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으로 본 위선에 찬 어름들의 세계에 대한 예민한 성찰과 젊은이가 겪는 성장의 아픔!

샐린저를 현대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작품, 경박한 수업 내용, 거직과 허위로 가득 찬 학교 생활에 식상하여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은 주인공 홀든이 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뉴욕 거리를 배회하며 목격한 것들을 회상 형식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천사 같은 어린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동경하여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의 도피를 결정하기 직전, 여동생의 순진무구한 마음씨에 동화되어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인정하는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홀든의 내적 변화에 대한 추적도 독자로 하여금 순화된 의식을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

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위선에 찬 세상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그리고 있다. 현대 사회의 경박함과 저속함을 상징하는 듯 재즈의 음률을 담은 수많은 속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샐린저의 표현력이 돋보인다.

                                                                                                         - 책의 뒤에 표현되어 있는 글 -


<호밀밭의 파수꾼> 너무나 많이 들어본 책의 제목이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아마 제목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내용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항상 "○○에서 선정한 책 몇 권" 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의로 한 번쯤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읽고 나서 어떻게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읽고 위와 같은 평을 적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동시에 나도 언제쯤 저런 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공이 부족한 나에게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려면 '너무나 방황하는 십대의 마지막' 이다. 이건 내가 양호하게 순화해서 쓴 글이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홀든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술, 담배, 섹스에 관심있어 하는 한 마디로 학교부적응 및 불량학생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바라본 어른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부조리를 홀든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걸 표현하는 구나. 라는 것은 읽으면서는 몰랐다.

그냥, "이놈 어린 놈이 ~!" 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책의 뒷 부분에 [작품 해설] 부분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미국의 교과서에 실릴려고 할 때, 많은 학부모들이 반대를 하고 일어났다고 한다. 아마 이 학부모들이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은 아마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홀든이 고등학교 3학년 정도이니 아마도 술, 담배, 섹스에 대해서는 아마도 이미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각 개인들과 친구들간에 공유를 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이 서로 간접경험하기는 부모들이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분명히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제목의 뭔가 지루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이야기 전개 방식과 등장인물 그리고 퇴학 후, 몇일이라는 그런 설정 등 여러가지 면에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분명 여기저기에서 선정되는 이유는 있는 법이라고 혼자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이 1952년 미국에서 쓰여진 작품인데, 그 배경과 컨텐츠들은 지금 2012년 한국을 살고 있는 시대라고 느껴질 정도로 시대적 괴리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1952년이면 한참 한국전쟁을 하고 있을 때, J.D. 샐린저는 세상의 분노와 부조리를 하나의 성장소설로 그리고 있다.

어찌보면 당시 그러한 자유로운 성장소설이 부럽기도 하고, 1960~70년대에 국내에 번역되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읽고 공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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