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영 작가의 《책만 보는 바보》 에서는 조선 후기 정조시대 박지원의 사랑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백동수와 같은 계급에서 소외받았던 이들이 등장하면서 시대에 대해 고민하며,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며 세상이 변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 《갑신년의 세친구》에서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의 사랑에 그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모여들어 세상의 변화를 꿈꾼다. 이들은 당시 유력한 가문의 자제들인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이었다.


19세기 후반 조선 안팎의 정세는 혼란스러웠고, 기존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변혁의 시기였다. 조선은 서구 열강의 개화의 압력을 받았고, 청나라와 일본이 서구의 문물을 수용하고 변혁의 물결 위에 있을 때 그 흐름에 편승하지 못했다.  당시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은 일본을 방문하면서 선진화된 문물에 빠져들고 조선에도 개혁을 이루기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은 쉽게 그들의 뜻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임오군란(1882년 7월 20일)으로 그동안 참아왔던 백성들은 일어나고 흥선대원군은 다시 정계에 복귀한다. 하지만 또 다시 청군에 의해 납치되고 다시 왕비와 외척인 민씨 집안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다. 당시 중전과 외척들은 청나라를 뒷받침으로 해서 개혁을 원했다. 하지만 김옥균을 비롯한 젊은 이들은 일본의 지원에 힘입어 개혁을 원했던 급진개화파들이었다.


1884년(고종21년) 12월 4일 김옥균과 급진개화파들은 당시 홍영식이 총판로 있던 우정국 청사 완공 기념 연회를 거사의 날짜로 정하고, 청사 옆에서 피어오르는 불을 신호로 해서 집권세력들을 제거하고, 왕과 왕비에게는 난리가 일어났다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보호를 위해서 일본군에게 요청한 지원군으로 개혁을 완성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개혁은 불과 3일 동안에 불과했고, 그들의 개혁인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버렸다. 갑신정변의 개혁주도세력은 개혁의 젊은 혈기는 좋았으나, 일본을 바라본 순진한 생각과 청나라 군사들이 오지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 경운궁에서 군권을 장악하기 전에 왕과 왕비의 거처를 다시 옮기게 하는 등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당시 김옥균은 백성의 힘을 업은 채 시도한 개혁이 아니고, 일본의 군대에 의존한 개혁이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또한 일본의 적극적인 지원만을 믿고 있었던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당시 일본은 단지 장기적인 조선 침략 시나리오의 일환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안남(베트남) 지역을 두고 프랑스와 청나라의 갈등으로 조선에 있던 청군이 안남 지역으로 이동해서 청군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는 개혁세력의 안일함을 드러낸다. 또한 개혁의 주축 세력이 당시 고위 집권 세력의 자제들이었다는 점에서 아래로 부터의 개혁에 대한 뿌리와 힘을 갖지 못한 부르주아적 개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결국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갑신정변의 주요 인물이었던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홍영식은 전하 곁에 끝까지 남아서 성공하지 못한 개혁이지만 그들의 뜻을 전하겠다며 남게 되며, 관군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김옥균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후에 청의 리홍장을 만나기 위해 상하이로 갔을 때 자객의 총에 의해 생을 마감한다. 정변당시 민씨 집안에 원한을 사서 그들이 보낸 자객에 의한 마지막이었다. 1894년 3월 28일이었다.


박영효는 일본에서 서재필, 서광범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고, 1894년 8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갑오년 개혁이 일어나면서 다시 조선으로 와서 그의 뜻을 펼쳐 보기도 한다. 1910년, 조선은 일본에 강제 병합되고 협력한 조선인들에게 일본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이 지급되었는데, 박영효는 후작 지위와 수십만 엔의 상금을 받았다. 또한 산업과 언론, 경제계에서 실속있고 명망있는 지위를 누리며 삶을 보냈다.


갑신정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일본을 우리의 개혁을 위해 먼저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이는 후에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고, 개혁의 주요인물이었던 박영효가 그 병합에 일조를 하면서 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근대적인 개혁의 시발점이라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다. 김옥균이 만든 갑신정변 14개조에는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고, 정령의결과 반포를 기존의 왕이 아닌 대신들의 의결체에서 진행하는 등의 근대적 개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후에 갑오개혁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역사의 연장선의 가장 끝부분에 서 있으며 그것 역시 이렇게 글을 쓰는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필연이던 우연이던 여러 사건들이 모여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한 권 한 권 역사책을 읽어갈수록 깨닫는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개혁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며, 위기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배울 수 있으며, 역사 속의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상황만 다를 뿐 현재에 그대로 재현된다는 점을 다시금 느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쩌면 훗날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급변하는 시대의 중심이며,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분명 개인적인 삶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시대의 흐름을 체감하며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기를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앞으로의 내 역사적 삶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때 의미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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