를 현실에 반영시켰다. '누아르'는 영화 속이나 재미있는 것인데 굳이 현실로 끌여들였다. '누아르'의 주인공이 탐난다 보다.


소개합니다. 바로 누아르의 주인공은 영화 <26년>에서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제거하고 싶어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바로 '전 두 환' 이다. 그 영화 속에서도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해내더니 욕심이 있었나 보다. 이렇게 이 소설 속에서도 누아르의 주인공으로 나타나는가 보면...


 소설은 분명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지만 작가가 풀어내는 방식과 풍자가 곁들여지면서 재미있게 읽힌다. 그런데 그 웃음은 기쁨의 의미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웃프다' 로 다가온다. 정말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가 답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내가 태어나기 3주 전인 1982년 3월 18일에 발생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사건은 부산 고신대생들이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및 독재정권 비호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물어 부산미문화원을 방화한 사건이다. 


부산미문화원 사건과 소설 속 택시기사인 나복만이 어이없이 연결되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버린다. 나복만은 어느날 운전을 하다가 어떤 사람과 접촉사고가 난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냥 가고 나복만은 자기가 나중에 벌을 받을까봐 경찰서에 가서 사건을 이야기한다. 나복만이 간 부서는 당시 부산미문화원 사건을 맡았던 부서인데 나복만은 그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담당형사는 이름을 간단히 적어두고 어이없이 나복만은 그 사건에 연루되어 버린다.


형사들과 안기부에서는 나복만이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이용해 방화사건의 주요 인물들을 엮어서 범죄의 스토리라인. 즉, 그 사건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한 빨갱이들이 벌인 방화사건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그 도구는 1980년대 그들이 사용했던 '고문'이라는 끔찍한 방법이었다. 고문을 받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진술서를 적는 것이다. 하지만 나복만은 결정적으로 글을 알지못하는 문맹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고문에서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후에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향하게 된다.


정말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진 글이라는 것을 분명히 나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내가 태어날 즈음에 우리의 누아르의 주인공이 통치하던 시기 그리고 그 이전 대통령 때에는 너무나 많이 발생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당시 이 사건에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 자던 방에 불을 떼어주었다는 보일러공도 같은 혐의, 즉 빨갱이라는 혐의를 받아서 처벌을 받게 된다. 정말 이쯤되면 막나가자는 이야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말 당시 안기부(안전기획부)는 기획을 한다.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이들의 스토리라인은 어설프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서 그들의 말이 맞게 만들어 버린다. 


여느 때처럼 물고기를 잡다가 풍랑으로 북한 쪽으로 넘어간 어부들은 북한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남한으로 다시 보내지지만, 남한에서는 이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가시설을 염탐하고 스파이 노릇을 한다며 잡아들인다. 그리고 여론은 하나같이 빨갱이에 대한 보도를 내놓는다. 이렇게 또 하나의 사람의 인생을 깊은 수렁에 빠뜨려 버린다. 이렇게 한 번씩 일으켜주는 공포통치가 이들 권력을 지켜나가는 힘이다. 


예전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 그리고 이 작품 《차남들의 세계사》에서도 그렇듯이 국가가 국민들을 상대로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며 나온다면 국민은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린다. 한 개인의 삶이 초토화되고 그의 가족들의 삶 또한 그 연결선상에 놓이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당사자들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저 무너져버린다. 이러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나오고, 얼마 전 홍콩에서는 우산을 들고 나온다.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말해준다. 큰 흐름 속에서는 결국 작은 힘들이 승리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약자들의 아픔이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한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헌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헌법의 1조 1항, 2항을 글로 남기며 마무리하고 싶다.


제1조 1항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1조 2항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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