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소설을 처음 접한다. 최근 들어서는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책을 하나씩 만나려고 애를 쓴다. <혁명>이 처음 나왔을 때 부터 책을 사두고 책꽂이 한 곳에 두었다가 잡고 나서는 한 호흡에 읽어내려 갔다. 


<혁명>은 이성계가 해주에서 낙마하는 순간인 1392년 3월 17일 부터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암살당하는 순간인 1392년 4월 4일까지의 18일 간의 비망록이다. 그 18일 동안의 정도전, 정몽주, 이성계의 내적 고뇌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같은 시간에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은 다른 장소에서 때로는 같은 생각을 때로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18일을 살아가고 있었다. 왕과 함께 왕성에 머물러 있는 정몽주, 명나라에 다녀오는 세자 왕석을 마중하기 위해 황주까지 갔다가 왕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낙마하여 해주에 머무른 이성계, 봉화에서 유배중이던 정몽주는 같은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그 방법은 같지 않았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모두 고려 말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는 하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했다.

권문세적들의 횡포, 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홍건적들의 침략에 의한 백성들의 피폐함, 당시 국운이 다해가는 원나라를 지지하는 고려 내 기득권세력에 대한 대항, 현세가 아닌 내세를 중시하는 불교에 대한 제재, 현실 정치를 위한 유교적 질서 성립등이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극복해야하는 대상이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목은 이색 하에서 같이 유교경전을 공부하고 함께 중국 사행 길도 다녀오고 성균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오면서 우정을 이어 갔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개혁의 길이 그들의 운명도 갈라놓은 듯 하다.


정몽주는 개혁을 하되 고려 왕조의 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정도전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개혁을 기존의 구세력인 왕씨가 아닌 이성계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몽주의 죽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성계의 병문안을 마치고 상가집에 들리고 돌아가던 중에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의 수하에 의해서 선죽교에서 삶을 마감한다. <혁명>은 이렇게 되기까지 정몽주, 정도전, 이성계가 어떠한 상황에 놓였으며 내적으로 어떤 갈등을 보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서로 간의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소설 속에서는 정도전, 정몽주, 이성계는 서로 신뢰하고 함께 가려하지만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 결국 신뢰가 깨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서로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간다. 실제로는 어떠했을까? 아마 소설 속 이야기처럼 믿음과 신뢰가 바탕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치열한 시대에 가려는 방향이 서로 다른 최고위 정치인들이 벌이는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지레짐작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실제 그 당시에 세 사람의 관계가 소설 속 이야기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애틋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있고 그것을 알고 있지만 안타까웠다. 역사에는 만약 이라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수없이 많은 만약이 떠올랐다. 

최근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었는데 같은 역사적 사실인데, 만화와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로 만나는 즐거움도 나름 흥미로웠다. <혁명>은 김탁환이 앞으로 계속 집필할 소설 조선왕조실록의 첫번째라고 한다. 다음은 아마도 이방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짐작을 해본다. 부디 중간에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렇게 한 호흡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설 조선왕조실록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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