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고 한국보다 독일에서 더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번역의 과정을 통해서 접하게 된다. 우리네 삶을 다루고 있고 제목 또한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1946년에 출간된 그의 자전 소설인 이 작품은 독일 문단과 독자들을 놀라게 했으며 독일의 잡지인 <플레엔스 타케블라트>는 "어느 저명한 독일의 잡지사의 조사에 의하면, 금년도에 독일어로 발간된 서적 중 가장 훌륭한 독일어로 된 책은 어느 외국인이 섰는데, 그분이 바로 이미륵 씨다." 라는 기사를 실었다.


작가 이미륵은 과연 어떤 사연으로 그 시대에 우리땅이 아닌 독일에서 독일어로 글을 쓰게 되었을까? 작품 속에 그 사연이 있으며, 우리의 뼈 아픈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며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요동시킬 수 있는지 안타깝게 보여준다. 안타까움과 함께 잘 표현하지 않지만 아들 미륵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나 역시 아버지로서의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하였다. 


이미륵은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1남 3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의경인데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부처님의 뜻으로 얻은 귀한 아들이라 집안에서 미륵이라 불렀다. 어렸을 때 같은 집에 살았던 사촌 수암과의 따뜻한 추억과 아버지와 훈장에게서 천자문과 한학을 배우는 모습이 소박하게 드러난다. 



미륵과 수암은 집에 어른들이 없을 때 아버지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서랍이 많이 달린 약재함을 보고 일단 열어보고 맛을 본다. 수암은 검은 환약이며 하얀 알약을 많이 먹었다. 그러더니 주저 앉아 버렸다. 소암은 자기가 죽을 거라 생각한다.

"미악, 물 좀 갖다줘!"

"미악, 내 목 좀 들여다봐줘!"

그는 슬프게 부르짖으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목구멍은 빨개졌고 부어 있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그는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 "으, 죽겠어!" 하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낸다.


그리고 글씨를 쓰라고 준 종이를 연을 만들기 위해 다 써버려서 혼이 나기도 한다.


1916년에 미륵의 아버지는 미륵을 당시 신식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그동안 한학을 배워오던 미륵에게 수학, 물리, 화학을 배운다. 새로운 학문을 대하는 낯설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당시 일본의 강제적인 한일합방으로 인한 일본어와 왜곡된 역사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미륵은 후에 경성 의과 전문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1919년 3월 1일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미륵은 오랜 고민 끝에 3.1운동에 참여하고 전단을 나누어주고 태극기를 손에 쥐게 된다. 그 후, 그의 친구들의 몇 명은 경찰들에게 잡혀 갇히게 되고 미륵 또한 쫓겨 고향으로 오게 된다. 미륵의 아버지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미륵에게 유럽으로 떠나라고 한다. 미륵은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이 저렸지만 일제 경찰을 피해 압록강을 건너고 그곳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톈진으로 그리고 다시 난징으로 간다. 그리고 거의 한 해를 기다리고 상해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한다. 프랑스에서 독일로 옮겨가며 결국 독일에 정착하게 된다.


이미륵이 《압록강은 흐른다》를 독일에서 출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이런 역사적 아픔이 서려있다.



미륵의 아버지와 어머니


작품 속에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미륵의 아버지였다. 때로는 호되게 혼을 내지만 동시에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묻어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미륵의 아버지를 보며 감동을 받았다. 


아버지가 미륵에게 처음 술을 주는 장면이다. 어머니는 술을 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잔을 빼앗으셨다.

"너무 그러지 마시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부탁하셨다.

"한두 잔 정도의 술은 해롭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외로운데 친구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좋아요. 하지만 오늘 뿐이에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어머니는 술잔을 채우셨다.


아버지가 신식학교에 미륵을 처음 데리고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아버지, 학교에서 천문학을 배운다는 게 사실입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구나."

아버지가 대답해 주셨다.

"언제든 하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 주의 깊게 들어 둬라. 천문학은 아주 고급한 학문이다."

"제가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언제나 정신이 맑아야 한다."
.

,

아버지는 나를 한 번 더 보지도 않고 가 버리셨다. 교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맡겨 두었던 것이다.



소박한 수묵화 속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아픔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다 보면 막힘이 없이 그대로 읽힌다. 꾸밈이 없이 담백하고 소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책의 두께도 그다지 두껍지 않다. 하지만 그 소박함 속에서 잔잔한 감동과 아픔이 퍼져나온다. 지금은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이 많지만 1920년 당시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의 많은 도시를 거쳐 프랑스로 그리고 다시 독일로 향한다. 작가 이미륵의 그 초조함과 불안함은 아마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나 뿐인 아들을 평생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마음, 아들을 믿어주고 묵묵히 지켜보고 자신이 먼저 올바른 본보기를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는 뜨거운 감동과 아픔이 동시에 밀려오기도 했다. 어떻게 이 작품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기분좋은 독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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